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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행증’으로 읽는 󰡔화엄경󰡕 ⑯ 실천(2/6) 10주住를 어떻게 실천할까?

신규탁(연세대 철학과 교수)


1.
독자들께서는 연재의 고정제목이 <‘신해행증’으로 읽는 󰡔화엄경󰡕>임을 한 번 더 주목하시기 바란다. 경전을 전문으로 연구하던 ‘의해승義解僧’들은, 경전을 해설할 때 경전 전체의 문단을 나누고 다시 각 문단 내에서도 세부 과목을 나누어 분석적이고 조직적으로 연구를 했다. 󰡔화엄경󰡕도 역시 이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과목과 단락을 한문으로 쓰면 ‘과단科段’이라고 한다. 강원의 일상에서는 ‘과목 치기’라고도 한다. 그물을 치듯이, 나무가 가지를 쳐서 뻗어나가듯이, 그렇게 하나에서 여럿으로 펼쳐가면서도 그것들이 모두 뿌리와 연결된다.
필자의 경우는 책상머리 가까운 곳에 중요 경전을 ‘과목 치기’한 수첩을 두고 수시로 열어본다. 조선 영조 무렵에 활약하던 화엄강백 묵암 최눌(1717~1790) 큰스님께서 만든 󰡔화엄품목󰡕이다. 접어서 만든 ‘첩자帖子’ 형식의 책인데, 이 속에는 󰡔화엄경󰡕 관련 ‘과목 치기’가 들어있다. 중국의 청량 징관 국사의 󰡔화엄경수소연의초󰡕를 기준으로 해서 중요한 과목만 간략하게 추린 것이다.
청량 스님은 󰡔화엄경󰡕 전체에 등장하는 ‘질문-대답’이 서로 어떻게 이어져가는지에 주목했다. 강학의 전문가들은 이것을 ‘문답상속과問答相續科’라고 한다. 독서에는 요령이 필요하다. 󰡔화엄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질문’이 어느 대목에서 어떻게 ‘대답’되는가? 이 점에 주목했다.
질문과 대답을 잘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중심되는 주제가 있다. 크게 넷이다. 그것이 바로 ‘신해행증’이다. 지금 필자는 독자 여러분들과 세 번째의 ‘행行’을 주제로 한 질문과 대답을 살펴보고 있다. ‘행行’을 우리말로 번역해서 ‘실천’이라 하여 제목에 <실천(2/6)>라 했다. 그러면 <2/6>은 무슨 뜻인가? <실천>을 주제로 한 문답이 펼쳐지는 대목은 󰡔화엄경󰡕 총 39품 중에서 제38품에 해당하는 「이세간품 제38」인데, 「이세간품」에 등장하는 질문 대답을 크게 문단 나누면 모두 6문단이다. 그 6문단 중에서 이번 달 4월호에서는 제2 문단이라는 뜻에서 <2/6>라고 표시했다.


2.
「이세간품 제38」은 좀 특별한 점이 있다. 서진西晉의 축법호(Dharmarakṣa) 스님에 의해서 총 6권으로 󰡔도세품경度世品經󰡕이 번역된 바 있다. 이때의 ‘도度’는 ‘이離’와 같은 뜻이다. ‘건너가다’, ‘떠나가다’는 뜻이니 일맥상통한다. ‘세간’을 벗어나 ‘열반’으로 들어간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실천수행이 있어야 하는 데, 바로 이곳에서 그것을 설하고 있다. 그만큼 󰡔화엄경󰡕의 핵심 중의 핵심이다. 「이세간품」의 첫 대목을 운허 스님의 번역으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그때 세존이 마가다국 고요한 법 보리도량의 보광명전에서 연화장 사자좌에 앉으셨는데, (2)고요하게 깨달음이 다 원만하시니 두 가지 행이 영원히 끊였으며, 모양 없는 법을 통달하여 부처의 머무는 데 머무르고, 부처의 평등함을 얻어 막힘이 없는 곳에 이르며, 움직일 수 없는 법에 행함이 걸림 없으며, 헤아릴 수 없는 데 서서 세 세상을 두루 보며, 몸은 모든 국토에 항상 가득하고 지혜는 온갖 법을 밝게 통달하였으며, 모든 행을 분명히 알고 모든 의심을 끊었으며, 측량할 수 없는 몸과 모든 보살의 구하는 지혜로 부처의 둘이 없이 끝닿은 저 언덕에 이르며, 여래의 평등한 해탈을 갖추고 복판과 언저리가 없는 부처의 평등한 곳을 증득하였으므로 법계와 동등하고 허공계와 같았다.
(3)말할 수 없는 백천억 나유타 세계의 티끌 수 보살 마하살과 함께 계셨으니 모두 한 생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이들이라. 각각 다른 지방의 가지가지 국토로부터 와서 모이었다.


