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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쩌우에서 만난 관세음보살

정기문_강원대 경제학과 교수

지난해 12월 11일부터 18일까지 홍콩과 광쩌우를 다녀왔다. 3일간 홍콩에서 학술대회를 참석하고, 홍콩까지 간 김에 광쩌우를 들러 보기로 했다. 광쩌우에는 오래 전 미국에서 같이 공부했던 친구가 있어서 민폐 끼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3일간 광쩌우에 머무는 동안 그 친구가 관광 가이드 역할을 해 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광쩌우에 도착하는 날은 법촌의 장두일씨가 소개해 준 신부님을 만나서 거한 저녁 대접을 받고 잘 놀았다. 그리고 둘째 날은 친구와 친구 부인의 안내로 훌륭한 관광을 잘 했는데, 그 다음날은 이 친구가 학교에서 강의, 회의 등으로 바빠서 나를 돌봐 줄 수가 없단다. 하는 수 없이 혼자서 놀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광동말은커녕 중국말도 한마디 못하니 큰일이었다.

내 경험에 의하면 중국에서는 호텔 밖만 나가면 영어가 안 통하는 곳이다. 그렇다고 호텔 방에서 종일을 빈둥거릴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무작정 혼자서 밖으로 나갔다. 택시는 절대 안 타기로 하고, 오로지 지도와 지하철에만 의존해서 시내 구경을 하기로 결정했다.(경험에 의하면 지도와 지하철만 믿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 우선 달마 스님과 6조 혜능 스님의 흔적이 있는 광효사와 육용사를 둘러보고, 청대에 지어진 광동성 진씨 가문의 사당 겸 서원인 진가사를 둘러보기로 했다. 그런데 진가사에 도착했을 때는 너무 많이 걸은 탓인지 더 이상 걷지 못할 정도로 다리가 아팠다. 그래서 발맛사지를 받기로 했다. 그런데 발맛사지 장소를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운이 없는지 영어가 통하는 사람을 하나도 만날 수도 없었고….
하는 수 없이 발맛사지는 포기하고, 진가사를 그냥 둘러 보기로 했다. 진가사를 둘러보는 중에 마침 다구 파는 데가 있어서 들렀더니 사람들이 둘러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차 얻어 마시는 분위기에는 워낙 익숙한지라 말은 통하지 않지만 무조건 눈치껏 끼어 앉아서 차를 얻어 마시며 놀고 있었다.

여기서부터 사건은 시작된다. 익숙하진 않았지만 영어가 좀 되는 아가씨를 만난 것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발맛사지 하는 곳을 좀 가르쳐 달라고 부탁을 했더니, 마침 그 아가씨 옆에 앉은 아주머니가 잠시 후면 발맛사지를 받으러 갈 계획이니 따라 가면 된단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둘은 모녀지간이었다. 구세주를 만난 셈이다. 그래서 두 모녀를 따라서 나서게 되었다.

좋은 발맛사지 장소가 자기 집 부근에 있는데 버스를 탈 수도 있고 택시를 탈 수도 있단다. 택시를 타면 얼마쯤 나오는지 물으니, 기본요금 정도란다.(10원 미만 = 우리 돈으로 1,300원 정도).
그래서 차비는 내가 낼 테니 택시를 타자고 해서 택시를 탔는데…. 물론 택시비를 내가 낼 요량으로 나는 앞에 타고, 모녀는 뒤에 탔다. 그런데 도착해서는 이 아가씨가 택시비를 내는 게 아닌가? 운전수에게 내 돈을 받으라고 우겼지만 안 통했다. 나는 택시 기사와 말이 안통하고 그 아가씨는 말이 통하니 내가 이길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아가씨에게 지고 일단은 내려서 돈을 주려고 했으나 한사코 거절을 해서 실패했다. 그 아가씨의 어머니가 절대로 돈을 못 받게 한단다.

일단 거기에서는 아가씨와 그 어머니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다. 싸움에서 지고 만 셈이다. 그래서 내가 제안을 했다. 그럼 그 아가씨와 어머니 두 사람 발맛사지 비용을 내가 부담하겠다고 제안을 했다. 물론 거절당했다. 그 어머니가 절대 허락을 안 한단다.
한참 실랑이를 벌이다가 겨우 이번엔 내가 이겼다. 그 아가씨도 그 어머니도 그렇게 하기로 합의를 봤다. 이제 마음이 좀 편해졌다.
그런데 또 사건이 벌어졌다. 발맛사지가 끝나고 나와서 계산을 하려니까 그 어머니가 이미 계산을 다 해버렸단다. 아니, 이럴 수가 있나? 이건“반칙이다, 약속 위반이다”라고 우겨도 두 모녀는 막무가내다. 내가 돈을 주려고 억지를 써 봤지만 통하지가 않았다. 도무지 안 받는다. 어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마지막으로 신세를 갚을 양으로 어디 가서 차를 마시든지 밥을 먹든지 하자고 제안했다. 마침 그때가 대충 저녁 식사 시간쯤이었다. 그런데 이제 집에 들어가야 할 시간이 라서 안 된단다. 이렇게 사람을 황당하게 만들 수가 있나? 이 일을 어떻게 대처해야 한단 말인가?
갑자기 바보가 된 기분이다. 나는 어찌 할 바를 모르고 그냥 우물쭈물 당황해 하고만 있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나는 어쩔 줄을 모르고 당황해 하고 있는데 모녀는 내가 무사히 호텔에 돌아 갈 수 있도록 택시를 잡아서 택시 기사에게 말해 줄 테니 안전하게 호텔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또 졌다. 완패다. 어쩔 수 없이 아무런 반항도 못하고 잡아 주는 택시를 타고는 두 모녀의 도움으로 무사하고 안전하게 호텔로 돌아 왔다.
도대체 이 사건이 있을 수 있는 사건인가? 이 두 모녀! 관세음모살의 화신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관광지에서 그것도 우연히 처음 만난 사람들. 다시 만날 수 있는 확률은 거의 영 퍼센트. 도대체 무엇 때문에 나에게 이런 자비를 베푼단 말인가? 나는 관광을 하러 한국에서 건너간 사람이다. 아마도 그 모녀들보다는 내가 돈
이 더 많았을 터였다. 물론 처음 만난 외국인에게 길 안내 정도는 해 주는 친절은 베풀 수 있을 것이다.
또는 택시비 내는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내가 당한(?) 경우는 설명이 안 된다. 도저히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사건이다. 정녕 관세음보살의 화신이 아니고서야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그날 밤 여러 가지 생각으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삶, 사랑, 가치, 인연, 도움, 행복, 자비…. 등등의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했다. 우연 히도, 정말 너무나 우연히도 운 좋게 큰 스승들을 만난 것이었다. 내가 이 지구에서 이런 사람들하고 같이 숨을 쉬며 살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너무 행복하다. 그런데 나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잘난 척 하며 우쭐대고 뽐내며 살아가는 초라한 내 모습이란…. 그 모녀들에 비해 나는 얼마나 우습고 가소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정말로 행복하고 큰 깨달음을 얻은 여행이었다. 광쩌우에서 만난 관세음보살들을 만나러 다시 광쩌우에 갈 수 있게 될 날을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