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한국선학회 회장
1.
이번 호에서는 고려 말 조선 초의 대표적 승려 두 분의 선사상을 소개하기로 한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를 연결하는 불교계의 학승으로 지공(指空, ?~1363), 나옹(懶翁, 1320~1376), 무학(無學, 1327~1405)을 꼽을 수 있다. 이 세 스님은 ‘삼대화상三代和尙’이라는 용어로 상징화 되어 한국불교에서는 지금도 불교의 각종 제례 의식에서 증명 법사로 추앙 받고 있다. 그런데 무학 스님의 경우는 남아있는 자료가 별로 없어서 그의 선사상을 알아보기가 쉽지 않아 생략한다.
지공과 나옹 두 스승 제자는 자신이 처한 당시의 지식환경에 따라 표현은 약간씩 다르지만, 실천이론에서는 ‘돈오무심’의 방법으로 일관되고, 형이상학적으로 ‘진여자성’의 실재를 인정하는 진여연기론을 고수하고 있다. 진여자성의 실재성이 인도 불교에서는 용인되지 않았지만, 동북아시아 불교권에서는 매우 중요하게 그것도 밀도 있게 논변되었다. 우리는 이런 특징을 동북아시아 권에서 새롭게 재생산되었다고 평가되는 선불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진여자성의 실재성과 그것을 경험하기 위한 방법으로 돈오무심 이론은 동북아시아에서는 화엄사상이나 선사상 속에 공통적으로 전개된다. 이런 사상은 여말 선초 시기에는 우리나라에도 소개된다. 그러나 그것은 시대가 조선 후기로 올수록 개별자의 한계를 초월하는 보편자로서 진여의 실재성은 강조되는 한편, 반면에 돈오무심 사상은 오히려 약화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 변화는 이 지역의 불교 사상을 이해함에 매우 중요한 점이다. 차례대로 그들의 선사상을 소개하기로 한다. 이 두 스님의 선사상을 잘 이해하면, 한국불교의 현재 모습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2.
먼저 지공 화상의 선사상을 간략하게 알아보기로 하자. 지공 화상의 작품으로 알려진 고문서가 연세대 중앙도서관 귀중본실에 보관되어 있다. 제목은 『불조전심서천종파지요佛祖傳心
西天宗派指要』인데, 이 책의 핵심 주제는 “단박에 해탈의 세계로 들어가는 핵심 법문”이다. 구성은 크게 세 단락으로 나누어진다.
첫째 단락은 비파시불에서 시작하는 과거 칠불을 비롯하여 초조 가섭에서 지공 화상까지에 이르는 역대 조사들의 전법 게송을 기록하고 있다.
둘째 단락은 「돈입무생대해탈법문지요서頓入無生大解脫法門持要序」인데, 말 그대로 ‘서론’
이다.
셋째 단락은 「지요持要」라는 제목 아래 지공과 그의 제자들이 주고받은 문답이다. 이 부분이 ‘본론’이다.
위에서 밝힌 이 책의 핵심 주제에서 알 수 있듯이, 지공 화상은 우리에게 법신을 단박에 깨달아 본원本源을 투철히 자각할 것을 강조한다. 어떻게 이런 이론이 가능한가? 무심無心하라고 한다. ‘남이 없는 無生’의 상태에서 계정혜 3학을 무심하게 수행해야만 해탈의 세계에 들
수 있다는 입장이다. 무작위적인 티 없는 수행을 통해서 열반의 세계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화상께서는 이런 게송을 우리들에게 남기고 있다.
解脫無生三昧宗 해탈무생삼매종
性心非有亦非空 성심비유역비공
根塵自在身淸淨 근진자재신청정
圓通無念卽圓通 원통무념즉원통
생함이 없는 해탈을 추구하는 삼매의 가르침은
성품도 아니고 마음도 아니지만 공허한 것도 아니네.
감각 기관이나 대상 세계에 걸림이 없지만 법신은 청정하고
무념無念하기만 하면 완전하게 관통한다.
이상과 같이 무위법의 하나인 열반의 세계에 무심히 단박에 들어가는 수행, 다시 말하면
무심 사상은 그의 제자 나옹을 거쳐 이후 조선시대 선 사상의 근간을 이루었다. 한편 지공 화상은 체-용의 이론을 빌어서 불생불멸하는 진여자성의 상주불멸과, 진여자성 자체와 그것에서 파생되는 진여자성의 작용을 설명한다. 이것을 그는 게송을 통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無來無去妙無窮 무래무거묘무궁
非生非滅亦非空 비생비멸역비공
自在如如元不動 자재여여원부동
法身體性悉皆同 법신체성실개동
오고 감도 없어 오묘함은 다함이 없고
생기지도 사라지지도 않지만 공한 것도 아니네.
