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
시인
봄도 없이 곧장 여름이 와버렸다. 학수고대 봄을 기다리던 꽃나무들은 느닷없는 더위에 하늘로 다급히 꽃망울을 밀어 올렸다. 그러다가 이틀도 못가 숨을 멈춘 채 낙화를 시작했다. 그걸 보면서 화무십일홍이란 말은 이제 수정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화무삼일홍 정도로 수정해주면 그래도 상당한 인심이 아닐까.
수정해야 할 것은 또 있다. 갈수록 수상해지는 세상인심과 세월의 겉볼안이다. 도덕과 청렴을 무기로 휘둘렀던 전직 대통령은 재임 중에 거액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쫓기고 있고, 북한은 다시 핵개발을 선언했으며, 태국에서는 시위와 비상사태로 수십 명이 죽고 부상당했다.
사건의 본질은 각각 다르지만 그 꼭짓점에 이르면 그 모든 일의 촉수는 한곳을 향해 뻗어 있다. 인간의 욕망이다. 집착과 욕심이다. 그래서 부처님도 말하고 예수님도 말했다. 예수님은 마음이 가난한 자(욕심을 버린 자) 천국에 간다 했고, 부처님은 인간의 욕망을 뱀의 머리에 비유했다.
그래도 뱀 머리 같은 인간의 욕망과 욕심은 끝이 없다. 그리하여 그 욕망과 욕심을 듬뿍 채우고자 뱀 머리를 밟고 또 밟다가 끝내는 화살에 맞은 짐승처럼 괴롭고 고통스러워한다.
지난 봄날, 욕망과 욕심의 비지땀을 뻘뻘 흘리며 관악산을 오를 때였다. 앞선 친구가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라는 노래를 흥겹게 흥얼거렸다. 그러더니 문득 물었다. 그 노래의 본뜻이 무엇인줄 아냐고. 사람이 나이 들면 놀 수 없으니 젊어서부터 잘 놀며 한 세상 즐겁게 살아가자는 뜻으로 밖에 알지 못했던 나는 당연히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친구가 기상천외의 뜻풀이를 시작했다. 친구의 강(講)에 의하면 그 노래의 본뜻은 이렇다.
이해를 돕기 위해 먼저 그 노래 1절부터 보겠다.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은 못노나니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
얼씨구 절씨구 차차차
지화자 좋구나 차차차
화란춘성 만화방창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차차차 차차차
그런데 친구의 강(講)에 의하면 그 노래의 본래 뜻은 다음과 같다는 것이었다.
놓세 놓세 젊어서 놓아
늙어지면은 못놓나니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
얼씨구 절씨구 차차차
지화자 좋구나 차차차
화란춘성 만화방창
아니 놓지는 못하리라
차차차 차차차
말하자면 단순히 잘 ‘놀며’ 세상을 즐겁게 보내자는 것이 아니라, 늙어지면 노욕이 더 생겨 욕심을 버릴 수 없으니 젊어서부터 잘 ‘놓으며’(욕심을 버리며) 잘 살자는 뜻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일본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지배하면서 우리 민족의 정기를 없애기 위해 산마다 쇠말뚝을 박아 놓았듯, 욕심 없이 사는 우리 민족의 본성을 바꿔놓기 위해 그렇게 가사를 바꾸어 놓았다는 것이었다.
친구의 강(講)은 좀 낯설고 억지스러웠다. 그러나 그 말이 또한 그렇게 어긋난 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젊었을 때부터, 아니 어렸을 때부터 얼마나 많이 소유의 교육을 받으며 자랐는가. 좀 더 출세하기 위해 공부하고, 좀 더 부자 되기 위해 경쟁하고, 좀 더 높아지기 위해 수를 쓰고, 보다 더 힘 세지기 위해 권력이라는 상승계단을 끊임없이 오르려 하지 않았는가. 그러다가 늙어지면 더욱 더 그것을 놓지 못하고 움켜쥐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러다가 감옥에 가고, 죽거나 죽이고, 화무십일홍의 꽃처럼 허망하게 고개를 떨구다 못해 심지어는 죽으면서도 놓지 못하고 눈을 부릅뜬 채 죽지 않은가.
친구의 해석이 좀 낯설고 억지스럽긴 했지만 나는 그 친구의 말에 깊이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일찍이 젊은 날부터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쥐고 더 많이 높아지고 더 많이 힘 세지기 위해 뱀의 머리를 밟은 사람처럼 그렇게 수많은 날을 화살에 맞은 짐승처럼 날뛰고 괴로워하고 번민하며 여기까지 온 것이다.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욕망과 욕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청렴과 도덕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던 전직 대통령이 거액의 뇌물 소용돌이에 빠진 것도, 북한이 끊임없이 핵개발에 집착하는 것도, 태국에서 비상사태가 선포된 것도 결국은 그렇게 욕망과 욕심의 끈을 놓지 못한 채 마치 부서진 배에 물이 새어들 듯 위험과 재난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노래의 가사처럼 화무는 많이 가야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반드시 기울게 되어 있는 것이 세상의 이치고 자연의 섭리고 우주의 법칙이다. 비우고 놓았을 때 사람은 더욱 행복하고 즐거워진다. 놓으면 놓을수록 가벼워지고 맑아지고 기뻐진다. 그래서 법정 스님은 무소유를 텅 빈 충만이라 했다. 친구의 강(講)처럼 젊어서부터 놓는 연습을 하지 못하면 늙어서는 더욱 놓지 못한다. 그래서 마음 편히 세상을 뜨지도 못한다. 꽃이 되지도 못한다.
욕망과 집착의 경계를 넘어설 때 우리는 더 많은 것을 갖는다. 꽃은 지지 않으면 다음해 다시 꽃을 피울 수 없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부지런히 ‘놓는’ 연습을 하자. 그래야 한번 밖에 없는 내 인생 보다 더 즐겁고 행복하고 기쁘게 살다 가지 않겠는가. 아무리 더위가 오고 추위가 와도 다음해 다시 아름다운 꽃을 피워 올리지 않겠는가.
놓세 놓세 젊어서 놓아
늙어지면은 못놓나니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
얼씨구 절씨구 차차차
지화자 좋구나 차차차
화란춘성 만화방창
아니 놓지는 못하리라
차차차 차차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