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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를 얻는 것이 행복을 얻는 것

계호진
대한불교진흥원 법사


누군가 당신에게‘왜 종교를 믿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살펴보면 세상에는 수많은 가치관(價値觀)들이 있습니다. 종교, 도리, 법칙, 도덕, 예절, 사상, 철학 등 가치관이란 카테고리 속에 함께 넣기란 무리일지 모르나 여하튼 인간은 언어라는 방편을 통해 스스로의 정신문화창달을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종교도 이러한 노력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성인(聖人)의 말씀을 끊임없이 배우고 연구하고 실천해온 것이 바로 오늘 날의 종교입니다.

이와 같은 노력은 인간의 정신적 욕망의 충족 때문 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욕망을 종교, 도리, 법칙, 도덕, 예절, 사상, 철학 등의 다양한 방법의 창달을 통해 충족해왔습니다. 그러 나 여기에는 하나의 목적이 있었습니다. 예, 그것은 바로‘행복’입니다. 인간은 바로 이 행복을 위해 노력을 해 온 것입니다.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종교를 믿는 것은 바로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종교는 나를 행복하기 위해서 있다. 내가 있고 종교가 있다. 내가 없는데 종교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때문에 종교의 시작은 나를 기준으로 나 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부언하면 종교는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행복에 한 가지 조건을 붙이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남의 행복이 먼저 선행(先行)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내가 행복해지길 원한다면 나를 버리고 남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유일하게 내가 행복해 질 수 있는 길임을 당부하셨습니다.
그럼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사람들에게 행복의 정의를 물어보면 너무나 각양각색의 대답을 합니다. 왜냐하면 행복은 바로 스스로의 만족(滿足)에 근거하기 때문입니다.

각각의 사람들이 위치가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상황이 다르고, 복덕(福德)이 다르기 때문에 그 만족도 같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행복은 크게‘일시적인 행복’ 과‘영원한 행복’두 가지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일시적인 행복은 보편적으로 우리들이 생각하고 있는 행복입니다. 즉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든가, 건강하면 좋겠다든가, 내지는 시험에 합격하면 좋겠다든가 등의 사회에서 바라는 그러한 욕구에 의한 만족이 바로 이러한 행복입니다.

그러나 결국 이것은 오욕락(五欲樂) : 재욕(財欲), 색욕(色欲), 식욕(食欲), 수면욕(睡眠欲), 명예욕(名譽欲)에 의한 즐거움, 오욕락(五欲樂)에 의한 만족에 불과합니다. 이 오욕락의 만족을 통한 행복은 오욕락이 더 이상 만족되지 않으면 더이상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오욕락은 본래의 성질이 무상(無常)한 것, 즉 항상 하지 않는 것입니다. 때문에 이 행복 또한 일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영원한 행복은 무엇일까요? 영원한 행복은 말 그대로 영원히 행복한 것을 말합니다. 이 영원한 행복은 지혜(智慧)에 근원을 두고 있습니다. 지혜는 무상(無常)하지 않습니다. 특히 부처님의 지혜는 무상(無上: 위없고)하고 미묘(微妙) 하며 원만(圓滿)하기 때문에 그 만족 또한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이것이 바로 영원한 행복입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일시적인 행복을 진정한 행복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진정한 행복을 가리는 번뇌의 먹구름과도 같은 것입니다. 변함없는 행복, 이것이 바로 진정한 행복 입니다.
그럼 영원한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위에서 말씀을 드렸듯이 이 행 복은 지혜(智慧)를 근본으로 합니다. 때문에 지혜를 얻는 것이 바로 이 행복을 얻는 방법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지혜를 얻는 방법으로 제일 선행(先行)되어야 할 것이 계(戒)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계(戒)는 자신의 심신(心身)을 항상 경계하고 살피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무심코 저지르는 일들을 미연에 방지하고 항상 경계하여 스스로를 번뇌의 먹구름에서 벗어나게 하여 온갖 정신적 망념(妄念)을 쉬게 하였을 때 지혜는 우리에게 찾아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계(戒)에는 여러 가지 실천 강목들이 있습니다.
서로의 위치에서 서로의 근기(根機)에 맞는 여러 계목(戒目)들이 있지만 이는 모두 선(善)을 행하기 위한 강목(綱目)들입니다. 때문에 달마대사께서는 계(戒)를「능단제악(能斷諸惡) 능수제선(能修諸善) : 능히 모든 악을 끊고 능히 모든 선을 행하라」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선(善)을 위해 계(戒)가 존재하는 것이 지 계(戒)를 위해 계(戒)가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 선(善)이란 무엇일까요? 보통 우리는 선(善)이라 하면 좋은 일이라 말합니다. 그럼 좋은 일은 무엇을 좋 은 일이라 할까요?
불교에서 선(善)의 개념은 다음과 같습니다. 즉「현재(現在)와 미래(未來)에 걸쳐서 자타(自他)에 이익(利益)을 주는 백정(白淨)의 법(法)」, 이것이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선(善)의 개념 입니다. 다시 말하면 선(善)은 내가 하는 행동이 나에게도 남에게도 동시(同時)에 이익 이 되어야 하고 그 이익이 현재(現在)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이익이 되어야 하는 깨끗한 법이라는 말입니다. 요즘 대운하 사업에 대하여 말 들이 많습니다. 이것이 옳은가 옳지 않는가를 판단 한다면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대운하 사업으로 현재 우리 세대가 풍요로워지는 대신 미래 세 대가 환경파괴로 인해 심각한 위험에 빠진다면 이것은 선(善), 즉 옳은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선은 현재도 미래도 나도 너도 다 이익이 되어야 하기 때입니다.
개인주의와 물질만능주의로 갈수록 각박해지는 현실을 생각할 때 선행(善行) 즉 계를 지키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 모두가 영원히 행복해지는 유일한 길이며 보살도의 실천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