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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굳건한 믿음의 마음

신규탁(연세대 철학과 교수)



1.
대승 불교 운동이 일기 시작하면서 초창기에 만들어진 대표 경전이 󰡔화엄경󰡕인데, 이런 대승 경전에는 ‘남을 위한 실천’과 ‘자신을 위한 수행’이 강조됩니다. 이런 실천과 수행을 담당하는 주인공으로 대승 불교 운동가들은 ‘보살’을 등장시킵니다.
‘보살’이라는 용어가 초기 경전인 <아함부>에도 나오기는 하지만 아주 제한적으로 사용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입적하신 뒤, 제자들이 ‘위대한 석가의 전생 설화’를 만들어냅니다. 그것이 바로 도솔천 ‘호명 보살’ 설화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 입적하신 뒤 제자들이 만든 ‘보살’ 관련 설화는 이제는 석가모니의 전생 설화를 넘어서서, ‘새 불교 운동’의 주인공으로 변모해갑니다.
부처님 입적 후 세월이 지나면서 세상 사람들은 당시 스님들의 모습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스님들은 자신들의 수행에만 전념한 나머지 전법과 중생 구제에 소홀했습니다. 이들은 따로 살림하는 ‘부파’ 별로 암송해 오던 <아함부> 경전 해석에만 몰두합니다. 이런 철학적 분석에 치우친 ‘성문승聲聞僧의 사변화思辨化’에 반대하는 ‘새 불교 운동’이 일어납니다. 그게 대승 불교입니다. 이 운동의 시작은 ‘재가 불자’ 쪽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출가 불자’ 즉 ‘성문승’들도 동참하여 세력이 불어납니다.
이 과정에서 교리에 관한 ‘이론적 문제’는 물론 공동체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관한 ‘실천적 문제’에 대해서도 새로운 가치관이 고개 들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필자가 말하는 ‘실천적 문제’는 자율적 도덕에 해당하는 ‘계戒’와 타율적 법률에 해당하는 ‘율律’입니다. 󰡔범망경󰡕은 그중에서 ‘실천적 문제’에 주목한 대승 경전인데, 그러면서 󰡔범망경󰡕은 대승의 경장經藏을 집약하는 동시에 누적된 불교의 각종 이론인 논장論藏을 겸합니다. 󰡔범망경󰡕은 대승의 경률론 3장藏을 종합적으로 요약한 책입니다.


2.
󰡔범망경󰡕에서는 발심發心을 무엇보다 먼저 강조합니다. 마음을 내라는 것입니다. 도를 이루겠다고 발심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굳건한 믿음의 마음[堅信忍]’을 강조합니다. 그것을 󰡔범망경󰡕에서는 ①사심捨心, ②계심戒心, ③인심忍心, ④진심進心, ⑤정심定心, ⑥혜심慧心, ⑦원심願心, ⑧호심護心, ⑨희심喜心, ⑩정심頂心, 이렇게 열 단계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마음을 점점 깊게 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하나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3.
①사심捨心이란 무엇인가? 한자 ‘사捨’의 글자 뜻에는 ‘버리다’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내 것을 놓아 남에게 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나에게 평온함이 깃든다고 합니다. ‘사捨’의 글자 뜻에는 ‘평온하고 집착이 없는 상태’라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이때 중요한 건 티[相]를 내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발심하여 도로 향하는 첫걸음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보시하면 “여가회관如假會觀이 눈앞에 나타나고” 끝내는 “공삼매空三昧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여가회관如假會觀’이란 ‘모든 건 여러 인연이 임시로 모여 잠시 존재하는 것이다’고 관찰하는 수행입니다.
②계심戒心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10선善’을 잘 지키는 것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도 역시 ‘티’ 없이 지키는 것이라고 합니다. ‘10선’이란 ‘10악惡’을 짖지 않는 것인데, ‘10악’이란 살생, 투도, 사음, 망어, 양설, 악구, 기어, 탐욕, 진애, 치암을 말합니다.
③인심忍心은 참는 마음입니다. 물론 ‘티’ 없이 참아야 합니다. 그리고 ④진심進心은 정진하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⑤정심定心은 명상입니다. 마음을 항상 고요하게 하는 것입니다. ⑥혜심慧心은 모든 게 연기이고 공이고 무상임을 관하는 지혜입니다. ⑦원심願心은 지혜를 구하겠다고 발원하는 마음입니다. 이때의 지혜란 무엇인가? 󰡔범망경󰡕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중도中道를 관하는 마음이 그것이라고 말입니다. 구체적인 문장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제1의제인 중도中道를 관觀함이란, 비추는 지智의 작용을 관하는 것도 아니고, (비춤의 대상이 되는) 법계法界를 관하는 것도 아니며, (성문승이나 연각승에 속한 사람들이 추구하는 싸늘한 재같이 하여) 모든 게 소멸하게 하는 것도 아니니, 후득지를 얻어 한량없는 작용을 생성하면서도 스스로는 그렇게 한다는 생각조차 내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발원하는 마음[願心]의 바탕이 되는 본성이며 모든 수행의 근원이다.”


