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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 라마와 후진타오를 보는 세계인의 눈

정웅기
(사)밝은세상 사무처장, 티베트평화연대 대변인


차를 뒤집고 방화를 하고… 2008년 봄 화면에 나타난 모습만 보자면 티베트인들은 영락없는 폭도들이다. 중국관영매체를 받아 한국 언론이 이런 모습만을 연일 방송하고 있지만, 중국정부의 가혹한 탄압과 학살 소식도 하나둘 알려지고 있다. 언론의 제한된 보도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 대부분은 진실이 어떤 것인지를 어렴풋이 안다.

80년 광주항쟁을 통해‘평화적 시위’가 어떻게 무장 항쟁으로 발전하는지 경험하였기 때문이다. 눈앞에 보이는 저 화면 너머의 진실. 그것은 무엇일까?
이번 시위의 발발 배경은 1989년 라사에서 10만이 봉기하던 때와 매우 흡사하다. 티베트 본토에 남아 티베트인들을 이끌던 10대 판첸 라마가 89년 51세에 갑자기 서거하자, 중국이 그를 암살했다고 생각한 스님들 수십 명이 평화시위를 벌였다. 경찰은 이들을 구타하고 체포하였다. 그러자 사찰의 스님들이 잡혀간 동료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경찰서로 몰려갔다.

중국경찰은 이를 폭력으로 탄압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승가를 보물로 여기는 티베트인들이 일어섰다. 몇몇 분노한 젊은이들이 공안국에 돌을 던지기 시작했고, 점점 많은 사람들이 가담하여 불을 지르고, 차를 전복시키기도 했다. 드레풍 사원에서 시작된 2008년 티베트항쟁 역시 이와 똑같은 전개 양상을 띠고 있다.

경제적 차별, 인권침해, 언어와 문화의 탄압 등등 여러 배경도 작용하였지만 티베트인들의 시위 때 맨 먼저 등장하는 것이‘달라이 라마의 귀국을 허용하라’는 요구다. 중국은 베이징 올림픽이 결정된 2001년을 전후하여 티베트 문제에 유화적인 태도를 취했다. 지난 수년간 티베트 망명정부의 대표단들이 베이징과 상하이 등에 수차례 들어가 중국과 협상을 벌이기도 했다. 이 기간 달라이 라마는 중국에 거듭 양보의 뜻을 천명했다.
“나라 운영은 모두 중국이 맡아라. 대신 티베트인들이 종교와 문화 쪽만 자치할 수 있게 해달라.”

독립 포기라는 일부의 비난까지 감수하면서 종교활동 만은 보장해달라고 했지만, 중국은 결국 이마저 거절했다. 그것이 지난해 9월이다. 협상은 중단되었고, 달라이 라마가 귀국할 것이라는 실낱같은 기대를 포기하지 않았던 티베트인들은 분노했다. 이번 시위가 일어난 3월 10일은 달라이 라마가 인도로 망명한 날이자 59년 티베트봉기 기념일. 이 날 티베트인들이 일어났 던 것이다.
티베트 망명정부가 확인한 것으로만 4월 5일 현재 250명 이상의 티베트인이 실종되고, 2300명 이상이 투옥되었다. 세계로 향하는 티베트의 모든 통로를 막은 중국정부는 시위대가 피신한 사원을 봉쇄하고 식량과 전기를 차단한 다음, 강제로 난입하여 승려들과 시위대를 잡아 가고 있다. 이미 티베트 내 감옥이 모자라 위구르 자치구에 있는 감옥으로 티베트인들이 화물칸에 짐짝처럼 실려 가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 중국정부의 무력진압으로 티베트는 마치 전쟁상태를 방불케하고 있다.


