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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어머니 우리 어머니

용우 송의석(YUKI & SONG)
자유기고가, 오레곤 베트남참전 국가유공자회 회장

5월은 부처님오신날이 들어있어서인지 온 세 상에 자비와 사랑이 금가루처럼 뿌려지는 듯 환 희롭다.
한국에서의 5월 8일은 또 어버이날이기도 하 다. 그러나 내가 살고 있는 이곳 미국은 5월 둘째 주 일요일이 어머니날이고 그 다음달 6월 셋째 주 일요일이 아버지날이다. 그런데 이곳 미국인 들은 어머니날에는 성대한 선물을 준비하고 온 가족이 모여 멋진 외식을 하거나 나들이를 간 다. 그러나이에 반해아버지날에는고작몇불 짜리 공구세트나 남자향수를 아버지께 선물하 는 것이 고작이다. 어머니날에 비해 초라하기 그지없다.
나는 매년 어머니날을 맞이할 때마다 그리운 나의 어머니 생각에 가슴이 사무치곤 한다. 이 것은 아마도 내가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는 징 조가 아닌가 한다. 벌써 이순(耳順)을 넘긴 나 이여서인지, 최근의 좋은 기억보다는 어린 시 절의 힘들었던 기억이 생생하게 무지개처럼 피 어나고 어머니에 대한 그리운 추억이 간절히 떠
오르는 것이다.
나는 항구의 도시 인천에서 태어나서 부처산 아래 가난한 동네 송림동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 다. 아버지는 내가 4살 때 돌아가셔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으며,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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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년 어머니날을 맞이할 때마다 그리운 나의 어머니 생각에 가슴이 사무치곤 한
다. 이것은 아마도 내가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는 징조가 아닌가 한다. 벌써 이순(耳順)을
넘긴 나이여서인지, 최근의 좋은 기억보다는 어린 시절의 힘들었던 기억이 생생하게 무
지개처럼 피어나고 어머니에 대한 그리운 추억이 간절히 떠오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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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살았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그런 나에게 애비 없는 자 식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아야 한다며 대쪽같이 엄격했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또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며, 배가 고파도 자존심을 지키며 살라고 가르 치셨다.
어머니는 여자로서 공부하기가 쉽지 않았던 일제시대 때 전문학교를 나온 엘리트셨다. 그러 한 어머니셨기에 나는 가난 속에서도 도도하게 자라야 했다. 60년대 한국은 가난한 나라여서 누구나가 겪어야 했던 가난의 고통이었지만, 아 버지가없는우리집은남보다 더욱 가난을 몸으 로 느끼며 살아야 했다.
그 당시에 구운 고기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국 속에 고기 몇 점 들어가 있으면 그게 최고의 반찬이요 식사였다. 고깃국에 쌀밥을 먹는 날은 일 년 중 명절과 생일에만 가능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어머니와 고깃국에 대한 생생한 기억이 있다. 내 생일날 어머니는 미역국 을 끓여주셨는데, 내 국에는 고기가 숨겨져 있었 지만, 어머니의 국에는 멀건 국물만 있었던 것이 다. 나는 그 당시 무슨 생각이 들어서였는지 정 확히는 알 수 없지만, 어머니가 잠시 자리를 비 우고 부엌으로 나가시는 틈을 타, 내 미역국에 있는 고기 몇점을재빨리 어머니의 국그릇에넣 었다. 그런데 그 모습을 어머니에게 들켜서 심하게 꾸중을 들어야 했다.
