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경
여래사 신도, 소설가
오래도록 나는 ‘날라리 불자’였다. 아니, 불자라고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절을 그저 마음을 환기시키기 위해 방문하는 곳쯤으로 여겼다. 휘몰아치는 삶을 잠깐 멈추고 혼자 조용히 머물고 싶을 때 절을 찾았고,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가 있을 때 깊이 생각하기 위해 절을 찾았다. 친구들과 일주일짜리 사찰 투어 여정을 짜서 절들을 둘러보러 여행할 때도, 수련 법회에 참가하여 계를 받고 법명을 받아 지녔을 때도, 돌이켜 생각하면 사찰을 그저 ‘콘도’ 쯤으로 여겼던 것 같다.
오래 전부터 일산에 살고 있었지만 여래사에 다니기 시작한 것도 불과 몇 년 전부터이다. 내가 ‘날라리 불자’였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도 여래사에 다니면서부터였다. 절에서 시행되는 그토록 많은 법회, 기도, 행사에 참석하는 보살님들을 보면서 내가 날라리였음을 알았고, 법당이나 후원에서 봉사하시는 분들을 보면서도 ‘내가 아직 멀었구나’를 깨달았던 것이다.
처음 여래사를 찾았을 때는 일요일마다 큰스님들이 들려주시는 법문 듣는 일이 즐거웠다. 불교는 신해행증의 종교라는 것도 그때 알았고, 비로소 신행의 행위가 무엇인지를 조금씩 경험하는 길로 들어섰던 것 같다. 법문을 듣는 일뿐 아니라, 형식을 갖추어 진행되는 ‘기도’를 보살님들 사이에 끼어 따라하는 신행을 해보았다.
처음 동참했던 기도는 하안거 백일기도와 그 안에 포함된 백중기도였다. 기도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입재와 회향만 제대로 하는 것을 목표로 중간에 드문드문 참석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두 번째 동참 기도는 대학 입시생을 둔 부모들의 ‘만배정진’을 따라해 본 것이었다. ‘만배정진’은 대학입시 백일기도 중에 포함된 형식이었는데, 수능 시험 열흘쯤 전부터 매일 천 배씩 열흘 동안 하는 기도였다. 천 배나 되는 절을 그토록 짧은 시간에 그토록 가볍게 해낸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던 것이다. 일행의 뒤쪽에 끼어서 절을 따라해 보면 그 속도를 따라갈 수도 없었고, 천배를 모두 채울 수도 없었다. 남들 천 번 절할 때 겨우 6백번 정도 절하면서도 제일 힘들어할 때, 그것이 내 업장의 두께겠거니 싶었다.
그래도 한 번씩 기도에 동참하고 나면 마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감지되곤 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여래사에서 무슨 기도를 한다고 하면 나는 되도록 동참하려 노력했다. 하안거 동안거 백일기도뿐 아니라 동지, 입춘 기도, 경건주간 기도, 생전예수재 등등. 그 중에서도 특별히 좋았던 기도는 ‘자비도량참법’과 ‘자비수참’의 참회기도였다. ‘자비도량참법’ 참회기도는 작년 초파일을 앞두고 시행되었는데 기도 후 몸과 마음에서 느껴지는 밝고 환한 느낌이 좋아서 기도가 끝난 후에 혼자서 똑같은 과정을 한 번 더 반복하기도 했다.
여래사에 다니면서 내가 한 일들 중 가장 좋았던 것은 돌아가신 조상님들의 백년위패를 모신 일이었다. 신식 교육을 받은 어머니는 무신론자이고, 안동에 뿌리를 둔 유교 집안 어른들은 조선 시대 안동 일대 절들을 파괴한 전력을 이야기한다. 그런 사실들을 떠올리자 절로 조상님들을 위한 백년위패를 모시고 싶어졌다. 기억하는 모든 조상님들을 위해, 알지 못하는 일체 조상님들을 위해 백년위패를 모셨다. 조상님들에게 마음의 정처가 정해지고, 불법을 공부하시는 길이 열리고, 부디 극락왕생하시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위패에 담았다. 
그런 다음, 이것은 진짜 비밀 이야기인데, 내 이름으로도 백년위패를 모셨다. 살아 있는 사람이 자기 이름을 복위로 하여, 자기 이름을 죽은 사람 대하듯 하여 위패를 모시는 일을 상식으로는 아무도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아 입 밖에 내지 못했다. 그렇게 한 이유는 아무래도 이번 생에 공부를 끝낼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죽은 후에라도 길을 잃지 않고 불법을 공부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두고 싶었다. 여래사에서는 지장재일마다 천도재도 지내주니 최소한 배고픈 귀신이나 정처 없는 귀신이 되어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겠거니 싶었다.
