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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자는 안락 얻으려는 욕망 버려야

<행복에 이르는 길>

조 현
한겨레신문 종교전문기자



인간만사새옹지마(人間萬事塞翁之馬)라는 말이 있다. 이 고사성어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에서 유래됐다.
옛날 중국 북쪽 변방의 요새에 한 노인이 살았는데, 노인이 기르고 있는 수말이 어느 날 국경 너머 오랑캐 땅으로 달아나고 말았다. 척박하고 황량한 변경 지역에서는 말을 대단히 귀중한 재산으로 취급하기에, 이웃들은 큰 손해를 본 노인에게 이구동성으로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러나 노인은 별로 속상한 기색도 없이 태연히 말했다.
“글쎄요. 이 일이 오히려 복이 될지 누가 압니까?”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났을 때, 그 말이 암말 한 마리와 여러 마리의 망아지를 데리고 돌아왔다. 이웃들이 찾아와서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축하하자, 노인은 별로 달갑지 않은 듯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축하는 무슨, 이 일이 도리어 화가 되지 않는다고 어떻게 보장하겠소?”
그로부터 얼마 후, 노인의 아들이 암말을 타고 달리다가 실수로 떨어지는 바람에 다리를 부러뜨려 절름발이가 되고 말았다. 또 이웃 사람들이 찾아와서 안타까워하며 위로하자, 노인은 이번에도 별다른 감정의 기복을 내비치지 않은 채 태연히 말했다.
“누가 아오? 이 일이 도리어 복이 될는지.”
그런데 이듬해 국경 너머 오랑캐들이 쳐들어왔으므로, 요새의 병사들뿐 아니라 젊은이란 젊은이는 모조리 소집되어 전장에 끌려가 대부분 전사하거나 오랑캐한테 끌려가 행방불명이 되었다. 그렇지만 노인의 아들은 다리를 절기 때문에 정당하게 소집을 면제받아 무사할 수 있었다.
이처럼 삶의 행운과 불운에도 초연할 수 있었던 노인은 삶에서 행운도, 불운도 지속되지 않는다는 지혜를 깨달은 현자인 셈이다. 그러니 삶에서 불운을 겪는다하더라도 그 노인처럼 생각을 바꾼다면, 살아가는 과정에서 겪게 마련인 굴곡 때문에 삶의 존재 자체가 흔들리는 일 없이 지고한 우리의 목표를 위해 나아갈 수 있으리라.
서양철학에서 인간학의 태두라 할 만한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하기 위해선 완전한 덕을 갖추어야하고, 덕이 있는 사람이 되려면 감정을 잘 다스리고 관리해야 한다고 했다. 어떻게 희로애락애오욕의 감정적 기복에서 벗어나 초연해질 것인가.
그런 구체적인 방법론에 있어서 불교는 탁월하다. ‘티베트 라마가 전하는’ <행복에 이르는 길> (무우수불교총서3)은 단지 생각만을 바꿈으로써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저자인 라마 쇠바 린포체는 근현대 티베트불교에서 달라이 라마와 함께 가장 위대한 별 중의 하나로 꼽히는 라마 예세의 제자다. 그는 스승 라마 예세(1984년 49세로 열반)와 함께 1975년 대승불교보존재단(FPMT)을 창립해 네팔 코판 사원을 중심으로 전 세계 120개의 사원에서 대승불교 수행을 전하고 있다.
<행복에 이르는 길>의 원전에 해당하는 것은 <불교에 입문하다 : 깨달음으로 이끄는 단계적 수행에서 마음을 다스리는 첫째 단계>라는 제목의 불교입문서다. 1974년 라마 쇠바 린포체는 티베트불교 전통에서 자신의 전생자로 알려진 라우도 라마가 수행했던 네팔의 솔루쿰부 지방의 어느 동굴에 머물고 있었다. 그곳에서 까담파 스승들의 조언을 담아 로되 갤찐(쫑카파 대사의 수제자인 케둡 린포체의 제자)이라는 분이 엮은 이 책을 발견했다.
1946년에 에베레스트 산에서 태어나 어려서 절에 들어와, 고승의 환생자로 인정받은 이후에도 평생 수행을 한 그였지만, 그는 이 책을 읽고서야 불교 수행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흔히들 불교 수행이라고 하면 경전을 읽고 연구하고 외우고 토론하고 기도하고 불교 의식을 행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불교 수행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알게 되었다. 그 때까지 내가 해왔던 행동들이 진정한 불교 수행과는 상관이 없었다는 것을 알고 나는 충격을 받았다. 불교 수행과는 전혀 상관없는 시간을 보냈다.”
그가 그 책을 통해 발견한 핵심은 마음가짐을 바꾸지 않고서는 아무리 염불을 외고, 불교적 의식을 행해봐야 수행의 문에 들어서지도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저자는 “손안에 든 밀가루 반죽을 주무르듯이 내 마음도 내가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 책은 티베트불교에서 ‘깨달음으로 이르는 단계적 수행’인 ‘람림’(Lamlim)’을 근간으로 삼고 있다. 람림의 모든 가르침은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마음을 다스리는’ 주목적을 이루는데 있다.
<불교에 입문하다>의 특별한 목표는 여덟 가지 세속적 관심을 다스리는 것, 즉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8가지는 우리가 매달리는 ‘물질적인 세상’에 대한 것이다.


