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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라벌의 원효(元曉)

탄탄스님
대덕사 주지 · 동국대 강사


대학에 출강하기 위해서 옛 서라벌 경주를 오랜만에 다녀왔다. 천년고도 경주의 매력은 아담한 동산처럼 또는 임산부의 풍만한 배처럼 생긴 왕릉의 푸근함이지싶다.


며칠 후면 보문단지의 벚꽃이며 건천 길목의 꽃망울이 흐드러지겠지 하며 시가 지를 거닐다가 문득 이 거리를 천 년 전에 원효도 걸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한국 불교사의 새벽을 연 원효의 서라 벌이 문득 그리워진다.


귀족 불교가 성행하던 당시 무애인(無碍人)을 자처하며 무애포(無碍匏)를 치고 무애가(無碍歌)를 부르며, 무애무(無碍舞) 를 추고 무지몽매한 민중에게 불심(佛心) 을 적시고 일깨워 주던 원효는 시정(市井) 에서 민중을 교화하고 사변적이고 난해한 불교를 쉽고,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불교로 포교를 시도한 것이다. 대중 불교, 생활불교, 실천불교를 이미 천 년 전에 주창한 것이다.


노래하며 춤추는 원효의 염불 불교는 일본으로 전해져 용약염불(踊躍念佛)의 씨앗이 되었으며, 7세기 나라(奈良)시대(時代)의 고승(高僧) 행기(行基), 10세기 헤이안(平安)시 대의 고승 공야(空也), 13세기 가마쿠라(鎌倉)시대의 고승 일편(一遍)의‘노래하며 춤추는 염불에 의한 제도(濟度)’의 뿌리가 바로 원효의 염불불교에 있다.


원효불교는 이 나라에서 뿐 아니라 일본에서 더욱 의미있고 가치가 높은 존재 이다.


불교학의 대가(大家) 김지견(金知見)박사의 고증에 의하면 일본불교 정토종(淨土宗)의 개조(開祖)인 13세기의 법연(法然)은 종명(宗名)이나 종지(宗旨)를 정할 때 당나라 정토불교의 대가인 고승 가재(迦才)나 규기(窺基)의 논저를 젖혀두고 원효대사가 지은 ‘유심안락도(遊心安樂道)’에 의지했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며, 지금도 일본의 많은 학자들이 원효를 연구하고 존경하며 동아시아 최고의 학승으로 대접하고 있다. 원효가
시정불교·민중불교로 편법전도를 꾀하였다면 의상은 산간불교·귀족불교로 정법을 지켰다.


일본불교에서 원효대사와 의상대사는 대명신(大明神)으로 신격화 됐음이 일본 국보 (國寶) ‘화엄연기(華嚴緣起)’또는 사찰마다 전승 되어온 탱화 등에 정확히 입증 되고 있다.
 
효의‘판비량론(判比量論)’필사본도 일본에서 대사(大師)의 위상을 말해주는 물증이다.
이 필사본에 8세기 초 일본 실력자인 광명황후(光明皇后)의 사인(私印)이 찍혀 있는 것으로 보아 왕실의 소장품이었을 정도로 대단한 귀중품이었다. 많은 병란이 있어 왔고 이 필사 본을 보관했던 큰 절이 불타 없어졌지만, 가장 먼저 위란을 당했을 때에도 들고 나가는 사보 (寺寶)가 되어 내려왔음을 알 수 있다.


일본 문자의 뿌리가 신라에 있었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원효대사의 일본에서의 위상을 말 해주는‘판비량론’이기에 연구해볼 가치는 상당하다. 이 밖에도 원효의 저술은 현존하는 것 보다도 전하지 않는 것이 더 많다.


잃어버린 저술은 그 편린이라도 찾아야 하고, 현존 저서일지라도 서지적인 검토나 엄격한 교감, 그리고 상세한 역주가 필요하다. 또한 생애에 대한 실증적인 검토나 원효 연구에 대한 학술적인 관심을 확산 시켜야 한다.


13세기 후반 일본의 진원(眞圓)은 원효의《보살계본특범표기(菩薩戒本特犯票記)》를주석 하여《특범요기조람집(特犯要記助覽集)》을 저술하여 지금까지 전하고 있다.
또한 현대적 학문방법에 의한 원효 연구의 역사도 거의 백년에 이른다.


근래에는 원효에 대한 관심이 더욱 고조되고 확산되어 여러 분야에서 많은 성과가 축적되고 있다.


불가(佛家)에서는 일찍이 출중한 고승을 용상(龍象)이라고 표현했다. 한국·중국·일본 불교계에서는 8세기부터 원효를 구룡대사(丘龍大師)로 존칭하였다. 그리고 당나라의 법장(法藏)을 향상대사(香象大師)라 하였다.


“향상(香象)의 분발하는 기세에 호랑이도 놀라 입을 닫고, 구룡(丘龍)의 천둥 같은 기세에 모든 짐승들 눈길을 피한다. (香象奮迅 虎狼卷舌丘龍雷電禽獸廻眼).” 이는 구룡과 향상에 대한 13세기 말 일본 낭유(郞遊)의 촌평이다. 구룡은 청구(靑丘)의 용 이라는 의미이다.


원효는 분명 용과도 같이 뛰어난 분, 그러기에 원효는‘만인을 대적할 만한 사람〔萬人之 敵〕’으로 동아시아 불교계의 거목임이 분명하다. 그 명성이 인류에 회자(膾炙)되어 1,300여 년의 세월이다.


7세기 신라 서라벌에서 활동 하였지만 한국·중국·일본 불교사(佛敎史)에 끼친 영향은 이와 같이 매우 지대할 뿐만 아니라 수많은 저서는 중국과 일본 등지에서도 두루 유통되었고 이에 영향을 받은 학승(學僧) 또한 수두룩하다.
양극화로 몸살을 앓고 있는 한국사회에, 원효의 원융회통의 화쟁사상이 절실한 시절이어서인지 서라벌의 그 원효가 너무도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