가끔씩 어머니에게 돈이 생기는 날이면 시장에 서 돼지고기를 사가지고 오시기도 했는데, 그 날 은 우리 가족 모두의 흥겨운 잔칫날이었다. 그 때 먹었던 돼지고기 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내 일생일대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천하진미 (天下眞味)였던 것이다. 그렇게 돼지고기를 먹을 때도 어머니는 우리 자식들에게 말씀하시길, 당 신은 돼지고기를 가장 싫어하고, 돼지고기를 한 점이라도 먹으면 몸에 두드러기가 난다고 하셨 다. 돼지고기와는 상극이라서 냄새 맡기도 싫다 고 하셨다. 그렇게 우리 자식들이 먹는 모습만 바 라볼 뿐 당신은 한 점도 드시질 않았다. 뿐만 아 니라 어머니는 생선이 밥상에 올라올 때도 어두 일미(魚頭一味)라며 항상 머리 부분만 드셨고, 내 가 먹다 남은 가시를 발라드시곤 했다.
그 당시를 생각하면 또 잊을 수 없는 기억 하 나가 가족과함께서울에 사는 이모님 댁에 가는 날이었다. 이모는 큰 부자는 아니었지만 우리 집 보다는 훨씬 잘 살고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를 따라 이모님 댁에 가게 되는 날이면 나는 마냥 즐겁기만 했다. 이모님 댁은 쌀밥에 반찬도 풍부 했다. 그래서 어머니의 손을 잡고 이모님 댁을 가는 동안에는마치환상의 세계로 가고 있는 듯 한 착각에 빠지곤 했다.
그렇게 그 날도 어머니를 따라 이모님 댁에서 우리 어린 자식들은이모부와 함께 한 상에서 푸 짐하게 차려진 돼지고기를 맛있게 먹고 있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한국의 식사 풍습은 남자들은 큰방에 차려진 상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여자들 은 부엌방이나 부엌에서 대충 식사를 하기가 일 쑤였다. 그 분위기대로 돼지고기를 맛있게 먹고 있던 나는 문득 어머니가 생각나 화장실을 핑계 로 부엌방으로 가보았다. 그리고 어머니가 이모 와 함께 식사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한 점이라도 먹으면 몸에 두드러 기가 날 정도로 싫어한다는 돼지고기를 어머니 는 이모와 함께 인기척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맛 있게 드시고 계셨던 것이었다. 결혼을 하고 아버 지가 되고서야 어머니가 당시 나에게 했던 행동 들을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었지만, 그 모습을 보는 순간은 그동안 어머니가 나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생각이 더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이순을 넘긴 나이인데도 그 때의 어머니 모습만 생각하면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솟구쳐 오르는 설움을 어찌하지 못하겠다. 그 당 시 내가 돈을 벌 수 있는 나이여서 어머니에게 돼지고기를 실컷 드실 수 있도록 해줄 수 있었으 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후회를 하게 된다.
요즘 우리 가족들은 돼지고기는 거들떠보려 하지도 않는다. 갈비도 몇 번 먹으면 물린다고 투정을 부리기 일쑤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또 한숨이 먼저 나온다.
“지금 내 어머니가 살아계셨다면 이렇게 부드 럽고 맛있는 갈비를 마음껏 드시게할 수 있었을 텐데…. 돌아가신 후에야 뒤늦게 후회하는 이 어 리석은 중생아!! ”

어머니는 80세가 되셔서 내가 살고 있는 미국 으로 오셨다. 그렇게 몇 년을 나와 함께 사셨는 데, 결국 말동무가 없다는 핑계로 한국으로 되돌 아 가셨다. 말동무가 없다는 것은 단지 핑계일 뿐, 자식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마음이었다 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말릴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그렇게 한국으로 가셔서 인천에 있 는 한 양로원에 계시다가 90세를 일기로 2006 년 12월 4일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그렇게 어머 니를 한국으로 보내고 4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는 데도, 임종도 지키지 못한 이 불효자식은 미국생 활이 바쁘다, 장사가 부진하다는 등의 핑계로 어 머니가 쉬고 계시는 납골당을 찾지 못하고 있다.
“어머니! 금년에는 돈 열심히 벌어서 반드시 한국으로 가 어머니를 찾아뵙겠습니다. 그때까 지 외로우셔도 잠시만 참아 주십시오. 어머니! 이 불효자식 눈물로 용서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