1. 재물을 얻으면 기뻐하는 것.
2. 재물을 얻지 못하면 싫어하는 것.
3. 행복하기를 원하는 것.
4. 불행한 것을 싫어하는 것.
5. 유쾌한 소리를 듣기 좋아하는 것.
6. 불쾌한 소리를 듣기 싫어하는 것.
7. 칭찬받기를 원하는 것.
8. 비판받기를 싫어하는 것.


이 8가지에 매달려있다면 불교 수행을 시작하지도 못했다고 본다. 이 8가지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세속에 휘둘리지 않고 깨달음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문에 들어선 것으로 보는 셈이다.
라마 쇠바 린포체는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손가락이 헤지고 염주가 닳을 정도로 진언을 수백만 번 음송하고 다른 수행을 아무리 많이 한다할지라도 우리 마음에는 아무런 변화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수행에 앞서 ‘마음의 동기’가 중요한 것임을 누차 강조하고 있다. 농사를 짓든 사업을 하든, 명상을 하든지 간에 올바른 마음의 동기를 갖지 못한 채 이 세상에서의 안락과 명성을 바라고 행동한다면 짐승과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이런 8가지 세속에 대한 마음이 사라지고 욕망이 사라지는 순간부터 의식의 연속체에서 평화가 자라기 시작하고 그러다보면 영원히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저자는 갈망은 다음 생의 윤회를 가져오는 주요 원인이라고 한다. 갈망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악업을 쌓는 것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 몸과 마음에 집착하면서 그 갈망과 집착에 따라 다음 생이 결정된다고 한다. 그래서 윤회해 다시 태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갈망을 끊는 것이 가장 중요한 불교 수행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결론적으로 “모든 불교 수행자들은 이 세상에서의 안락을 얻으려는 욕망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 욕망을 버리지 않는 한, ‘수행자’라고 불릴 수 없으며, 이 세상에서의 안락을 구하는 욕망을 갖고 행한 모든 행동은 수행이 아니라는 것이다.
라마 쇠바 린포체는 “보리심을 기르면 욕망을 절제하게 되고, 나 자신과 남의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는 수행, 즉 이기심을 버리고 이타심을 기르는 수행이나 선한 마음을 기르는 수행을 하며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없애고 그들이 행복을 기원하면 많은 문제들이 해결된다”면서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책과 행복에 이르는 길을 이렇게 말한다.
“행복하길 원하고 문제를 겪기 싫어한다면 욕망을 절제해야 한다. 다른 해결책은 없다. 약을 먹는다든지 수술을 한다든지 다른 외적인 수단을 써서는 욕망이나 번뇌를 없앨 수가 없다. 유일한 방법은 욕망의 폐해를 알고 인생은 짧다는 것을 생각해보는 것이다. 욕망을 없애면 더 이상 문제는 생기지 않는다. 욕망의 폐해를 깨달으면 이 세상에 대한 집착을 끊고 세속적인 것을 버릴 수 있는 힘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