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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를 가지고 복을 닦는다

박용희
(사)생명나눔실천본부 홍보팀장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어떤 중생이 이와 같은 말씀의 글귀를 보고 자못 실다운 믿음을 낼 자가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셨다.

“그런 말을 하지 말라, 여래가 멸도에 든 뒤, 후오 백세에 이르러 계(戒)를 가지고 복을 닦는 자가 있어서, 능히 이 글귀에 신심(信心)을 내며 이로서 실다움을 삼으리라.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일불(一佛)이나 이불(二佛) 이나 삼·사·오불에게 선근(善根)을 심었을 뿐만 아니라, 이미 한량없는 천만불께 모든 선근을 심었으므로, 이 글귀를 듣고 일념으로 조촐한 믿음을 내는 자 이니라. 수보리야, 여래는 이 모든 중생들이 이와 같이 한량없는 복덕을 얻는 것을 다 알며 다 보느니라. …”
금강경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많은 불자(佛子)들이 복을 구하기 위해 부처님 전에 지극한 마음으로 정성을 드리지만, 복을 닦는 불자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부처님께서 일러주신 가르침 가운데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뿌린 대로 거둔다’는 인과응보(因果應報) 입니다. 만약 불자로서 이러한 인과응보를 믿지 않고, 복의 씨앗을 뿌리지도 않고 복 받기만을 바란다면 이는 헛된 꿈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한 부처님께 아무리 산더미 같은 공양물을 올려 복을 받고자 해도, 계를 지니지 않고는 복을 닦을 수 없다고 경전은 일러주십니다. 그런데 계를 지니지 않으면 복을 닦을 수 없다고 하니, 실망하실 분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불자들이 비구 250계·비구니 346계, 혹은 5계·10계를 말하면서, 계를‘어떤 것을 금기시 하는 항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계(戒)와 율(律)은 의미론적으로 완전히 다른 말이며, 우리가 계라고 알고 있는 것은 대부분 율에 해당합니다. 계란 한마디로 말하면 어길래야 어길 수 없는‘생명의 원리’를 말하며, 율은‘더불어 살아 가는 데 있어서 지켜야할 규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를 합해서 계율(戒律)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보통 계를 지킨다고 말하는데, 위 금강경에 나오듯이 계는 지니는 것입니다. 유마경의 보살품(菩薩品)에도‘무엇을 법락(法樂)이라고 하느냐’의 천녀(天女)의 물음에, 유마힐은‘중생을 요익하기를 즐기고, 계율을 굳게 가지기를 즐기며, 선근을 부지 런히 모으기를 즐기는 것 등이 보살의 법락’이라고 대답합니다. 이러한 계의 속성은‘과거 일곱 부처님의 공통된 가르침’이라고 하는 칠불통계(七佛通戒)를 보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악을 짓지 않고
제악막작(諸惡莫作)
온갖 선을 받들어 행하며
중선봉행(衆善奉行)
스스로 그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
자정기의(自淨其意)
이것이 곧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시제불교(是諸佛敎)


모든 악은 짓지 않고 착한 일을 받들어 행하는 것, 세 살 아이도 알 수 있지만 팔십 노인도 행하기 어렵다고, 백거이와 도림선사의 이야기 속에도 등장합니다. 언뜻 위 게송을 들으면, 악을 짓지 않으려고 노심초사해야 하고 또 부지런히 착한 일을 닦도록 노력해야하는 것으로 들립니다.

하지만 하나도 행하기 힘든데… 두 가지라니!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을 달리해 보면, 모든 악을 짓지 않는 것과 온갖 선을 받들어 행하는 것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의도하지 않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수 없이 많은 생명을 죽이고 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농사짓기 위해 밭을 갈다가 작은 벌레들을 죽이기도 하고, 이동을 하다가 뜻하지 않게 벌레들을 밟아 죽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최대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려 해도, 호흡을 하다보면 아주 작은 생물들이 입안으로 들어와 죽기도 합니다.

이러한 것을 아는 입장에서는 최대한 다른 생명을 해치지 않기 위해, 농사도 짓지 말아야하고, 되도록 먹지 않아야하며, 벌레가 입안에 들어와 죽는 일이 없도록 마스크를 써야하고, 심지어는 옷도 입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인도에는 지금도 위와 같이 극단적인 고행과 윤리적 엄숙주의를 추구하는 수행자들이 많다고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생명을 가지고 살아서 움직이는 한, 아니 생명을 영위하고 있는 한, 다른 생명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방법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내가 산다는 것 자체가 악을 짓지 않고서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삶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입장에서 모든 악을 짓지 않는 쪽으로 인생의 초점을 맞추다 보면 옴짝달싹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필연적으로‘최선(最善)’을 지향하는 삶을 선택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중선봉행’의 길이 열려집니다. 순간순간마다 온갖 선을 행하려고 최선을 다하다보면 악행을 지을 시간도 없을 것입니다.

결과적으로‘제악막작’하게 되겠지요. 이처럼 온갖 선한 일을 받들어 행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모든 악을 짓지 않는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착한 일을 부지런히 행하려는 쪽으로 삶의 에너지를 집중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아무리 작은 선행이라도 끊임없이 하려는 마음을 잊지 않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실천으로 옮겨 갈 때, 인생에서 최고로 가치 있는 선을 받들어 행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불자로서‘계를 지닌다’는 뜻임을 알겠습니다.

이처럼 계를 지녀서 복을 닦게 되니, 진리에 눈뜨고 마침내 불법(佛法)을 믿게 될 것이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불자가 누리는 복은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 복덕이 한량이 없음을 부처님께서는 다 알며 다 본다고 말씀하십니다.
한량없는 복덕을 누리는 불자가 되기를 발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