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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이지숙


수필가·문화센터 강사


햇살이는 대학교수로 정년퇴직한 노부부와 함께 그림 같은 집에서 가족처럼 살고 있는 반려견이다. 자식을 모두 출가시키고 교외의 전원주택에서 둘만이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노부부에게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햇살이는, 지금 노부부가 그 누구보다도 아끼는 자식이면서 동반자이다.


노부부가 외출할 때는 문 앞까지 나와 배웅해주고, 몸이 아플 때는 옆으로 와서 끙끙거리며 애닲아 한다. 또 노부부가 귀가할 때는 꼬리를 힘차게 흔들며 귀가를 환영하면서 오랜 이별 뒤의 만남이라도 한 듯 만남의 행진곡을 크게 부른다.


어느 자식이 이토록 이 노부부를 반겨주고 걱정해주며 생각해줄까! 옆에서 지켜보는 우리도 햇살이의 재롱이 무척 사랑스럽고 신기하게 느껴진다. 집으로 귀가했을 때 꼬리를 흔들며 맘껏 반가움을 표시하는 햇살이와 조우하는 그 순간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말하는 노부부.


발레리나를 연상시키는 레이스 달린 예쁜 옷을 입혀 외출하면 주위 사람들의 시선은 햇살이에게로 몰리고 “예쁘다”라고 감탄하는 소리를 듣고 난 햇살이 아빠는 득의양양 입가에 함박꽃 같은 미소가 번진다. 마치 자기 자식이 칭찬을 받는 듯 햇살이를 자랑스러워하며 햇살이와의 외출을 매우 즐기는 그 모습을 보는 우리도 입가에 분꽃 같은 작은 미소가 번진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어도 전혀 감정의 교류를 못 느끼고, 공허한 메아리만 울리는 소통의 부재를 느끼는 요즘. 이렇듯 언어로 대화를 나눌 수는 없지만 그 눈빛, 표정, 꼬리의 흔듦으로 인간 이상으로서의 교감과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짐을 느끼는 순간 어쩌면 반려견이 인정 없는 못된 인간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나의 fact를 두고, 서로가 각자의 입장 차이로 어쩌면 저렇게 다른 해석을 할 수 있을까에 놀랄 뿐인 요즘, 햇살이와 같은 반려견의 존재는 감정의 순화, 생명의 연장 의욕, 나아가 삶의 의욕을 고취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주변에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어도 뭔가 허전하고 쓸쓸함을 느끼는 소통의 단절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지금 또 하나의 동반자를 찾기 위해 헤매고 있는지도 모른다.


7살 된 햇살이의 나이는 사람으로 치면 중년의 나이인데 아직도 저렇게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모습으로 주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을 보면서 우리네 인간도 나이가 들수록 더욱 고운 향기가 나는 인간미의 소유자가 되어야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햇살이가 예전보다 움직임이 둔해지고 아픈 구석도 많아지면서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잠깐의 즐거움을 위해 선택한 가족이 아니기에 햇살이의 나이 듦이 무척 안타까워 보인다. 우수어린 촉촉한 검은 눈망울은 사람을 현혹시키기에 충분하고 밍크처럼 부드럽고 고운 하얀 털과 날씬한 몸매는 인간으로 치면 절세미인에 가까운 햇살이!


그러나 햇살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 외모보다도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릴 줄 알고, 주인의 기쁨과 슬픔을 잘 읽고 공감해 주기 때문이다. 주인이 기뻐하는 일이 있으면 마치 입가에 미소를 띤 듯 밝은 표정으로 환호해주고, 슬퍼하는 듯 보이면 눈가에 촉촉한 물기를 머금은 채 위로해주는 듯한 공감의 메시기를 보내는 햇살이!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 서로 감정을 속이고 기만하며 무거운 침묵 속에 살아가는 인간보다 감정표현에 솔직한 햇살이는 소통의 작은 기쁨이 커다란 강물이 되어 영혼을 적셔주는 듯한 에너지를 제공해주는 소중한 보배임에 틀림없다.


“관심이란 나 아닌 타인에게 마음 한자리를 내어주는 일”이라고 한다. 또한 관심은 사랑의 첫
단계이고 완성인 것 같다. 주위의 침묵과 무관심 속에 더욱 고독의 늪에 빠지고 절망하며 삶의 끈을 놓으려는 청소년, 독거노인이 점점 늘고 있다. 독거노인의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1위로 점점 혼자 살고 있는 가구 수가 증가 추세인 요즘, 외롭고 소외된 이웃에게 사랑으로 보듬고 따뜻한 손 한번 내밀어 사랑의 식탁이 차려지는 기쁨을 느껴봄은 어떨까?


누군가의 가슴속에 진정한 교감을 느끼게 해주는 교감의 메신저로, 행복의 엔돌핀을 샘솟게 해주는 행복의 지킴이로, 보고 있어도 항상 그리워지는 애인 같은 소중한 존재로 기억되도록 매화꽃 향기 가득한 봄에 더욱 사랑하고, 현재 진행형의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자.


어려운 이웃에게 햇살처럼 환한 빛을 주어 희망을 잃지 않게 하라고 노부부가 지어준 이름처럼 햇살이가 노부부에게 영원히 새로운 꽃으로 피어나는 기쁨을 선사해주는 존재가 되길 조심스레 빌어 본다.


오늘따라 예쁘게 치장한 햇살이와 화려한 외출을 하는 노부부의 뒷모습이 더욱 평화스럽고 행복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