위의 본문에 필자가 임의로 (1) (2) (3) 부호를 붙였다. 과목을 나누기 위함이다. (1)은 기세간의 원만을, (2)는 지정각세간의 원만을, (3)은 중생세간의 원만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이렇게 쪼개 읽어야 󰡔화엄경󰡕의 묘미를 맛볼 수 있다. (1)은 설법이 일어나는 장소를 소개하는 대목이고, (2)는 설법하시는 부처님의 정신세계를 드러내는 대목이고, (3)은 설법을 듣는 대중들을 소개하는 대목이다.
이상을 ①<서분序分>이라 한다. 이어서 ②<삼매분三昧分>이 시작된다. 보현보살이 ‘불화장엄삼매’, 즉 화엄삼매에 들어간다. 이어서 세상이 여섯 종류로 진통하여 청중들을 주목하게 하는 ③<발기분發起分>이 소개된다. 이어서 보현보살이 삼매에서 일어나는 ④<기분起分>이 짧게 소개된다. 이어서 보혜보살이 질문을 청하는 부분 ⑤<청분請分>이 이어진다. 모두 200개의 질문이 쏟아지는데, 그것을 조목조목 나누어보면 다음과 같다.
신信에 관한 질문 20가지, 주住에 관한 질문 20가지, 行행에 관한 질문 30가지, 회향回向에 관한 질문 29가지, 지地에 관한 질문 50가지, 인원과만因圓果滿에 관한 질문 51가지이다.
이어서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펼쳐지는 ⑥<설분說分>이 길게 조목조목 나온다. 이어서 이 법문의 이름을 ‘보살의 광대하고 청정한 행’이라고 맺어 붙여주시면서 중생들에게 부지런히 닦을 것을 권하는 ⑦<결권분結卷分>이 소개된다. 이어서 무수한 세계가 저마다 진동하고 광명을 발산하는 ⑧<상서분祥瑞分>이, 또 이어서 주변 시방 세계에 계시는 모든 부처님이 이제까지의 설법이 참된 것이라고 찬탄 증명하는 ⑨<증성분證成分>이, 또 이어서 게송으로 거듭 강조하는 ⑩<게송분偈頌分>으로 끝을 맺는다.


