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권
동국대 불교대학 전문연구원

요즈음 우리사회에서 만성적인 안전 불감증으로 인해 발생하는 일련의 사태를 보면, 과연 우리나라에 국가적인 안전망이나 위기관리시스템이 전반적으로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불과 두 달여밖에 안된 지난 2월 17일에는 경주리조트 체육관 붕괴 사고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했던 부산외대 학생과 이벤트 회사직원 등 10명이 아까운 생명을 잃었다.
이러한 사고의 충격과 그 아픔의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지난 4월 16일에는 진도군 관매도 인근 해상에서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이 침몰하였다. 이 사고로 승객 476명 가운데 174명이 구출되고, 수학여행을 가던 고교생들을 포함한 대다수의 승객들과 구조 활동을 벌이던 승무원들이 거의 사망하거나 실종된 대형 참사가 일어났다.
이번 사고로 사랑하는 자식이나 가족, 그리고 부모 등을 잃은 유족들의 슬픔과 그 상처들이야 이루 말할 수 없겠지만, 이러한 불행한 사태와 사고소식을 접한 온 국민의 마음들도 그저 남의 일 같지 않기에 심한 충격과 비탄에 빠져 있는 상황이다.
이번 사태에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것은 배가 침몰하며 기우는 매우 긴박한 상황에서 구조 활동의 총책임을 진 선장이 배안에 승객들을 그대로 대기시킨 채, 가장 먼저 배와 수백 명의 승객들을 버리고 도망쳤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선장의 뒤를 이어 배의 최하부에 있었던 기관장과 배의 구조를 제일 잘 아는 선박직의 승무원들마저 구조 활동의 의무를 뒤로한 채 배를 버렸다. 이러한 승무원들의 안일하고 허술하기 짝이 없는 초기대응과 직무유기가 이번 침몰사고를 비극적인 대참사로 몰고 갔다.
또한 정부와 해경 주도하에 진행된 구조 활동과 우왕좌왕 안일하고 허술한 수습과정에서도 정부에 대한 총체적 불신과 국민적 공분을 배가시켰다. 조선일보의 모 기자가 이번 세월호의 침몰사고를 빗대어, ‘침몰하는 세월호는 한국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표현한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시 말해서 세월호의 선장을 비롯한 주요승무원들이 승객들을 남겨두고 먼저 탈출하는 모습은 국가나 사회가 위기에 처하면 몰래 빠져나가는 정치인들이나 재벌회장들을 비롯한 한국사회 지도층들의 군상들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는 것이다.
한편 해외언론들은 따뜻한 위로와 지원의 의사도 전해왔지만, 하나같이 이번 사고를 전형적인 후진국형의 인재라고 비판하였다. 특히 한국이 지난 20년간 서해 훼리호사건 등 과거에 일어난 대형 사고로부터 전혀 교훈을 얻지 못했다고 꼬집고 있다. 이러한 외신들의 지적들은 우리사회의 현실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반영하고 있어 씁쓸하기 그지없다. 이번 사고와 관련하여 정부부처의 관계당국은 사후약방문식의 안일한 태도를 과감히 탈피하고, 멸사봉공의 진정성 있는 자세로 사태수습과 재발방지를 위한 사후대책을 전·방위적으로 마련해야 할 것이다.
사실 우리 사회는 경제성장과 더불어 양극화가 점점 심화되고, 권력형 부조리로 인한 불신풍조가 사회전반에 팽배해 있다. 아무튼 우리 사회는 물질적인 풍요의 그늘아래 집단적으로 시대적인 병을 앓고 있는 듯하다. 우리 사회가 이러한 시대적인 고질병을 깊이 자각하고 치유하지 않는 한, 우리 사회는 지속적으로 불행한 사태에 직면하고 머지않아 더욱 큰 희생을 치르게 될지 모를 일이다.  