4.
계속해서 ⑧호심護心을 소개하기로 합니다. 이는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과 청정한 수행 공동체를 보호하는 마음입니다. 더불어 그들의 수행 공덕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역시 ‘티’ 없이 그렇게 하라고 합니다. 이런 발심에 대해 󰡔범망경󰡕 본문에서는 이렇게 설하고 있습니다.


“공空하고 조작이 없고[無作] 티 없는[無相] 마음으로 보호하여, 이렇게 하는 마음의 지혜가 계속 이어져서 무생無生의 경지에 들어가면, 공도空道와 지도智道가 모두 밝게 빛나고 밝게 빛나리라. 공空의 경계에 들어가 세상[假]의 다양한 것들을 ‘잘 관찰[護觀]’하면, 부질없는 속에서 부질없는 것들이 생기는 것이 모두 무無와 같아지리라. 무無와 같은 법 자체[法體]는 인연의 조합에 의지해 모였다 흩어졌다 하는 것이므로, 아끼고 보호할 것이 못 된다. 이런 줄을 관찰[觀]하는 주최도 역시 보호할 것이 못된다.”


위의 본문에 나오는 용어 중에서 ‘공도空道’란 모든 생각을 쉬는 ‘사마타’ 수행으로 천태 스님이 말한 ‘지止’ 수행에 해당하고, 한편 ‘지도智道’란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는 ‘위파사나’로 역시 천태 스님이 말한 ‘관觀’ 수행에 해당합니다.
다음으로 ⑨희심喜心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남의 즐거움을 보고 나도 함께 기뻐하는 것이다. 끝으로 ⑩정심頂心에 대해서는 󰡔범망경󰡕에 나오는 본문 전체를 아래에 인용하는 것으로 필자의 설명을 따로 보태지는 않겠습니다.


“불자야, 정심이란 사람의 가장 높은 지혜이다. (첫째는) 아륜我輪·견見·의疑·신身·일체의 진瞋 등을 소멸시켜 없앤 게 마치 이마처럼 제일 높다. (둘째는) 관찰 수행이 계속 이어지고 이어지는 게 마치 이마처럼 제일 높다. (셋째는) 온 법계 속의 인과가 변함없이 한 길이어서 마치 이마처럼 제일 높다. 사람의 이마처럼 말이다.
신견身見도 잘못된 것이고, 62견도 잘못된 것이다. 5온蘊은 찰나마다 생성소멸하고, (외도들이 말하는) 신아神我인 주인도 움직이고 전변하여 펼쳤다 거두어들이기를 계속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주인공도 없고, 수온受蘊도 없고, 행온行蘊도 없고, 색온色蘊도 없고, 상온想蘊도 없다. 이 사람은 이때 마음이 공해져서 도에 합치한다.
찰나마다 중생을 교화하되 (그 중생이 교화받을 만한) 연이 있는지[有緣]도 그런 연이 없는지[非緣]도 보지 않고, 최고의 삼매인 적멸한 선정의 상태에 머물러, 실천수행을 일으켜 도로 행해 나아간다.
성품은 실체가 있고 아我와 인人은 영원하다는 견해를 갖는 이들은, 여덟 가지 전도한 생각을 항상 내지만, 불이법문不二法門을 반연한 인연으로 여덟 종의 환란을 면하며, 허깨비 같은 과보를 끝내 받지 않는다.
바로 이런 사람은 오나가나 앉으나 서나 수행하여 죄를 없애, 10악을 제거하여 10선을 낳아 도에 들어간다. 바른 사람이며 바른 지혜를 갖추었으며 바른 실천을 하는 보살은 달관이 눈앞에 나타나서 6도에 윤회하는 과보를 받지 않고, 부처의 종성 중에서 결정코 물러나지 않는다. 태어날 때마다 부처의 집에 태어나서 바른 믿음을 떠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