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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마무리는 새로운 시작입니다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구룡사 회주



아직도 엄동설한 인데, 통도사 자장매慈藏梅는 꽃망울을 터뜨렸습니다.
입춘을 지난 대보름이지만, 우리 곁에는 봄볕이 어느새 바짝 다가와 있습니다.
우리 사찰에서는 삼동결제三冬結制를 해제解制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구룡사와 여래사는 해제와 함께 특별히 하는 행사가 또 하나 있습니다.
매년 해왔던 것처럼 올해에도 동안거 기간 동안 불자들이 한 포, 두 포씩 십시일반十匙一飯의 정성으로 모아온 자비의 쌀 9,600kg을 서초구청과 고양특례시에 홍법문화복지법인 이름으로 전달했습니다.
더러는 강남 서초에도 어려운 이웃들이 살고 있느냐고 묻는 이들도 있지만, 등잔 밑이 어둡다고, 어렵고 힘든 이들은 사바세계娑婆世界 어디에서든지 있기 마련입니다. 중국의 루쉰(魯迅)의 「희망」이라는 이런 글이 있습니다.
“희망이란 원래 있다고도 할 수도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한 사람이 먼저 가고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곳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구룡사와 여래사를 비롯한 통도사 포교당과 함께 삼동결제 기간 동안 자비의 쌀 모으기를 하는 것은, 이와 같은 일들이 더 널리 확산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연년이 홍법문화 재단의 이름으로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칭찬대승공덕경稱讚大乘功德經』과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에 팔공덕수八功德水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이 경에서 팔공덕수는 달고, 시원하고, 부드럽고, 가볍고, 깨끗하고, 냄새가 없고, 목이 상하지 않고, 배탈 나지 않는 물을 팔공덕수라 한 것입니다.
우리 다라니합창단의 음성공양을 들을 때마다 팔공덕수가 생각나는 것은, 들려주는 음성공양이 마치 목마른 이들에게 감로수가 되어 경쾌하고 시원하고 아름답게 들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땅 밑에 아무리 좋은 팔공덕수가 흐르고 있더라도 스스로 얻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비유로써 팔공덕수를 바꿔 말하면, ‘요의경了義經인 우리들의 인생, 우리들의 삶에 윤활유의 영향을 줄 수 있는 보약 같은 가르침’이라 할 것입니다.
지혜 있는 사람이 공력을 드러내서 팔공덕수가 흐르는 물을 찾아서 땅을 파면 얻게 되는 이치처럼, 부처님께서는 다겁多劫의 생에 걸쳐 수행과 정진으로 도솔천兜率天 내원궁內院宮에 호명보살護明菩薩로 계시다가 사바세계의 인연을 우리와 함께하기 위해서 2,600년 전 이 땅에 오신 것을 큰 인연으로 살펴보면서 살아가야 하는 가르침이기도 한 것입니다.
마치 눈먼 사람이 해와 달을 볼 수 없다가 용한 의원을 만나 눈병을 고치게 되면 세상을 보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해와 달은 본래 없다가 지금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眞理라고 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인 광명光明도 없다가 부처님이 오셔서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본래 해와 달은 있었는데, 장애가 있는 사람은 볼 수 없다가 용한 의원을 만나 눈병을 치료하게 되면 해와 달을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내가 만든 것도 아니요, 과거의 부처님이 하신 말씀이며, 미래의 부처님이 하실 말씀이며, 현재 부처님의 설법”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 열반은 그와 같아서 본래 없었던 것이 지금 있는 것이 아닌 것을 우리는 지혜로 인식하면서 세상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구룡사의 본 법당이 있기 전, 천막 법당 시절 종무소 직원으로 있다가 출가한 스님이 며칠 전, 겨울인데 반 팔을 입은 내 모습을 보고 묻습니다. “스님, 이렇게 날씨가 추운데 왜 그러십니까, 춥지 않으십니까?” “인위적으로라도 이렇게 하고 있으면 바깥에 있는 이들이 느끼는 추위나 고생을 체감으로 느끼지 않겠느냐. 그래서 나는 절 안에 있을 때는 한겨울에도 반 팔 옷을 입고 밖에 나갈 때는 긴 팔을 입고 나간다.” 했더니 눈시울을 붉힙니다.