지금 이 시간 많은 세계의 지도자들이 중국 정부가 달라이 라마와 직접 대화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달라이 라마께서도 어떤 조건도 없이 중국 지도부를 만나겠다고 하신다. 그런데 후진타오 중국 주석은 여기에 거짓말과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후진타오는“달라이 라마가 티베트 독립요구를 철회하고, 폭력시위를 중단하게 해야 만날 수 있다”고 두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첫 번째 독립 운운은 중국 권부의 습관적인 거짓말이다. 달라이 라마는 80년대 말부터 티베트의 독립이 아니라, 자치를 원한다고 늘 이야기 해 왔다.
특히 종교와 문화가 관심사였다. 50년대 티베트를 강제병합 할 당시 중국도 이 약속을 했었다. 중국은 이 약속조차 지키지 않고 있다. 티베트 문제만 나오면 중국은 자신들의 잘못을 덮기 위해 독립이야기부터 꺼내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두 번째 중국정부가 대화의 조건으로 내건 폭력시위도 책임소재는 분명히 중국에 있다. 사실 티베트인들 가운데서도 무장투쟁도 불사해야 한다는 소수의 과격한 사람들도 있다. 그럼에도 59년 강제병합이후 무장투쟁, 테러… 이런 것들이 티베트에서 한 건도 일어나지 않은 이유는 달라이 라마의 비폭력 노선을 티베트인들이 철저히 믿고 따랐기 때문이다.
중국도 이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폭력시위의 책임을 달라이 라마께 떠넘기는 이유는 협상조차 하기 싫은 그들의 속마음 때문이다. 그들은“달라이 라마만 없으면…”이렇게 생각하며, 사후를 대비하고 있다. 몇 년 전에는 환생자를 중국정부가 인정한 자로 한다는 법률까지 만들었다. 식민 정책을 찬양하는 꼭두각시를 세우려 하는 것이다. 지금 중국정부가 앞세운 판첸 라마처럼….

중국은 13억의 인구를 가진 세계 최강대국의 하나다. 10년에서 15년 후면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 중국의 주석이 0.1%에 불과한 13만 망명인을 대표하는 종교지도자(정치는 2001년 망명 티베트인들의 직선을 통해 총리를 선출하면서 내각에 넘겼다.) 만나기를 꺼려한다. 이 이유를 살펴보는 것이야말로 오늘 우리가 티베트를 통해 배워야할 진정한 교훈인지도 모른다.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의 종교와 문화, 그 가운데 종교활동의 자유를 보장 받는 것을 매우 핵심적으로 생각한다. 거기에는 티베트란 한 나라를 넘어 인류 전체의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과 예지가 담겨있다. 50년 정도가 흐른다면 지구촌의 모습은 지금과 확연히 달라져 있을 것이다. 국경의 장벽은 대부분 허물어지고, 세계가 지금보다 훨씬 긴밀하게 연결될 것이다.

물질문명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진보할 것이다. 그러나 인류는 정신을 계발하고 가꾼 경험이 빈약하다. 그런데 티베트불교에는 이 소중한 마음을 닦고 변화시키는 소중한 경험들이 살아 있다.
만약 티베트불교에서마저 이러한 전통이 단절된다면, 이는 단순히 티베트의 문제만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손실이 될 것이다.
달라이 라마께서는 이런 상황이 도래하는 것을 누차 우려해 왔다. 사람의 행복을 물질로 살 수 없다는 것을 경험한 선진국의 석학들, 과학자들, 정치인들이 달라이 라마를 존경하는 이유도 물질 문명의 부족한 점을 불교, 특히 티베트불교가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인류에 대한 한없는 애정을 중국의 권력자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다. 자기의 창으로만 타인을 보려하는 그들은 약육강식의 맹수의 습성으로만 티베트와 달라이 라마 문제를 본다. 그래서 그들은 배부르고 등 따시게 만들어주었더니…. 반항한다고 티베트인들을 거칠게 몰아 부친다.

또 왜 세계인들이 왜 달라이 라마에 열광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한다. 중국이 커지니 질투하는 것이란다.
이 덩치만 크고, 탐욕과 분노에 사로잡힌 중국의 권력자들을 위해서까지 달라이 라마는 기도한다.
며칠 전 다람살라에서 티베트인들의 학살 사진과 단식 장면을 보면서 달라이 라마께서 한없이 우셨다고 한다.
티베트인들 수백 명이 희생되는 것을 보면, 우리조차 이렇게 마음이 아픈데, 한없는 자비심을 가진 그 분의 마음은 얼마나 아플 것인가.
그래도 단호히 비폭력을 주문한 것은 정말 잘 하신 일이다. 그래야 인류정신의 보고인 티베트의 종교와 문화가 살고, 그래서 세계인의 마음에 그 정신이 살아 숨 쉬게 된다. 그 때 비로소 진정한 티베트의 독립은 이루어진다고 믿고 싶다. 제 이익을 위해 타인을 총칼로 짓밟는 야만스러운 자와, 그런 그들에게조차 연민의 마음을 보내며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는 이가 있다. 당신은 누구 편을 들겠는가? 전 세계인들이 후진타오가 아닌, 달라이 라마를 존경하고 지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