이러한 우리 사회의 슬픈 현실과 뒤틀린 자화상을 바라보니, 문득 『유마경』 제5품 「문수사리문질품」에 나오는 “모든 중생이 아프므로 나도 또한 아프다.(一切衆生病 是故我病)”라는 구절이 절실히 가슴에 다가온다. 무비스님도 『유마경』의 강설에서 강조했듯이, 우리가 함께 아픈 것은 너와 내가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이 말은 연기사상緣起思想에 기반 한 대승불교의 동체대비의 보살행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에 살고 있는 대다수의 구성원들이 느끼는 심정을 대변하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요컨대 불교의 핵심사상인 연기적인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세월호가 침몰한 사고는 단순히 조선일보의 모 기자나 많은 사람들이 쉽게 비난하듯이 단순히 정치인이나 우리 사회 지도층만의 굴절된 행태로 축소해서 볼 일은 아니다. 사실 세월호의 사고는 사회지도층의 무사안일주의적인 행태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방관이나 기회주의적인 언론사들의 왜곡된 행태도 크게 한몫하여 발생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세월호 침몰사고는 우리 사회 전체의 그늘진 자화상이 그대로 반영된 총체적 난국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의 이러한 왜곡되고 뒤틀린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바로잡기 위해서는 불교적인 혜안과 통찰이 필요하다. 불교의 연기사상에 따르면, 우리 사회는 남과 여, 너와 나, 계층별, 지역별, 인간사회와 자연환경 등이 무지로 인해 제각각 서로 별개로 떨어져 있는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인드라망과 같이 서로 얽히고 설켜 있다.
예컨대 ‘인드라망’이란 인드라신(Indra) 즉 제석천帝釋天이 머무는 도리천 내원궁 하늘을 뒤덮고 있는 그물을 말한다. 그 그물망의 코 마다에는 보배구슬들이 붙어 있고, 각각의 보배구슬들은 다른 보배구슬들의 그림자를 비춰, 하나하나의 그림자 속에 일체의 그림자가 비춰 반영되고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온 우주의 생명은 자연이든 인간이든 하나의 그물처럼 연결되어 있고, 그들은 서로 주고받는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연기사상이란 본래 ‘연기의 공식’ 또는 ‘연기의 4구’라고 불리는 초기경전의 다음과 같은 구절에서 그 구조와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게 되고,
이것이 일어나므로 저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게 되고,
이것이 소멸하므로 저것이 소멸한다. 《잡아함경》

모든 존재나 현상들은 무릇 그러할 만한 원인과 조건이 있어 생멸변화 한다는 입장으로, 우주 삼라만상은 이러한 연기의 법칙을 따른다고 한다. 흔히 초기경전에서는 연기의 이법을 두 다발의 갈대 다발들이 서로 기대어 있는 것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이는 서로 의존하는 관계의 법칙을 나타낸다. 하지만 이 연기법은 심리현상과 사물 등 세계 내에 존재하는 모든 현상에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진리로 해석해도 전혀 문제가 없다. 초기불교의 4제 연기나, 5온·12처·18계 등의 불교의 많은 가르침들도 이러한 연기법이 적용되어 만들어진 교설들이다.
특히 『화엄경』에서 제시하는 인드라망과 같은 중중무진의 연기사상은 초기불교에서 강조하는 서로 의존하는 관계를 나타내는 상대적인 연기사상을 대승적으로 더욱 발전시킨 것이다. 물론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사상이란 일의적이지는 않다. 일종의 불교적인 인과론으로 보아도 그다지 틀리지 않는다. 아무튼 연기사상의 가장 핵심적인 의미는 모든 것은 서로 의존하여 생멸한다는 것이다. 결국 불교적인 연기사상은 모든 일에는 다양한 원인과 이러저러한 조건들이 서로 얽혀있으므로, 그러한 사태를 있는 그대로 여실하게 통찰하여 소통과 행복의 이상을 실현시킬 불교적인 혜안을 제시한다.
이상과 같이 이번 참사를 비롯하여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문화후진국으로서의 고질적 병폐들은 일회적이고 사후 약방문격의 대책과 임기응변적 조치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가지고, 단계적으로 우리 모두가 너와 나, 계층별, 지역의 갈등을 넘어 범국민적으로 공동체적인 화합과 상생의 정신을 십분 발휘할 때, 비로소 우리 사회는 명실상부하게 경제성장과 더불어 문화선진국으로 발돋움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