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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불교는 자비와 연기의 실행

김관태



칼럼니스트, 사찰경영컨설팅 살림(山林) 대표


신행활동을 하다보면 생활불교라는 용어를 자주 듣게 된다.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생활불교란 부
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생활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어떻게 생활하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에
따라 제대로 사는 것인지 알 수 없을 때가 더 많다. 그도 그럴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은 너무 방대하
고, 세속을 떠나 있기에 세속의 잡사를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추어 사는 것이 무엇인지 아리송할 때
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논리가 판치는 세상사에서 초연해서 산다는 것이
혹시 이 사회의 부적응자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 마련이다. 한편으로는 이것이 생활
불교라고 가르쳐 주는 사람도 찾기 어렵고, 또 오랜 기간 신행을 한 선배 불자라도 그 말과 행동을
본받고 싶지 않은 사람도 많다. 그러다보니 생활불교란 용어는 있으되 불자들이 실행해야할 생활
불교의 방식은 찾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 우리가 실천해야할 생활불교란 무엇인가?


생활불교라면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생활은 물론 의, 식, 주라는 생활 범주와 우리가


사는 사회는 물론 생태 환경 속에서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의 근거가 되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자비와 연기, 그리고 이 두


가지를 포괄하는 지혜일 것이다.


먼저 자비는 우리의 마음의 근간이 되어 모든 말과 생각과 행동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을 말한다. 이 세 가지를 청정하게 하는 근본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자비로운 마음이다. 자비로운 마음으로부터 따뜻한 말과 밝은 생각과 배려하는 행동이 생겨
난다. 즉, 모름지기 불자는 따스하게 말하고, 밝게 생각하며, 항상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다. 이것은
모두 상대방을 전제로 하고 있다. 말과 행동은 모두 다른 사람을 향해 있으며, 생각 역시 대상을 두
고 있다. 즉, 자비로운 마음에서 우리의 이타행이 꽃피울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연기적으로 사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은 모두, 그것이 생명체이건 무
생명체이건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실상을 인식하는 것이다. 어느 것 하나라도 존재할 수 없는 세
상이 되면 우리의 존재도 끝이 난다. 만약 우리가 사는 지구의 환경이 완전히 파괴된다면 인류는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어느 생물 하나가 멸종한다면 다른 생물들도 연쇄적인 멸종을 맞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꿀벌이 모두 멸종한다면 식물이 열매를 맺을 수 없고 결과적으로 모든 생명체
의 멸종을 불러온다는 분석이 있었다. 작은 꿀벌 하나도 우리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는 것을 자각
하는 것이 바로 연기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연기적으로 생각하고 생활하게 되면 줄여야 할 것과 늘려야 할 것, 그리고 그만두어야 할 것이
분명해진다.


줄여야 할 것은 무엇인가? 바로 나 자신만을 위한 것이다. 소유를 줄이고, 소비를 줄이는 것이
바로 연기적인 생활이다. 화석 연료를 많이 쓰면 지구 온난화를 일으킨다. 자동차 배기가스는 기상
이변을 일으키기도 하고 우리의 성보문화재를 부식시키기도 한다. 쇠고기를 향한 인간의 끝없는
욕망은 열대 우림을 파괴하고 축산폐수로 강물을 오염시킨다. 먹지 않고 버리는 음식 쓰레기는 이
땅을 황폐화시킨다. 골프와 스키를 즐기기 위해서 수없이 많은 나무들이 베어지고 대지는 몸살을
앓게 된다. 부의 상징인 모피코트를 위해서는 수십 마리의 여우와 밍크가 목숨을 잃어야 한다. 이
렇게 나만을 위한 소유와 소비는 연기적인 삶이 아니고 생활불교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생활불교
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소유를 줄이고, 소비를 줄여서 검박한 생활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늘려야 할 것은 무엇인가? 바로 남을 위한 것이다. 다른 이를 위한 기부를 늘리고, 이
웃을 위한 봉사를 늘려야 한다. 부처님은 분명히 가난하게 살지 말라고 하셨다. 너무 빈한하면 남


은 물론이거니와 자신도 돌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생업에 열심히 해야 하지만
그로 얻어진 것들을 이웃과 나눌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가진 재물을 나누고, 내가 가진 재능
과 시간을 나누는 것이 바로 연기적인 생활인 것
이다.


그리고 그만두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죽이거나 상처 주는 일이다. 경전에는 직접
죽이거나, 사람을 시켜 죽이거나, 죽이는 것을 방
관하지도 말라고 했다. 즉, 직접 죽이는 일을 하지
않더라도 결과적으로 내 행동과 생활이 살생과 연
관이 있다면 그것을 그만두어야 하는 것이다.


흔히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많이 배워야 한
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배운 만큼
실천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생활불교의 모범이
라고할수있는사례가 있다.


바로 대만의 자제공덕회(慈濟功德會)이다. 자제공덕회의 불자들은 언제나 밝은 마음으로 다른
이들을 위한 이타행을 실천하고 있다. 그들은 매일 일정 금액의 기부금을 모으는 한편 재난에 처한
이들을 위한 각종 구호활동과 봉사활동에 앞장선다. 2004년 말 동남아 각국이 지진해일 쓰나미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입었을 때 세계에서 가장 먼저 구호품과 구호 인력을 태운 전세기를 띄운 곳이
바로 이 단체이고 이번 아이티 대지진에도 긴급구호 인력을 파견했던 곳이 바로 이곳이다. 전 세계
60여 개국에 500만 명의 자원봉사자를 확보하고 있는 세계적인 불교 구호단체, 기자들보다 먼저
재난 현장에 나타난다는 봉사자들이 모여 있는 대만 자제공덕회는 가난을 구제하는 자선사업(慈
善), 6개의 대규모 종합병원에서 조건 없이 병자를 치료하는 의료사업(醫療), 전인교육을 통해 부
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할 인재를 육성하는 교육사업(敎育)과 사람의 심성을 정화하는 문화사업(人
文)을 실천하고 있다. 이와 같은 자제공덕회의 활동과 실천은 우리가 실천해야할 생활불교의 길이


무엇인가를 잘 말해 주고 있다.


공존의 가르침을 전달하고자 합니다. 부다TV는 모든 불자들과 함께 하고자 합니다.


생활불교는 우리가 배운 것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길이다. 그것은 바로 지혜에 기반을 둔 자비
와 연기의 실천이며 그것을 주저 없이 실행하는 불자들에 의해 구현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