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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전령, 생강나무, 산수유

 


홍성범
숲해설가


우리나라의 봄은 노란색으로 시작한다.
주변의 여기저기에 샛노란 개나리가 흐드러지고 이산저산에는 생강나무와 산수유가 노란 꽃을 피워 봄이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생강나무가 꽃을 피우고 한참을 지나야 봄의 상징 진달래와 벚꽃을 볼 수 있으니 생강나무는 진정 봄의 전령사다.
생강나무에는 녹나무과 식물들이 그러하듯 특유의 냄새가 있다. 잎이나 어린 가지를 잘라서 비비면 독특한 냄새가 나는데 그것이 바로 생강냄새이다. 그래서 이름도 생강나무다. 산속에서 생강나무의 냄새는 산행의 상쾌함을 더해준다.
생강나무는 크게 자라봐야 3미터를 넘지 못하는 관목인데 높게 자라는 교목사이에서도 견디며 잘 자란다.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나 사시사철 제각기 다른 모습을 보여주며 자라고 있다. 특히 3월, 초봄이 되면 가지에 잎보다 먼저 노랗고 둥근 꽃망울을 터트린다. 암수딴그루로 암꽃과 수꽃을 각기 따로 피워낸다. 꽃망울에는 금이 있는데 나무에 물이 오르면 그 금을 따라 꽃덮개가 벌어진다. 이 작은 꽃들은 잎도 없이 마른 가지에 바싹 붙은 채 우산처럼 동그랗게 모여 핀다. 작고 노란 꽃을 하나씩 자세히 살펴보면 꽃덮개가 여섯 갈래로 깊이 갈라져 있고 그 속에는 암술 한 개와 그 둘레를 둘러싼 수술 아홉 개가 있다. 수술 아홉 개에서 안쪽의 수술 여섯 개는 꿀샘이 없고 바깥쪽 수술 세 개의 밑에만 꿀이 고인다. 작은 꽃들은 모여 우산 모양의 꽃차례를 만들고 꽃차례를 달고 있는 노란 줄기의 길이가 짧아 마치 마른 나뭇가지에 자루 없이 바로 꽃이 붙어 있는 듯이 보인다.
남들보다 서둘러 봄을 맞이해 산을 혼자 독차지하던 생강나무 꽃들이 시들어갈 즈음에 생강나무의 새순이 올라온다. 잎의 모양은 그 향기만큼이나 독특하다. 잎의 맥은 크게 셋으로 갈라지고 갈라진 맥을 중심으로 잎의 윗부분이 크고 둥글게 셋으로 갈라진다. 가징자리는 밋밋하고 손가락 두 마디쯤 되는 잎자루에는 털이 있다. 9월쯤 맺기 시작하는 열매는 1센치미터를 넘지 못하는데 노랗게 달렸다가 차차 빨갛게 변하고 완전하게 크면 검은빛을 띠어 색 변화도 무척 조화롭다. 생강나무는 꽃, 잎, 열매 모두 사랑스럽다.
생강나무는 오랜 세월을 우리 선조들과 함께 살아왔다.
그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우리나라의 각 지역과 쓰임새에 따라 다양한 이름이 존재한다. 생강나무의 까만 열매로 기름을 짜는데 그 기름은 동백기름처럼 부인들의 머릿기름으로 쓰였다. 그래서 날씨가 추워 동백나무가 자라지 않은 중부 이북 지방에서는 생강나무를 산동백나무라고 불렀다.
종자에서 짜내는 머릿기름은 향기도 좋고 질도 좋아 인기였다. 강원도지역에서는 동박나무라고도 하는데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에서 점순이가 뛰어 놀던 나무는 동백나무가 아니라 노란 생강나무의 강원도식 표현이었던 것이다. 옛날 소설 표지에 빨간 동백나무 꽃이 그려져 있는 것을 발견하곤 하는데 이는 책 편집자의 오해의 결과이다.
한방에서는 생강나무를 ‘황매목’이라 한다. 매화처럼 일찍 노란 꽃이 피어서 붙은 이름인 듯하다. 특히 가지는 ‘황매피’라고 하여 햇볕에 말린 뒤에 그대로 잘게 썰어 한방에서 사용하는데 좀 신맛이 난다고 한다. 이것은 위를 튼튼히 하는 건위제로 쓰고 복통, 해열에도 효과가 있으며 간을 깨끗하게 하는 데도 쓴다. 노란 꽃은 따서 꽃차의 풍미를 즐기기도 한다,
작설차로 일컬어지는 것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생강나무의 여린 잎을 말려 만든 것도 작설차로 부른다. 산골 아낙들은 봄에 새순이나 잎을 채취하여 나물로 부치거나 찹쌀가루를 묻혀 튀기기도 했다.