3.
이상의 문단 나누기를 이해하신 독자라면, ⑤<청분請分>과 ⑥<설분說分>이 핵심임을 아실 것이다. ‘질문-대답’을 6종으로 나눈 것은 󰡔도세경󰡕의 번역에서 시작되었다. 그것이 훗날 강사 스님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여섯이란 위에서도 보았듯이, ①신信, ②주住, ③行행, ④회향回向, ⑤지地, ⑥인원과만因圓果滿이다. 󰡔화엄경󰡕을 좀 읽어보신 분은 얼른 눈치 채셨을 것이다. 위에서 소개한 여섯 종류의 주제는 이미 이전에 각 품별로 등장했던 것을 말이다. 그렇다. 다만 그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 이 다름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간단하게 그 다른 점을 소개하면, 이전과 지금이 주제는 같지만, 이전에는 ‘이론’에 초점을 맞추었고, 지금은 ‘실천’에 초점을 맞춘 점이 다르다.
<10주住>를 어떻게 실천할까를 물은 질문에 대한 대답을 간단하게 정리해보기로 한다. 질문이 20종이 나왔으니 대답도 역시 20종으로 조목별로 한다. 20종의 대답에 대해 청량 징관 국사는 󰡔화엄경수소연의초󰡕에서 「십주품 제15」의 10주를 따라 배속한다. 10주란 ①발심주(4), ②치지주(2), ③수행주(2), ④생귀주(1), ⑤구족방편주(1), ⑥정심주(2), ⑦불퇴주(2), ⑧동진주(2), ⑨법왕자주(2), ⑩관정주(2)이다. 괄호 안의 아라비아 숫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의 숫자를 표시한다.
‘주住’가 무슨 뜻인가? 이에 대해 운허 스님께서는 󰡔불교사전󰡕의 <10주> 항목에서, “10신위信位를 지나서 마음이 진제眞際의 이치에 안주安住하는 위치에 이르렀다는 뜻으로 주住라 함”이라고 설명하신다. 󰡔화엄경󰡕의 각종 주석서를 깊이 읽으신 어른의 안목이다. 운허 스님께서 입적하시던 1980년 음력 10월 10일, 당시 필자는 봉선사를 다녔었다. 월운 스님의 지시에 따라 운허 스님 계시던 ‘다경실茶經室’에 남아있는 ‘유품목록’을 만들었다. 그 일을 하면서 운허 스님께서 보시던 󰡔회현기󰡕 󰡔탐현기󰡕 그리고 󰡔청량소󰡕, 진품 선장본線裝本을 손으로 만져볼 수 있었다. 곳곳에 메모가 적혀있었던 것이 지금도 기억난다.
10주 수행 중에서 ①발심주에서 4가지 질문에 답하는데, 첫째 대승의 보살들이 보현의 마음 내는 질문에 대한 대답, 둘째 큰 원력으로 보현행을 실천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 셋째 자비한 마음으로 중생을 살펴 어여삐 여기는 질문에 대한 대답, 넷째 큰 지혜의 마음으로 보리심을 발하는 인연을 여쭌 질문에 답하는 부분이다. 처음이 중요하다. ‘보현의 마음[普賢心]’을 설하시는 대목을 소개한다. 역시 운허 스님의 번역이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보현의 마음을 내나니, 무엇이 열인가. ①이른바 크게 인자한 마음을 내나니 일체 중생을 구호하는 연고며, ②크게 어여삐 여기는 마음을 내나니 일체 중생을 대신하여 고통을 받는 연고며, ③온갖 것을 보시하는 마음을 내나니 가진 것을 모두 버리는 연고며, ④온갖 지혜를 생각함으로 으뜸을 삼는 마음을 내나니 일체 불법을 구하기 좋아하는 연고며, ⑤공덕으로 장엄하는 마음을 내나니 모든 보살의 행을 배우는 연고며, ⑥금강과 같은 마음을 내나니 모든 곳에 태어남을 잊지 않는 연고며, ⑦바다와 같은 마음을 내나니 온갖 희고 깨끗한 법이 모두 흘러 들어가는 연고며, ⑧큰 산과 같은 마음을 내나니 온갖 나쁜 말을 다 참고 받는 연고며, ⑨편안한 마음을 내나니 모든 중생에게 두려움 없음을 주는 연고며, ⑩반야바라밀의 끝가는 마음을 내나니 온갖 법이 아무것도 없음을 교묘하게 관찰하는 연고로 이것이 열입니다.


노스님 태어나신 때가 1892년 음력 2월 25일이시니, 금년 2022년 양력 3월 25일이 130주년이다. 치경治經의 가풍이 월운 스님께 전하고 있지만, 이제 우리스님도 금년 95세이시다. 사부님께서 정리해서 남기신 󰡔화엄소초과도집華嚴疏鈔科圖集󰡕은 영원토록 제자들의 지남指南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