자유자재하여 원래 변동이 없어
법신의 바탕은 모두 그러하네.
3.
다음은 나옹 화상의 선사상을 알아보기로 하자. 선사들이 ‘진여자성’을 강조한다는 이야기는 앞에서도 했다. 나옹 화상의 경우는 ‘진여자성’이라는 말 대신 주로 ‘본래면목’, ‘본지풍광’,
‘신령한 구슬’ 등으로 표현하는데, 그 속 내용은 같다. 화상의 작품 「완주가翫珠歌」에 그 특징이 잘 드러난다.
這靈珠 極玲瓏  저령주 극령롱
體徧河沙內外空 체편하사내외공
人人帒裏堂堂有 인인대리당당유
弄去弄來弄莫窮 롱거롱래롱막궁
신령한 이 구슬 지극히 영롱하여
그 자체는 항하사 세계를 둘러싸 안팎이 비었는데
사람마다 포대 속에 당당히 들어 있어서
언제나 가지고 놀아도 끝이 없구나.
或摩尼 或靈珠 혹마니 혹령주
名相雖多體不殊 명상수다체불수
刹刹塵塵明了了 찰찰진진명료료
還如朗月滿江秋 환여랑월만강추
마니 구슬이라고도 하고 신령한 구슬이라고 하니
이름과 모양은 아무리 많아도 자체는 다르지 않네
세계마다 티끌마다 분명하여
밝은 달이 가을 강에 가득한 듯하여라.
여기서 나옹선사는 ‘진여본성’을 구슬에 비유하여 노래한 것이다. 사람마다 ‘진여본성’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선종에서 이렇게 ‘진여본성’의 실재를 인정하면서도 천태종이나 화엄종과 다른 것은, ‘진여본성’이 현실과 어떻게 관계하고 있는지를 이론적으로 충분히 논증하지
않은 점이다. 그리고 법성종法性宗이라는 큰 범주 속에서 선과 화엄이 각각 그 수행론의 입장을 달리한 것이다. 화엄종이 점오와 돈오를 모두 주장했다면, 선종은 돈오만을 주장한 것이다.
나옹 화상의 이런 돈오 사상은 화상이 남긴 「보설」 속에 이렇게 전해지고 있다.
“여러분은 알아야 한다. 자기에게 있다는 ‘그 하나(一着子)’는 하늘에 두루하고 땅에 가득하지만, 3세의 모든 부처도 역대의 조사도 천하의 선지식들도 감히 바른 눈으로 보지 못하니
중요한 것은 그 당사자가 그 자리에 당장 깨닫는 길 뿐이다. 그러므로 선배 큰 스님네들은 그대들이 당장 깨달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부득이 하게 방편을 드리워 그대들에게 아무 의미도 없는 그 화두를 참구하게 한 것이다.”
우리는 바로 여기에서 나옹선사는 당사자가 스스로 단박에 깨칠 것을 강조함을 알 수 있다. 화두를 참구하게 하는 것도 결국은 스스로 당장에 깨치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나옹은 선종의 핵심 사상인 돈오 사상을 잘 이어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돈오 사상의 이면에는 ‘진여자성’ 사상과 짝을 이루고 있다.
4.
인도 문화에서 발생한 불교는 당시 브라만교의 ‘실체론적’ 우주론을 맹렬하게 반격했다. 모든 개별성과 차별을 초월한 보편자로서의 아트만에 대한 부정이 바로 불교의 무아 사상이다.
그런데 이런 초기 불교의 입장은 다른 문화권인 동북아시아에 전파되면서부터 ‘실재론적’으로 재해석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개별적인 자아의 근원에 또는 그것을 포괄하는 근거로서의 본래성이 요청되었다.
동북아시아의 불교권에 속하는 고려말의 불교 학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사상 중의 하나는 진여연기론에 입각한 불성사상이다. 위에서 본 지공 화상과 나옹 화상의 선사상도 그 한 예이다. 진여자성을 근거로 하는 실재론적 보편론은 조선 중기와 후기를 지나면서는 더욱 심화되어, 중국과는 또 다른 독특한 모습으로 불교가 변화한다. 중국 땅에서는 진여자성 사상과 돈오 무심 사상을 두 축으로 해서 불교의 중국화가 진행되었지만, 조선 중기 이후에는 진여자성의 보편성에 더 많은 가치를 두면서 이 지역의 불교 사상을 이루어 갔다. 그리하여 조선 중기에 들어서면서 부터는 돈오 무심 사상이 많이 희석되었다. 이 점은 조선의 불교 사상을 중국과 같은 동북아시아의 불교권에 속하면서도 그것과는 또 다른 한국적 특징으로 평가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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