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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나눔의 종교로 자리매김해야

양세훈
칼럼리스트


요즘 세상의 제일가는 화두를 꼽으라면 단연코 경제문제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 경제의 중심이며 커다란 소비 시장이기도 한 미국의 경제가 나빠지면서 지구상의 모든 국가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난국을 해쳐나가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이 나오고 있지만 가장 필요한 것은 역시‘나눔’이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나눔은 UN과 같은 국제 기구를 통해서, 개인과 개인 사이의 나눔은 모금이나 기부를 통해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데 우리 불교야말로 나눔을 실천하는데 가장 적합한 종교이다.


불교는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인 법(法)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줌으로써 시작되었다.
그래서인지 부처님은 평생 동안‘보시(布施)’라는 이름으로 나눔을 강조했다. 부처님이 활 동할 당시는 상업의 발달과 더불어 막대한 부를 소유한 소위 장자(長者)들이 많이 나타났는데 부처님은 자주 설법을 통하거나 개인적인 권유를 통해 장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자선을 베풀도록 유도했다. 그 결과 부처님과 제자들이 활발하게 활동한 지금의 인도 북부와 네팔 남부 지방에서는 부자들의 활발한 자선활동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의 경제적인 고통이 많이 줄어들 수 있었다.


부처님은 개인적인 소유물을 가지게 됨으로서 출가자들이 타락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제자들의 소유물을 엄격하게 통제했다. 그 결과 부처님의 제자들이 개인적으로 소유할 수 있게된것은가사한벌과바리때, 헤어진가사를깁기위한바늘1개와약간의실, 물속의 미생물을 죽이지 않기 위해 물을 걸러먹는데 사용하는 천 조각들 등이 전부였다.


개인적 소유물에 대한 이런 엄격한 규정을 제자들이 잘 지키도록 하기 위해 부처님은 항상 솔선수범했는데 예를 들어 어머니인 마하파자파티가 직접 만든 가사를 부처님께 바치자 그것을 당신 개인이 아니라 승단에 보시하도록 권했다. 이처럼 당시 부처님의 교단은 부처님 자신을 포함해 누구도 허용된 것 이외의 소유물을 가지지 않는 모범적인 수행 공동체였다.


부처님은 이렇게 물질적인 소유물이 거의 없다시피 한 제자들에게도 보시를 강조했는데 그것은 자신처럼 진리를 나누어 주는 법보시를 하라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물론이 고 모든 생명체를 위해 진리를 전하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제자들은 물질 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을 나누어 줌으로써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었다.


따라서 출가자들의 법보시(法布施)와 재가자들의 재보시(財布施)는 불교도들이 지켜 야 할 기본적인 덕목이 되었는데 이는 부처님이 열반한 후 새로운 불교운동으로 나타난 대승불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대승불교는 아라한들의 결집(結集)을 통해 형성된 아함경과 니까야에 있는 부처님의 가르침 가운데 보시라는 말과 그 의미를 더욱 실천적 으로 심화시켰다. 대승의 보살이 반드시 행해야할 6가지 바라밀 가운데 제일 먼저 위치 한 보시바라밀이 바로 그것이다. 그 결과 불교는 2,500여 년 동안 변함없이‘나눔의 종교’로서 자리매김을 해 올 수 있었는데 보시는 현재 지구상에 퍼져 있는 수많은 불교 종파들의 불교도들이 아무런 이의 없이 공유하는 실천 덕목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의 불교도들은 나눔을 잘 실천하고 있는가? 한편으로는 그렇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지 않다. 출가자들인 스님들과 재가자인 신도들과의 사이에 일어 나는 법보시와 재보시는 부처님 당시처럼 활발하게 실천되고 있지만 교단 밖의 사회에 대한 출가자들과 재가자들의 보시는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불교도들의 대 사회적 인보시활동이두드러지지않은것은크게세가지이유에서라고생각해볼수있다.
 첫 번째 이유는‘내가 보시를 했다는 집착을 하지 마라’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의 강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행해지는 무주상보시의 사상적인 기원은『금강경(金剛經)』인 데 고려시대의 보조국사가『금강경』을 중요시한 다음부터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보시는 불 교도의 일반적인 덕목으로 굳어지기 시작했다. 특히『금강경』을 소의경전으로 하는 조계종 이 주류를 이루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사회 곳곳에서 행해지는 불교도의 보시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두 번째 이유는 불교도의 보시가 조직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각 사찰별로 여러 가지 명 칭의 신도회가 있지만 거의 대부분의 신도회들이 정기 법회에 참석하거나 교리를 공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봉사활동 등 대 사회활동을 목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그 결과 단체 명의 로 보시와 같은 활동을 하더라도 소규모이고 일시적인 것으로 그치는 바람에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는 일은 거의 없다.


세 번째 이유는 신도들 사이에 나눔이 없기 때문이다. 개신교나 천주교의 경우 신도들 간 에 교류가 활발한데 경제적으로 곤란한 신도에 대한 나눔이 일종의 품앗이 형태로 조직화되 어 있다. 하지만 불교도들은 신도들 사이의 교류가 활발하지 않으며 경제적인 나눔 역시 거의 없다.


따라서 보시라는 훌륭한 나눔의 정신을 배우고 실천하는 데도 불구하고 불교도들은 나눔 에 인색한 사람들이란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 나눔 활동을 하는 불교계의 대표적인 단체로는 1995년 설립되어 종합적인 사회복지 활동을 하고 있는‘조계종 사회복지재단’, 1990년대에 설립되어 국제기아ㆍ질병ㆍ문맹퇴치 를 목적으로 하는‘JTS(Join Together Society)’, 1994년 창립되어 장기 기증과 환자 돕기를 실천하는‘생명나눔실천본부’, 2003년에 설립되어 빈곤 국가의 지역개발 사업을 하 고 있는‘지구촌공생회’, 2004년부터 국내외의 빈곤층을 위한 여러 가지 활동을 시작한 ‘Lotus World’등이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가지는 위상에 비해 불교의 대 사회적인 나눔 활동은 아직 미약하기 이를 데 없다. 장기적인 경제불황으로 서민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심한 고통을 받고 있는 지금이 야말로 기존 단체들의 보다 활발한 활동과 새로운 단체들의 창립을 통해 나눔의 손길을 필 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다가감으로써 불교가 나눔의 종교임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