생강나무는 봄에는 물론 가을 단풍 때도 그 멋스러움을 뽐낸다.
울긋불긋 산야를 수놓으며 남쪽에서 올라가던 꽃 소식과는 반대로 남쪽으로 내려가는 단풍의 물결은 붉은 단풍과 노랗게 물든 단풍이 섞여 있어야 더욱 아름답게 마련이다. 그 가운데 두드러지게 고운 노랑으로 물든 잎을 보면 어김없이 생강나무이다. 생강나무는 봄 꽃은 물론 가을 단풍도 아름답다.
생강나무와 마찬가지로 초봄을 노란색으로 불들이며 꽃 모양도 비슷한 나무가 산수유다.
산수유도생강마무처럼 개나리나 벚나무보다 훨씬 일찍 꽃을 피운다. 매화나 동백이 산수유보다 더 일찍 꽃을 피우나 대개 남쪽에서만 자라고 또 따사로운 봄보다는 아직 추운 겨울 꽃이라는 느낌이 강하기에 사람들은 봄을 알리는 대표적인 나무로 생강나무와 더불어 산수유를 꼽는다.
생강나무의 꽃이 멀리서 보면 산수유와 비슷하지만 꽃자루가 짧고 털이 밀생하며 수술이 짧아 꽃 밖으로 나오지 않는 점이 다르다. 반면 산수유는 꽃자루가 길며 생강나무와 달리 암수한그루이다. 열매의 색깔도 생강나무는 검고, 산수유는 붉다. 과도 녹나무과와 층층나무과로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생강나무와 산수유를 혼동하는 이유는 초봄 같은 시기 온 산하를 처음으로 노랗게 물들이는 나무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산수유를 조금만 가까이 보면 어느 때나 그 나름의 특색을 가지고 순간순간을 맞이함을 알 수 있다. 날씨가 풀리며 노랗게 터뜨리는 꽃망울은 몰론 사랑스러운 잎새도 여름내 보기 좋다. 가을이 되어 맺는 열매도 모양도 예쁘지만 그 귀한 쓰임새는 산수유의 계절이 가을인 듯싶게 하기도 한다.
겨울, 한 해를 끝맺음하는 열매 옆이나 가지 끝에 작은 눈(Bud)들이 자리 잡고 있음을 보게 된다. 내년 봄 꽃으로 태어날 수십 개의 예비 꽃들이 포개져 자리 잡고 있다. 우리가 알고 느끼는 결실의 순간에 이미 또 다른 세대가 잉태되고 있는 것이다.
산수유는 한동안 중국이 원산지로 알려져 있었으나 1920년대에 경기도 광릉에서 산수유 거목 두세 그루가 발견되고 그 뒤 연구를 통해 우리나라가 자생지임을 확인함으로써 한국의 나무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산수유의 갈색 껍질은 얇은 조각으로 벗겨지는데 그러고 나면 다시 새 껍질이 생기기를 반복하여 독특하고 운치 있는 무늬를 만든다. 꽃과 잎과 열매를 열심히 만들면서 나무껍질마저도 새롭게 거듭나기를 수지 않는 산수유의 부지런함에 경의를 표한다,
꽃이 지면서 돋기 시작하는 잎도 아주 보기 좋다. 가지에 서로 마주 보고 달리는 적당한 크기의 타원형 잎에는 윤기가 흐르고 그 잎맥이 양쪽으로 줄지어 나면서 잎 가징자리까지 위를 향하여 둥글고 길게 이어지는 것이 아주 특색이 있다.
열매는 씨를 빼고 말려 한약 재료로 사용하기도 하고 열매 전체로 과실주를 빚기도 한다.
산수유의 가지에는 봄이면 꽃송이들이 둥글게 모여 달린다. 생강나무처럼 산수유도 잎보다 먼저 노란색 꽃만을 피워내는데 탁구공보다 작고 둥근 꽃송이들은 실제로 수십 송이의 작은 꽃들이 모여 있는 꽃차례다. 작은 꽃들이 한데 모여 언뜻 화사하게 느껴지지만 좁쌀알처럼 작고 길쭉한 꽃봉오리가 벌어져 피워낸 꽃들도 콩알만 하다. 그래도 그 속에는 네 개의 꽃잎과 네 개의 수술, 한 개의 암술 등 모든 것을 완전하게 갖추고 있다. 이 모든 기관들이 모두 밝은 황금색이며 이 작은 꽃들이 마치 우산살처럼 같은 길이로 둥글게 달려 있다. 이러한 모양으로 이른 봄에 꽃만, 그것도 노란색으로 피어 생강나무와 함께 봄을 힘차게 알리는 것이다.
우리는 사계절의 변화를 여러 가지에서 느낀다.
초봄, 온 산하를 노란색으로 밝게 물들이는 생강나무와 산수유를 오감을 열고 느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