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철주
조계종 총무원 주임
지리산(智異山). 우리 역사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더불어 불교 성지이자 민족의 영산으로서 넉넉한 품을 벌려 국민들을 맞으며 사계절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고 있는 산이 바로 지리산이다.
화엄사(華嚴寺) 선등선원(禪燈禪院)은 바로 이 ‘국민 명산’ 지리산에 자리하고 있다. 백제 이후로 연기조사, 자장율사 등 시대별 고승들이 한번쯤은 거쳐간 대찰(大刹) 중의 대찰이다.
화엄사의 상징 각황전(覺皇殿)과 대웅전을 지나 조그만 오솔길을 따라 가면 선등선원은 속살을 살짝 보여준다. 
방부(房付)를 들인 스님들은 이제 곧 시작될 화두와의 씨름을 기다리며 선방을 정리하는 등 여념이 없다. 화엄사 주지 종삼스님의 안내로 선원 마당에 들어서자 선원장 현산스님이 온화한 미소로 일행을 반갑게 맞아 준다.
현산스님은 고우스님, 적명스님, 무여스님, 혜국스님 등과 함께 한국 선불교를 이끌고 있는 대표적인 선지식 중 한명이다.
침묵으로 가풍을 말하다!
현산스님과의 인터뷰를 위해 큰 방에 앉자 마자 한 기자가 질문을 던졌다.
“선등선원의 가풍은 무엇입니까?”
“......(침묵)...알겠습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하하하) 모르는 것을 바로 아는 것이 가풍입니다.”
현산스님의 알쏭달쏭한 말씀은 계속된다. “세상은 덧없고 몸뚱이는 한량없이 덧없는 것입니다. 언제 죽음과 재앙이 모든 살아있는 생명에게 닥칠지 모를 일입니다. 어제 한 스님이 아침공양을 한 뒤 갑자기 죽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스님도 그러는데 하물며 일반 인간은 각종 사고와 병은 물론이고 바람이 심하게 불어도 죽고 악인을 만나도 죽는 겁니다.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참선 공부를 부지런히 해야죠.”
생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다름 아닌 참선이고, 그 수행을 잘 할 수 있는 곳 중의 하나가 바로 선등선원이라는 얘기다.
2002년 하안거에 다시 문 열어
2002년 하안거에 다시 개원한 선등선원은 약 108평의 대중방과 부속 건물로 이뤄져 있다. 조계종립 태고선원과 거의 비슷한 규모다. 방부를 들인 스님들도 21명이나 되니 여느 총림의 선원에도 뒤지지 않는 규모다. 동안거에는 30명 이상의 납자가 찾아온다.
선등선원의 하루는 새벽 3시부터 시작된다. 예불을 마치면 곧바로 입선(入禪). 새벽 5시에 방선(放禪)해 몸을 풀었다가 8시에 다시 입선. 오직 화두를 들었다가 놓는 것으로 점철된 하루다. 보통 10시간 이상 정진을 하고 해제 직전에는 잠을 자지 않는 용맹정진을 한다.
화엄사에는 원래 세 곳의 선원이 있었다고 한다. 구층암의 남악선원, 탑전의 원류선원, 선등전의 선등선원. 지금은 선등선원 하나뿐이다. 이것 역시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최근에야 다시 문을 열었다.
“화엄사에 와 수행을 하면서 좋은 경지를 만났습니다. 한 빛 속으로 모든 세계가 사라지면서 몸뚱이도 사라지더군요. 50여년을 수행하기 위해 선방을 돌아다녔는데 정진해 보면 피로감이 전혀 없습니다. 다른 구참 스님들도 그리 느낀다니 역시 지리산 기운이 좋은 것 같습니다.”
명산 명당에 있는 선원답게 수좌스님들이 부담 없이 정진에만 열중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선등선원이다. 그래서일까? 수좌스님들을 외호하는 큰절의 소임스님들은 안거 때면 어김없이 몇 차례씩 선원에 불려 올라간다고 한다. 수행에 방해되는 일이 혹시 없는지 살피고 또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화엄사 주지 종삼스님은 “소임을 맡은 스님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곳이 선원”이라고 귀뜸한다.
현산스님은 100안거를 성만한 것으로 유명하다. 스님은 “박사와 판검사가 되기 위해서 사람들이 엄청난 노력을 하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며 “신묘한 지혜와 마음을 찾는 데 100안거는 오히려 적은 시간”이라고 겸손해 했다.
오직 마음의 불을 밝히기 위해 정진하는 선등선원. 그 기운은 지리산을 넘어 전국 제방으로 향해 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