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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 화합 그리고 부처님 오신날

하우성
동국대 불교학과 박사수료

다시 부처님오신날을 맞는다. 부처님의 육색광명이 빛을 발한 듯 세상이 온통 빛난다. 꽃비가 하늘을 수놓는 이날은 계절이 주는 온후함만큼이나 우리 모두의 세상인 듯 마냥 즐겁고 가슴 설렌다. 부처님께서 만 중생의 애환을 감싸 안으려 했던 사섭(四攝)의 가치가 여느 때보다 더욱 빛을 발하는 시절이기 때문이다.
우리 불자들은 부처님의 탄신을 축하하는 연등축제를 해마다 개최하면서 부처님께서 세상에 오신 뜻을 저마다 다시 새긴다.

그렇다면 부처님이 세상에 나투신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가장 현실적인 문제를 놓고 해답을 찾아보자. 봉축 위원회가 정한 올해 부처님오신날 공식 표어는“소통과 화합으로 함께하는 세상”이다. 소통과 화합은 사실상 부처 님이 세상에 나투어 구현하고자 했던 궁극의 목표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부 처님의 가르침을 의지하고 따르며 널리 전도하는 교단의 구성원, 즉 승가가 다름 아닌 소통과 화합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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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사업 문제, 세종시 문제, 오래전 폐기되었을 법한 좌우이념논쟁, 무상급식을 놓고 벌
이는 정치적 흥정, 천안함 사건의 대처과정 등 소통을 전제하지 않는 이 같은 현실에서 화합
을 기대하는 일은 어불성설이다. 모두가 그릇된 편견과 이기의 집착에서 오는 고통의 현상들
이다. 이들로부터의 해방을 강조하신 부처님의 진솔한 가르침이 저미는 것은 그 때문이다.
부처님이 세상에 오신 큰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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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으로 갈라진 우리 사회의 자화상
소통은 대화를 전제로 한다. 범인(凡人)은 말로 표현하지 않으면 서로의 마음을 알 길이 멀 다. 상대와 대화를 나누겠다는 마음을 냄으로써 비로소 소통을 기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일방 성을 강요당하고 있는 작금의 한국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소통부재에 갈증하고 있는 현실은 너무나비통한 일이아닐 수 없다.
소통부재에 따른 갈증의 고통은 양극으로 치닫는 우리 사회의 자화상에서 실감할 수 있다.
4대강이니 세종시니 우리 시대 화두로 등장한 현안을 놓고 소통은커녕 일방적 순종을 요구받 는 현실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 10%의 가진 자와 90%의 그렇지 못한 이들의 공동생활 영 위는 서로의 불신만 키운다. 여전히 배고픔을 채우지 못하고 있는 어린 아이들의 무상급식을 놓고 정치적 흥정을 하고 있는 현실은 마치 아귀도에 떨어진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오래전 폐 기되었을 법한 좌우이념논쟁이 정치적 생명의 가교가 되고 있는 현실은 소통이니 화합이니 그 저 배부른 소리에 지나지 않음을 확인해준다. 더욱이 좌파승려 운운하며 출가자에게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는 경악할 현실 앞에서도 자리다툼의 이전투구에 올인하고 있는 교계의 작태는 통분을 자아낸다. 46명의 꽃다운 생명을 앗아간 해군 초계함 천안호 사건의 대처과정을 지켜 보는 현실 앞에선 할 말을 잃는다. 소통을 전제하지 않는 이 같은 현실에서 화합을 기대하는 일은 어불성설이다. 모두가 그릇된 편견과 이기의 집착에서 오는 고통의 현상들이다. 이들로 부터의 해방을 강조하신 부처님의 진솔한 가르침이 저미는 것은 그 때문이다. 부처님이 세상 에오신큰뜻이다.


그릇된 편견과 집착으로부터의 해방 은 곧 해탈의 지혜를 체득하기 위한 노 정을 말한다. 전통적 계급사회(사성제 도)의 굴레에서 해방할 것을 선언한 부 처님의 인권평등사상도 이 같은 맥락에 서 이해할 수 있다. 일체중생 실유불성 (一切衆生 悉有佛性)사상을 정립하고 교단 내 사성평등과 승가정신을 실현한 역사적 사실이 그 반증이다. 소통과 화합의 현실적 구현의 모습이다. 부처님 이 세상에 출현한 의미요 목적이다.


소통과 화합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은 사섭(四攝)의 실천이다. 편견과 집착을 벗고 인권평등을 실현하고자 했던 부처 님의 핵심사상은 인간의 존엄성을 구현하기 위한 애민중생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자(慈)·비 (悲)·희(喜)·사(捨)의 네 가지 한량한 마음으로 보시(布施)·애어(愛語)·이행(利行)·동사(同 事)로 상징되는 사섭을 실천하는 일은 불교가 존재하는 의미이다. 보시는 진리를 가르쳐 주고 (法施) 재물을 기꺼이 베풀어 준다(財施). 애어는 항상 따뜻한 얼굴로 대하고 부드러운 말을 건 넨다. 이행은 신체행위(身業)·언어행위(口業)·정신행위(意業) 등 3업에 의한 선행으로 모든 중생에게 이익을 준다. 동사는 일심동체가 되어 서로 협력하는 일이다. 소통과 화합의 극치를 이룸이 이와 같다. 부처님이 세상에 나투신 목표요 의미이다.

편견·집착 벗고 사섭실천의 주인공 되어야
소통은 그렇듯 화합을 부른다. 부처님오신날의 의미를 새기고 그 기쁨을 대중과 함께 나누는 일은 이로부터 출발한다. 화합은 갈등을 잠재운다. 이상세계가 그 자리를 채운다. 극락정토요 불국토의 세계가 현실 속에 펼쳐지는 것이다. 소통과 화합은 이처럼 서로 인(因)과 연(緣)의 관 계로 어우러져 불교가 꿈꾸는 세계, 즉 불국토 구현의 장대한 서원을 성취하게 한다. 부처님이 사바세계에 나투신 궁극적인 의미이다. 우리가 소통과 화합을 기필코 실현해야 하는 당위요, 자세를 가다듬고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해야 하는 예의의 근본을 여기서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