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문에 들어가기 위한 행동
조 현
한겨레신문 종교전문기자
마음은 몸을 갖고 있지 않아서
누구도, 언제라도 부술 수가 없다
몸을 진정으로 애착한다며
육체의 고통으로 해를 입는다.
집을 태우고 있는 불이
다른 집으로 번진다면
지푸라기 같이 불길이 번지는 것들을
끌어내어 옮기는 것이 옳은 일이다.
이처럼 어떤 것에 대한 집착으로
분노의 불이 번질 때
복덕의 보배가 타지 않도록
집착의 근원을 즉시 버려야 한다.
<입보리행론(入菩提行論)> 6장 인욕품의 내용들이다. ‘보리’는 깨달음을 뜻한다. 굳이 ‘입보리행론’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의 문에 들어가기 위한 행동’일 것이다. 청전 스님이 번역한 <입보리행론>에선 부제를 ‘보살행의, 실천에, 들어가는 길’이라고 붙였다.
<입보리행론>은 보살행을 강조하는, 티베트 불교에서 아주 소중한 경전이다. 달라이 라마 존자는 새해 법회나 특별법회에서 <입보리행론>을 자주 강론해왔다. 달라이 라마가 집전하는 법회의 시작과 끝엔 늘 티베트말 게송이 낭송 된다.
“장춥 셈촉 린포체 / 마께 빠남 께규르찍 / 께빠 냠빠 메빠이 / 공네 공동 팰와르쇼”
이 말을 우리말로 풀면 “보리심의 귀한 보석이며 / 보리심을 아직 일깨우지 않은 이들은 일깨우고 / 보리심을 일으킨 이는 기울지 않도록 하며 / 보리심은 항상 위로 위로 증장할지어다.”란 뜻이다. 이것으로만 보아도, 달라이 라마와 티베트불교에서 <입보리행론>을 얼마나 중히 여기는 지 알 수 있다.
이 경전의 저자인 샨티 데바는 7~8세기 인도 나란다 대학에서 대승의 중요 사상을 가르친 중관학자였다. 한자로는 적천(寂天) 스님이다.
그는 남인도의 사무라스트라국의 왕자였다고 한다. 어느 날 꿈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했을 때, “왕의 자리는 지옥과 같다”는 말을 들었다. 문수보살의 말을 잊지 않고 있던 그는 왕위를 계승하기 하루 전날 밤 왕궁을 몰래 빠져 나와 나란다사원으로 가 출가했다.
나는 10여 년 전과 3년 전 나란다대학을 두 번 방문한 적이 있다. 마우리아 왕조 수도인 파트나에서 멀지 않은 라즈기르에서 북쪽으로 13킬로미터쯤에 위치해 있다. 굽타왕조의 두 번째 왕인 쿠마라굽타 1세에 의해 320년 창건된 나란다사원은 1200년 초 아프가니스탄에서 일어난 이슬람의 고르왕조의 장군 무하마드의 인도 침공으로 파괴됐다. 당시 나란다사원은 6개월간 불에 타 철저히 파괴됐다고 한다. 수백 년 간 흙 속에 파묻혀 있던 나란다 사원은 1861년 영국의 고고학자 커닝햄에 의해 그 존재가 알려진 뒤 1916년부터 본격적으로 발굴됐다.
현장 스님의 <대상대자은사삼장법사전>에 나오는 나란다대학은 늘 1만 명의 승려로 넘쳐나고, 매일 100여 개의 강좌가 열리는 매머드급 종합대학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종합대학인 셈이다. 나란다대학에선 대승과 소승십팔부를 겸해 배울 수 있었고, 불경 뿐 아니라 베다 등의 인도 전통 경전과 의료, 수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학문이 탐구되고 가르쳐지고 있었다고 전한다. 당시 경론 20부를 해득한 이들이 무려 1천 여 명에 달했고, 30부를 해득하는 승려는 5백 명, 50부를 해득하는 승려도 현장 스님을 비롯해 10명이나 됐다고 한다.
