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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 바른 사유와 실천의 북극성으로 향하는 길

 


달라이라마
티베트 승왕


관세음보살의 자비는 두루 평등하네.
문수보살의 자비는 두루 원만하네.
설산왕국 티베트의 대학자 롭상닥빠께 예경 올립니다.
삼계에 비할 바 없는 일체지자 불보님께 귀의하오며
수승한 진리로 적정에 안내하는 법보에 귀의하오며
삼학의 길로 해탈에 안내하는 승보에 예경 올립니다.


지난해 12월 29일은 티베트불교 겔룩빠의 종조 쫑카파대사의 기일이었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라마(뗀진갸초, 86)는 다람살라 관저에서 602주기 법회를 거행했다. 예년 같으면 티베트불교의 제2 승가대학이 건립된 남인도 벨라쿠페 승원 도시에서 열릴 법회이다. 코로나19 전염의 장기화로 인한 방역 조치로 인해 비대면 법회가 진행되는 가운데 올해 3월 티베트 로사 보름 법회는 야단법석으로 열린다는 기대가 크다.
간덴 티 린포체께서 달라이라마 성하에게 만다라 공양을 올리는 의식으로 법회는 시작되었다. 린포체는 법의 스승이신 달라이라마에게 권청 의식을 거행했다. 세간의 일체가 공임을 알아 일체중생의 깨달음을 위하는 보살도의 서원을 세우는 내용이다. 오직 깨달음을 위하여 법을 청하고 행하니 그로 얻는 복덕 자량으로 오롯한 보살도를 행하겠노라 다짐한다.


불자 여러분. 선지식으로부터 듣고 합리적으로 사유한 바를 실천하는 것이 수행입니다. 세속의 8가지 법을 듣고 헤아리는 것이 그것입니다. 저는 스승님 링린포체를 통해 현관장엄론과 입중론을 구전 가르침으로 받은 이래로 지금까지 암송하며 그 의미를 묻고 해석하며 되새기고 있습니다.
우리가 종조 쫑카빠 대사의 기일을 기리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이미 열반에 드신 스승님 영전에 왜 화려한 공양을 올리는가요. 그 이유는 가르침을 실천으로 옮기는 목적에 대해 바른 동기 부여를 하기 위함입니다. 겔룩빠는 황모파로 티베트불교에서 구분이 지어지지만, 붓다의 법은 색으로 법을 나누는 경우가 없습니다. 진리라고 하는 법은 뛰어난 궁극의 지향점이어서 따로 구별이 없습니다.


“나는 이루고자 하는 바를 성취하겠노라.”


불자 여러분. 선을 더불어 기뻐하고 교만심을 버림으로써 스스로 복덕 자량을 성장시키기 바랍니다. 많이 듣고 다양한 가르침을 받아 정진하며 지혜의 보고를 발견하고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공성의 핵심을 간파하고자 한다면, 중론의 6부 논서를 자세히 헤아려 사물의 이치를 파악해야 합니다. 이어서 정견이 이끄는 핵심을 따르도록 해야 합니다.
금강승 수행도는 바라밀 수행도에 비해 상근기에 해당합니다. 시간의 연대에 따른 불법 수행의 단계 가운데 이보다 뛰어난 수행의 방법은 아직 나오지 못했습니다. 성취의 보고인 이 길에 인간의 생을 온전히 공양 올려 법의 정수를 맛보고 이루신 분이 바로 겔룩빠의 종조 쫑카파 대사입니다. 그 가르침 속에서 굳건한 신심으로 모든 법이 수행으로 연결되도록 제자를 인도해 주고 계십니다. 
붓다께서 행하신 길이 바로 해탈의 지도입니다. 일체중생이 법의 핵심을 이해하도록 온전히 이해하여 도의 핵심으로 심화시키도록 조력합니다. 정법을 수지 하는 것은 수행자의 뼈대와 같습니다. 이처럼 얻은 선업으로 붓다의 위없는 수행을 따르는 것만이 정도입니다.
해탈을 구하는 모든 이들이 오늘 한마음으로 존귀하신 선지식께 진심으로 법을 구합니다. 출리심 정견 그리고 보리심을 내어 윤회의 안락함에 나태함 없이 수승한 법을 구하여 이행하고자 합니다.


“인간으로 태어나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 수명을 기약할 수 없음을 알아 윤회의 본성을 깨우쳐 부디 보리심을 일으키소서.”


‘나’라고 하는 무명의 덫에서 어서 빨리 빠져나오도록 정진해야 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바가 지닌 오류를 바르게 알아차려 착각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여전히 우리는 업이라고 하는 족쇄로 인해 진실을 명확히 보지 못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삼계란 본래 발생함이 없음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나와 구별이 없는 우리 인간에게 연민의 마음을 일으켜 세속과 진여의 도리를 헤아릴 수 있도록 서로의 조력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헤아림이 바로 깨달음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연기의 도리를 이해하여 깨달음의 성취로 향하십시오. 상호가 의존하여 비로소 발생하기에 독립되어 존재하는 실체라는 것은 없음을 알아차리십시오. 그것을 이해하면 비로소 내면 또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출리심이 열리는 것입니다.
본성이란 무엇인가. 머무는 바 없음입니다. 내가 가리킬 대상이 없습니다. 단지 서로가 의존하여 있을 뿐입니다. 내가 보는 것처럼 그대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는 이치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 수행의 차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