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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있는 삶의 완성법

달라이라마, 남인도 규메밀교대학에서 설법



달라이라마
티베트 승왕


티베트 불교의 3대 사원 중 하나인 데붕 간덴 세라 사원이 재건된 남인도 까르나따까 주 벨라쿠피에서 훈수르 소재 규메밀교대학(학장 게쉬 나왕 상게)까지는 약 50km의 여정이다. 달라이라마(뗀진갸초, 89)는 2월 16일 대학에 도착해 공식 일정을 수행했다. 학장은 달라이라마에게 몸과 말 그리고 마음을 표현한 만다라 공양을 올렸다.


“친절의 힘을 지닌 수행자이길 당부”


티베트 본토에서 망명한 이래로 우리 티베트 민족은 인도 전역에 정착촌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이르도록 하는 긴 여정에서 백색의 카타 스카프와 꽃으로 환대해 준 여러분에게서 기쁨의 미소를 보았습니다. 14대 달라이라마인 저는 티베트 암도 지역에서 태어나 중부 라싸로 가 수승한 학자와 수도자들로부터 불교 철학을 기반으로 하는 논리학을 사사하였습니다. 고명하신 스승님과 토론을 나눈 대론자 모두가 친절함과 공손함의 예의로 대해 주셨고 수학의 견고한 단계를 밟아 지혜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티베트불교의 3대 승원, 데붕 간덴 세라 사원에서 각각의 시험을 치렀습니다. 그리고 라싸의 조캉 사원에서 게쉬 하람빠 학위 시험을 통과 하였습니다. 그 시절을 회상해 보면 저 역시 여러분과 같이 긴장한 학승이었고 대 스승님의 심사 결과를 기다리며 마음을 졸였습니다.
학승의 과정을 단계적으로 수료하며 제가 느낀 감정은 물론 성취에 대한 환희심도 있었지만, 토론을 통해 의심을 깨고 진리에 근거하여 합리적으로 만물의 이치를 논리화 한다는 것에 대한 꾸준한 행복의 연장이었습니다. 이러한 시간의 견고한 짜임을 통해서 티베트의 시골 마을에서 온, 라모 돈둡은 생명있는 모두를 존중하고 섬기는 달라이라마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는 비단 티베트불교도 뿐만 아니라 대승과 데라바다 불교를 수행하는 이들을 포함하여 다른 종교를 신앙하는 이들과 비단 종교를 지니고 있지 않은 이들에게까지 깊은 공감과 이해로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반향이 저로 하여금 달라이라마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올곧게 하고 있다는 평가로 재해석되기에 스스로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노라 자부하게 되었습니다.
공식적으로 이생의 달라이라마로서의 책무는 길어야 10에서 15년 남짓 남았노라 명시한 바 있습니다. 이는 다시 말해 티베트의 불법을 수호하고 티베트 민족의 대의를 위해 이바지하는 데 앞장설 수 있는 임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는 망명한 이래 최선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에 대한 성과는 현대 과학이 티베트불교에 보이는 관심과 연구를 통해서도 재해석 되고 있습니다.
불교 수행자의 입장에서 명상의 힘이 밀교적 수행과 함께 괄목할 만한 연구와 성과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 자랑스럽습니다. 과거 수승한 선지식의 가르침을 근거로 오늘의 과학적 명상이 가능토록 증명되고 있는 것은, 세기적 업적이자 우리 티베트불교의 방향이라고 여겨집니다. 또한 그 열매가 지속적으로 맺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저는 달라이라마의 명을 걸고 항시 올바른 견해를 고수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지닙니다. 
더불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비롯한 대중과 교류를 통한 토론은 저에게 큰 기쁨을 줍니다. 저는 13대 달라이라마께서 열반에 든 이후 다음의 환생자로 옹립 되어 지금까지 왔습니다. 달라이라마의 이름이 지닌 가치적 무게는 실로 엄중합니다. 어디서 누구를 만나거나 저와 마주한 상대를 존중하고 진심으로 대하는 명분이기도 합니다.
내일도 저는 오늘과 다름이 없이 불교의 숭고한 진리와 티베트의 사명을 위해 저의 모든 책임과 의무를 다할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과 함께하는 것 역시 같은 이유입니다. 우리가 만약 망명지가 아닌 설산 왕국 티베트에 고립되어 있었다면, 세상의 정세를 모르는 홀로 독존하는 외로운 달라이라마로 기억되었을 것입니다. 망명 이후에 이루어진 다양한 교류는 우리로 하여금 더욱 강인하고 지혜로운 민족으로 거듭나도록 해주었습니다.
규메밀교대학에서는 야만타카의 음성으로 찬탄하고 봉송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원음을 보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모든 응용과 창조의 기반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는 수행자간의 유대감이자 신뢰를 의미합니다. 한 사람의 티베트인으로서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우리의 스승은 누구이고 역사의 굴곡에서 분파가 나뉘지만 근본은 하나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2천 500년 전 붓다께서 깨우친 네 가지의 고귀한 진리이며, 우리는 그와 같은 깨달음을 실현하기 위한 대의를 실천하는 붓다의 자녀이자 불법의 인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