나란다대학에선 삼장(三藏)의 깊은 이치가 논의됐기 때문에 그 대학에 다니기만 해도 대중들의 큰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나란다대학엔 전 세계에서 온 유학생들로 붐볐다. <왕오천축국전>을 쓴 신라 승 혜초 스님과 의정 스님 등도 나란다대학에서 수학했다.
그런데 나란다대학은 입학하기도 쉽지 않아 강사 스님들의 질문에 답변하지 못하면 입학할 수도 없어 고국으로 돌아가야 했던 사정이 <대당서역기>에 기록돼 있다.
“나란다 대학에서 벌어지는 논의마당에 끼고 싶어 다른 나라나 이역에서 온 사람들 중에는 질문에 답하지 못해 굴복하고 돌아가는 자도 많으니, 예나 지금이나 학문에 깊이 통달해 있는 사람만이 비로소 입문할 수 있었다. 유학하러 왔던 젊은 학자들이 학문에 관해 상세하게 논하지만, 그 자리에서 물러나 돌아가고 마는 사람이 10명 가운데 7~8명이나 된다. 세상 이치에 환하다고 자부하는 나머지 2~3명도 대중들과 차례로 질문을 주고받다 보면, 점차 예리함이 꺾이고 명성이 퇴색해 입문하지 못했다.”
신라승들과 당나라 승려들은 중국의 서쪽 끝 신장의 돈황 인근에 위치한 타클라마칸을 넘어 인도로 향했다. 그곳에 들어가면 살아나는 사람보다 영원히 나오지 못해 ‘죽음의 사막’이라 불리는 타클라마칸에 가보면 목숨을 아끼지 않는 치열한 구법정신에 먹먹해지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들이 그렇게 목숨을 걸고 갈만큼 나란다대학의 수준은 대단했다. 달라이 라마 존자의 사찰인 북인도 히말라야 다람살라의 남걀사원 법당 안에는 나란다사원 전승의 논사 17분의 탕카가 모셔져 있다. 용수존자(나가르주나), 윌칭존자(찬드라키르티), 적천존자(산티데바), 무착존자(아사가), 세친존자(바수반두), 연화계존자(카말라일라), 적호존자(산타락시타), 아티샤존자 등 대부분이 불교계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들이다.
우리나라에선 아직도 선(禪)이 마치 책이나 학문의 세계와 동떨어진 것처럼 치부하고, 선승에 비해 학승을 우습게 아는 풍조마저 없지 않지만, 나란다대학을 보면 깨달음과 공부, 수행과 학문, 깨달음과 실천이 결코 둘일 수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나란다대학에서 후학들을 가르쳤던 강사 스님들은 지상의 어떤 선승 이상의 경지를 보여주었다. 나란다대학에서 산티데바가 보인 마지막 모습은 다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환희로움을 만끽하게 한다.
나란다대학에선 전통적으로 큰스님들이 경을 외우는 법회가 열리곤 했다. 어느 날 산티데바의 차례가 왔다. 나란다대학 법회장에는 산티데바가 어떤 법문을 외울지 궁금해 몰려들었다. 이 자리에서 산티데바는 “여태까지 외웠던 것을 외울까? 아니면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경을 외워볼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대중들은 ‘새로운 경’을 요청했다. 산티데바는 한 경을 외우기 시작했다.
“만일 사물과 비사물들이 마음 앞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때 형상은 구분이 없어지고 대상이 존재하지 않아 완전히 평정되리라.”
이 게송을 낭송할 무렵, 산티데바의 몸은 사라지고 오직 음성만이 하늘에서 들려왔다. 산티데바는 그 게송을 끝으로 다시는 세상에 몸을 나투지 않았다. 대중들은 환희에 젖어 산티데바가 외운 내용을 기억해 기록했다. 그 내용이 바로 <입보리행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