『죽창수필竹窓隨筆』을 쓴 중국의 주굉侏宏 스님은 “시주의 은혜가 일미칠근一米七斤인데 폐를 끼치고 있으니 보답할 길이 없다. 어떻게 해야 보답하고 어떻게 해야 그 은혜를 갚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눈시울을 붉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주굉스님의 『죽창수필』은 또 언제나 내 자신의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늘 생각해 보면 미진한 것도 많고, 아쉽고 부족한 것도 많지만, 그래도 잘살아 보려고 하는 생각을 자문자답하듯 해 봅니다.


87년도에 구룡사 가건물 법당에서 100일간 부처님 금란가사와 선덕여왕이 손수 지어 올린 자장율사 가사 친견 법회를 할 때, 매일 같은 음성으로 했던 말이 있습니다. “부처님 금란가사를 이곳에서 친견 법회를 하고자 하는 것은 많은 불자들과 인연을 맺기 위함입니다. 불자들이 와서 인연을 맺으면 나는 이와 같이 한 불자가 한 부처님씩 모시는 1만 부처님을 구룡사에서 원불願佛 불사를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 일이란, 중생을 위하는 일 이외에는 없었습니다. 구룡사에서 만불전 불사를 하고자 하는 원력도 불자들과 함께 부처님 일을 하고자함이요 부처님 법을 전하고자함이며 부처님 가르침을 함께 나누고자 함이었습니다.
2년 만에 만 부처님을 원불로 동참이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처음에는 다섯 명도 안 되던 가회동 구룡사 불자들이 이런 인연으로 그렇게 많은 대중이 환희법열歡喜法悅하며 함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우리 모두가 구룡사와 여래사에서 불자들이 해야 할 책무이고 의무라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베트남의 틱낫한 스님은 「화禍」라는 법문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몹시 화가 났을 때는 화가 나지 않은 척해서는 안 된다.
고통스럽지 않은 척해서도 안 된다. 그 사람이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내가 지금 화가 났으며 그래서 몹시 고통스럽다는 것을 그에게 고백해야 한다. 그러나 말은 아주 차분하고 침착하게 해야 한다.”
화가 날 때는 화를 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화는 속까지 뒤집혀서 내는 것은 아니어야 합니다. 그리고 화가 나면 가까운 사람일수록 상대에게 내가 지금 화가 나 있다는 것을 알려줄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화를 내서 화가 났다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대단히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상대하지 말아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화가 나는데 웃고 있는 사람입니다. 또 비아냥거리는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없는 웃음을 습관처럼 짓는 사람입니다. 헤픈 웃음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 『능엄경楞嚴經』에 색온色蘊, 수온受蘊, 상온想蘊, 행온行蘊, 식온識蘊으로 각각 열 가지의 장애障礙가 일어나는 50마장魔障을 경계하라 하셨습니다. 그 중에서 시도 때도 없이 우는 비마悲魔가 있는가 하면, 기쁘고 즐거워서 웃는 것이 아니라 아무 때나 허파에 바람 들어간 것처럼 제어되지 않는 웃음이 희마喜魔인데, 이를 경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법정 스님은 「아름다운 마무리」에서 “아름다운 마무리는 삶에 대해 감사하는 것, 내려놓음, 비움, 삶의 본질인 놀이를 회복하는 것, 지금이 바로 그때임을 아는 것, 용서와 이해와 자비, 스스로 가난과 간소함을 선택하는 것, 단순해지는 것, 살아온 날들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것, 타인의 상처를 치유하고 잃어버렸던 나를 찾는 것, 수많은 의존과 타성과 관계에서 벗어나 홀로 서는 것, 언제든 떠날 채비를 갖추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변에 보면 인생을 천년만년 살 것처럼 살아가는 이들이 많습니다.
자신의 지금 생이 끝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아름다운 마무리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결재와 해제도 같은 뜻에서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해제와 회향回向은 마친다는 것이지만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생로병사生老病死를 겪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태어나면 늙고 병들고 죽습니다. 우리는 그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반드시 다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전만 해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인간 세상에 다시 올 수 있습니다. 그러니 불자라면 자작자수自作自受요 자업자득自業自得이요 자승자박自繩自縛한 인과因果를 믿고 확고한 믿음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인과의 도리를 믿고 살아간다면 그동안 살아왔던 것보다 더 값지고 소중하게 살게 될 것이며 그러한 삶을 살게 되면, 다음 생은 더 좋으면 좋았지 지금보다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마무리는 새로운 시작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