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한스님 / 봉담선원장
3월부터 5월은 꽃 세상이다.
2월 초순부터 여수 돌산도에서 붉은 몽우리를 맺기 시작한 동백꽃은 영광 불갑사 뒷마당으로 번지며 서서히 몸집을 키우다가 3월이면 고창 선운사에서 온몸으로 만개한다. 그리고 그곳 막걸리 집 뒤뜰 돌벼락 언덕에서 화사(花蛇)처럼 꽃등을 켠 채 술 취한 미당(未堂)의 육자배기 가락을 양명히 기다리고 있다.
그 동백꽃의 매력은 필 때나 죽을 때나 주접스럽지 않은 데 있다. 그리고 끼리끼리 작당해 파당 짓지 않고, 함부로 고개 숙여 머리 조아리지 않는 데 있다.
동백꽃은 태어날 때도 초롱초롱하게 태어나고 죽을 때도 초롱초롱하게 죽는다. 단기필마의 장군처럼 용감하게 왔다 용감하게 간다. 적장의 칼날 앞에 절대로 목숨 구걸하지 않고, 죽을 때가 되면 제 스스로 제 모가지를 서슴없이 떨쳐버린다. 그래서 ‘문득’ 그리고 ‘후드득’이라는 낱말이 동백꽃의 죽음과는 가장 가까운 단어이다.
그러고 보면 동백꽃의 절명은 참으로 선연하다. 깔끔하고 엄정하다. 깨끗한 시작으로 깨끗이 살다 한 줌의 노욕(老慾)도 없이 깨끗한 종말을 맞는다. 정녕 깨끗한 추락이다. 즉비(卽非)다.
동백꽃의 선연한 추락을 가장 먼저 애도해주는 조문객은 매화다. 1월 중순부터 더디디더디게 작은 꽃눈을 내밀기 시작한 매화는 답답한 호흡을 참고 참다가 3월이 되면 한꺼번에 숨을 터트린다. 그러기에 그 터짐은 튀밥을 튀기는 것처럼 폭발적이면서도 찬란하다. 샘물처럼 명징하다. 그래서 매화가 한꺼번에 숨통을 터트린 순천 선암사에 가면 모든 경계를 잊는다. 생(生)과 사(死)의 경계도 잊고 노(老)와 병(病)의 경계도 잊으며 승(僧)과 속(俗), 애(愛)와 증(憎)의 경계도 다 잊는다. 오히려 그 모든 경계의 지평 위에 폭발하듯 피어난 매화의 명징한 기개를 보며 자신의 삶의 경계에 거미줄처럼 붙어있는 검불을 걷어낸다.
매화의 죽음은 언제나 풍장(風葬)이다. 건조한 봄바람이 꽃잎을 비처럼 거두어가고 나면 줄기엔 앙상한 뼈의 가지만 남는다. 참으로 명징하고 가벼운 산화(散華)다. 산화(散花)다.
비슷한 족속인 벚꽃과 복사꽃과 배꽃도 가볍고 사뿐하게 산화하려 하지만 매화의 가볍고 정갈한 산화는 미처 따라가지 못한다. 그래서 옛 선비들은 매화의 그 맑고 정갈한 기개와 가벼운 산화를 닮고 싶어 사군자를 칠 땐 맨 먼저 매화를 쳤는지도 모른다.
3월에 구례 산동마을에 모여 피는 산수유 꽃은 사람을 들뜨게 하지 않아서 좋다. 잔잔한 파스텔 빛의 노란 색깔로 어느 날 갑자기 햇병아리처럼 재잘거리다가 일몰의 햇살처럼 홀연히 종적을 감추어버린다. 일주일 전에 갔다가 일주일 후에 다시 가면 산수유나무들은 연두 빛 붓으로 이미 제 몸의 노란 물감을 지워버리고 없다. 그래서 산수유 꽃의 병아리 같은 마음엔 개나리꽃의 어미닭 같은 무거움과 진달래와 철쭉의 골 깊은 애증이 없다. 오고감에 중량감이 없는 공수래공수거 같은 꽃이다.
5월, 가장 늦게까지 봄을 붙들고 있는 꽃은 라일락의 향기가 아니라 소멸의 고통을 온몸으로 겪어내는 목련이다. 3월 중순께부터 초파일 연등 켜듯 한 등 두 등 심지를 돋우기 시작한 목련은 4월을 지나 5월이 되어서도 세상을 향한 자신의 존재 기록을 끈질기게 남기고 있다. 그래서 소멸의 고통도 그 어느 봄꽃보다 크고 느리다. 그렇게 크고 느리게 소멸해가는 목련의 종언을 보고 있으면 윤회의 희망보다 삶의 처연한 슬픔이 더 큰 무게로 다가온다.
그래서 그럴까. 목련은 세상과 좀처럼 타협하지 않는 꽃이다. 텃밭에, 정원에, 산비탈에, 아파트단지에, 운동장가에, 수목원에 저 홀로 외롭게 서서 존재의 눈을 부릅뜬 채 외로운 목숨을 끈덕지게 붙들고 있는 꽃이다. 그래서 목련의 죽음은 어느 꽃보다도 처절하고 남루하다. 참혹하고 끈질기다. 고통스럽고 끔찍하다. 일장춘몽인지도 모른 채 때에 맞게 쉽게 목숨을 놓지 못하는 인간의 깊은 원죄에 가장 가깝게 닿아있는 꽃이다. 갈 때 쉽게 가지 못하고, 병든 노구(老軀)를 제 손으로 쉽게 거둬들이지 못하고 중환자실에 누워 산소호흡기와 링거 주사를 몇 개씩 치렁치렁 꽂고 병든 짐승처럼 가쁜 숨을 깊이 몰아쉬고 있는 질긴 목숨은 처연하다 못해 때로 추하게 보인다. 저 백제처럼 계백처럼 추락할 땐 단호하게 추락하고 죽을 땐 미련 없이 죽는 것 또한 삶의 큰 미덕 아니겠는가.
그렇게 목련마저 지고나면 양명한 봄은 다 간다. 그리고 계절도 봄의 5월에서 초여름의 6월로 넘어간다. 그럼으로써 봄꽃 세상도 끝이다. 라일락과 아카시아와 밤꽃이 그 봄꽃 세상을 대신하고 싶어 냄새와 빛깔로 세상을 유혹해보지만, 꽃 세상은 이미 김빠진 맥주다.
동백에서 목련까지 그 봄꽃 세상 속엔 인간의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이 누드로 다 들어있다. 그 봄꽃 세상 속에 인간의 삶도 나체로 서 있다. 인생도 철학도 종교도 알몸으로 누워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