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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도구가 된 법성게와 삼보일배

공종원
언론인

혜화전철역에서 나와 대학로 서울대의대 교문을 향 해 가는 사이에 귀에 익은 독송소리가 들린다. ‘의상
스님의 법성게’다. 목탁을 치면서 구성지게 읊조리는 스님의 음성을 담은 카세트 테이프의 소리다. 반가운
소리였지만 대로에서 들리는 독송소리라니 이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교문 앞 한쪽에 자동차를 대놓고 차에‘서울대병원 폐쇄’라고 붉은 글씨로 쓴 종이 를 붙여놓은 사람이 시위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검은 글씨로 덕지덕지 써놓은 격문을 대충 읽어보니 무슨 의료사고와 관련하여 서울대 병원의 책임을 물으며 항 의하는 일종의 개인 시위였다.
시위는 그날 하루만 하는 것이 아니라 벌써 수십일 간 계속된 모양이다. 그러니까 병원을 찾는 환자는 물 론 대학로를 지나는 수많은 행인들이 이 괴상한 시위 를 목도하고 있었다고 하겠다.
이 시위를 본 사람들의 생각이 모두 하나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억울하고 딱한 사정을 풀어줄 수 있으면 풀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이런 시위로 과연 그의 억울한 사정이 풀어지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 것 같다. 길에서 세상사람들을 향해 통사정하고 억울함을 호소한다고 누가 나서서 해결해 줄 수도 없으려니와 서울대병원을 흠집내고 욕하는 시위의 목적이 정말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믿어지지도 않는다.

억울한 일이 있었으면 병원이나 담당의사에게 항의 하고, 법적으로 해결할 일이라면 소송을 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시위자가 그런 절차를 몰라서 여기서 매일같이 시위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 합법적이고 당연한 절차로는 분이 풀리지 않고 당연한 일로 원하는 대로 해결되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믿고 이런 특단의 방법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서울대병원을 욕하며 앙갚음으로 분을 삭이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서울대병원 폐쇄’와 같은 극단적인 표현을 하며 시위를 하면서 법성게를 마이크로 크게 독송하는 것은 어딘가 걸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지혜와 자비의 종교인 불교의 진리관을 압축해놓은 의상스님의 게송을 상대를 공격하고 해치려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 너무 거리가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시위자가 불자라서 시위 중에도 부처님이 가르친 지혜와 자비를 생각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는 것이라고 이해하려해도 부처님의 진리가 길바닥에서 욕보여지는 것은 아닌지 면구스럽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고 보니 근래 우리 사회에선 불자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시위를 하면서 불교적 의례와 불교의 권위를 이용하는 묘한 행태가 유행하고 있다. ‘삼보일배(三步一拜)’가 그런 예의 하나다. 사전을 보면‘삼보일배’는 “수행 기도 참회 따위를 목적으로 세 걸음을 걷고 한번 절하면서 가는 일”이라고 설명되고 있다. 수행 기도 참
회 등의 목적이 있다고 해도 이는 어디까지나 불교의 관습의례이지 다른 종교의 관습의례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삼보일배’는근래크게변질되고 있다. 불교만이 아니라 다른 종교인들도 즐겨 행하는 것이 되었을 뿐더러 순수히 수행 기도 참회를 목적으로 하기보다 이를 빙자한 시위도구로 이용되는 일이 너무 흔하기 때문이다.

시위의 도구로 이용되는 삼보일배라도‘북한산 살리기’를 표방하든가‘새만금 갯벌살리기’를 표방하는 경우에는 사회가 그 순수성을 조금은 수용할 수 있을 듯하다. 스님과 불자들이 나선 경우에는 설마하니 감추어진 의도를 의심하지 않아도 되려니 한다. 하지만 이들의 삼보일배가 청와대를 향하는 도정을 내걸거나 ‘광우병 규탄’‘세종시 원안사수’‘사대강 사업반대’ 와 같은 반정부 색채를 띨 경우에는 그 순수성이 크게 훼손되지 않을 수 없다. 생명 평화 환경운동을 한다면  서 기실은 국민이 민주적으로 선택한 정부의 정당성을  무시하고 이를 와해시키려는 의도가 저변에 깔려있다는 의혹마저 드는 때문이다.
그러니 민주노동당 강기갑의원이 서울시청광장에서 삼보일배를 하면서 시민들의 동조와 참여를 독려하는 경우에는 그 정치적 의도 때문에 삼보일배의 순수한 의미가 퇴색되다 못해 크게 오염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행의 한 방법이 정치적 목적으로 교묘히 오 염되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최근 민노총 산하 노조원들이 대학로에서 가진 노동자생존권 쟁취 결의대회에서 삼보일배를 한 시위자들 이 대법원에 의해 무죄 판결을 받은 경우도 사회일각 에선 우려의 대상이다. 대법원은 이 판결에서“(이들  의) 삼보일배 행진은 시위주최자나 참가자들이 시위방  식의 하나로 행한 것으로 표현의 자유의 영역을 벗어  나지 않았다.”고 보고 이들이 도로교통법을 위반한 것  만을 인정하여 2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을 위해 더 걱정스러운 것은 멋 있고 그럴듯한 명분과 목적을 내세우면서 삼보일배를  ‘표현의 자유’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그런 자유를 보 장해주고 있는 대한민국을 여러 면에서 해친다는 점  일 것이다. 이들이 그럴 의도가 없다고 변명하지만 그  간 우리 사회에서 친북좌파 이념에 물든 사람들이 생 명 평화 환경 등 그럴듯한 명분을 앞세우며 벌인 행태  들은 결코 순진무구한 것이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  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불교의 수행참회 방식인 ‘ 삼  보일배’를 시위방법으로 이용하여 불교를 투쟁적 종  교로 오도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며 더욱이 나라  의 안정까지 흔드는 일은 더 이상 용납되어선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