요즈음 내가 꾸준히 지키고 있는 신행 방법은 금강경 사경이다. 금강경 사경도 여래사에서 하는 금강경 독송 기도에 동참한 후 붙잡게 된 수행 방식이다. 금강경을 써서 수지독송하는 공덕이 그토록 크다는 말은 금강경을 써보면 알게 된다. 금강경을 쓰기 시작하여 30분쯤 지나면 몸과 마음에 30분쯤 산책한 것과 같은 변화가 일어난다. 안팎이 고요하고 차분해진다. 그 느낌 때문에 매일 조금씩이라도 금강경을 쓰려 하지만 날라리 불자답게 자주 잊기도 하고, 드라마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한다. 그래도 마음으로 세워둔 ‘금강경 100회 사경’ 목표는 잃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지금 42회째 금강경을 쓰고 있으니 얼추 절반 고개를 넘고 있는 셈이다.
이따금, 가까운 곳에 여래사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생각한다. 여래사 부처님은 또 얼마나 환하게 잘 생기셨는지, 그 외형만큼 관대하고 자비로울 거라 믿어진다. 이성과 합리를 우선으로 하는 세상에 내놓고 말할 수 없는 신비와 직관의 경험들을 여래사에 다니면서도 하곤 한다. 주로 삼칠일 이상 진행되는 기도에 꾸준히 동참하다보면 어느 순간 신기한 일들이 경험되었다. 혼자 감사하게,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그런 종류의 이야기는 아주 나중에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대신, 오래 전에 경험한 후 10년이 지난 다음에야 비로소 사람들에게 말하게 된 경험 한 가지를 덧붙이고자 한다.
그 경험은 10년쯤 전에 있었다. 통도사가 자리잡고 있는 영축산에는 스무 개 가량의 암자가 산자락 곳곳에 깃들어 있다. 자장암도 그 중 하나인데,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돌아와 석벽 아래 움집을 짓고 수도하던 자리라고 한다. 바위 밑에는 석간수가 고여 생긴 옹달샘이 있는데, 어느날 자장율사가 공양미를 씻으러 나오니 청개구리 한 마리가 놀고 있었다. 개구리를 멀리 데려다 놓았지만 다음날 다시 옹달샘에 돌아와 놀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개구리는 입과 눈가에 금줄이 선명하고 등에는 거북 문양이 있었다. 불가와 인연이 깊은 개구리구나 싶어 개구리를 그대로 샘에서 살도록 했다. 겨울이 되어도 겨울잠을 자러 가지 않는 개구리를 위해 자장율사는 암벽에 손가락으로 구멍을 뚫고 개구리를 넣어주었다. 그곳에서 영생하며 자장암을 지켜다오, 하는 기원과 함께.
자장암 뒤 수직으로 선 암벽에는 지름 2센티미터 정도의 구멍이 있고 그 밑에는 발판이 놓여 있다. 1천 4백 년이 지난 지금도 그곳에는 예전의 그 개구리가 살고 있다고 전한다. 사람들은 그 구멍을 금와석굴, 개구리를 금와보살이라 부른다. 간혹 신심 돈독한 불자에게는 금와보살이 모습을 나타낸다고 안내문에 씌어 있었다.
한국문학을 공부하다보면 그런 종류의 구비 전승 문학은 수도 없이 만난다. 삼국유사에 실려 있다는 저 일화도 그저 설화 문학의 하나라 생각했다. 손가락으로 뚫었다는 바위 구멍과 1천 4백년을 산다는 개구리라니. 처음 자장암에서 저 설화를 접했을 때 그저 장난처럼 금와석굴 입구에 눈을 갖다 댔다. 구멍 안쪽은 컴컴하기만 할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후 통도사 수련법회에 참가했을 때 또 한 번 금와석굴을 방문했다. 그때는 함께 방문한 서른 명의 일행 중 한두 명이 금와보살을 친견했다면서 환하게 웃었다. 그들 중 한 분에게 다가가 당신이 본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 보았지만, 입꼬리가 귀에 닿도록 웃으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 후 개인적으로 통도사에서 7일간 머문 일이 있었다. 늘 그렇듯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고, 내면에서 그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혼자 조용히 머물고 싶었다. 통도사에서 나올 때 아쉬운 마음이 들어 영축산 암자들을 둘러보러 갔고, 자장암에 들러 버릇처럼 금와석굴 입구에 눈을 가져다 대었다. 아무 기대도 생각도 없었다.
무심히 바위 구멍에 눈을 대었는데, 순간 눈앞이 환하게 밝아지면서 저 안쪽에서 황금빛 덩어리가 이쪽으로 달려나왔다. 맑게 빛나면서 생기가 충만한 빛 덩어리 중심부는 연두색이었는데, 내부의 생기로 인해 소용돌이치는 듯하였다. 빛은 다가와 얼굴에 부딪쳤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빛은 사라졌고, 바위에서 눈을 뗀 다음에야 아차, 싶었다. 혹시 그것이 금와보살이었을까?
평지로 내려서서 한동안 멍청한 상태로 서 있었다. 보는 이에 따라 금테 두른 두꺼비처럼, 벌처럼, 청개구리처럼 보이기도 한다는 의미가 그것이었을까 싶었다. 다른 사람이 뵌 금와보살은 어떤 모습인지 모르지만 내가 경험한 것은 둥근 빛의 덩어리였다. 그것이 진짜 금와보살인지, 다만 환영일 뿐인지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다만 우리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큰 세계가 있고, 그것이 더 중요한 법칙과 원인의 세계라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