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향(도현수)
보명사 불교대학 3기
개나리 벚꽃이 만개한 봄날 제가 다니던 절에 불교대학 12기가 개강을 했습니다.
제가 보명사에 발을 디딘 날은 6년 전, 정확히 말하자면 그때 개강은 3월, 지금보다 한 달 빨리 시작을 했습니다.
처음 절에 갔을 때는 정면에 부처님 세 분이 계시고 양 옆에 부처님 한 분씩 계셨습니다. 그리고 천장은 색색 연꽃등이 달려 있었습니다.
아늑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놀랐던 것은 절이 사람들의 일상생활 공간인 상가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절은 아득한 산속에 있어야 한다는 잘못된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보명사는 절 바로 밑에 통닭집이 있고, 지하에는 슈퍼마켓을 비롯한 상가가 들어서 있어서 수시로 드나드는 곳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보명사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절에 와서 기도를 올리고 수행을 한 뒤 다시 집에 가기 전에 시장도 볼 수 있어서 불자로서의 수행과 가정생활을 하기에는 이보다 더 안성맞춤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불교대학 3기에 입학하면서 불교에 한 발을 내딛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주지스님의 강의는 물론이고, 불교에 대한 용어를 알고 있는 것이 없어서 낯설고 어색하기만 했습니다.
처음 본 여자 불자에게 보살이라고 부른다는 사실도 그때야 알았습니다.
“보살이라니? 뭔 보살?”
남자 불자에게는 또 거사님, 처사님이라고 부른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고, 식당에서 일하시는 분을 공양간보살님이라고 부른다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이렇게 제가 다니는 절에는 보살님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보살이 무슨 뜻인지 찾아보았습니다.
보살의 사전적 의미는 ‘깨달음을 구하여 수행하는 사람. 부처가 되고자 하는 뜻을 세워 수행하는 구도자. 부처의 지혜를 얻기 위해 수행하고 있는 사람. 발심하여 불도를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저는 보살의 자격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불교대학을 졸업하는 날 불명을 받아 ‘수정향 보살’이 되었습니다. 마음속으로는 ‘내가 보살로 불려도 될 만한 삶을 살고 있는가’를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수정향’이라는 불명은 내 어깨를 으쓱하게 해주었습니다. 불명을 받던 날, 모든 보살님들의 환호와 박수갈채, 그리고 불명이 예쁘다는 소리도 들었으니, 스멀스멀 보살의 기운이 감도는 듯 했습니다.
이때가 첫딸이 고등학교 1학년, 아들이 중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종교를 가진 것에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고, 때론 봉사일도 해야 했고, 연꽃 만들기, 돈주머니 만들기, 염주 만들기 등이 처음이라 재미도 있는 것 같고 뿌듯함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래저래 내 생활을 힘들게 하는 요소들이 되면서 그럭저럭 흉내만 내고 다니다가, 조금씩 꾀가 나자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절에 나가는 일이 뜸해졌습니다. 겨우 3기 타이틀만 달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남들 다 하는 백팔배도 할 줄 몰랐고, 더 솔직히 말하자면 왜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첫딸이 고 3이 되어 수능 백일기도를 올리면서 본격적으로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으로 백팔배를 하던 날. 두 다리는 후들거리고 계단을 내려오는 일마저 힘들고 몸도 피곤했지만,  ‘자식을 위하는 일인데 이것 쯤이야’ 하면서 기도에 매진했습니다.
이때 절에서 만난 수능기도 단짝 도반이 생겼습니다. 그 도반은 불명이  ‘일불심’인데, 나이도 저와 동갑이었으며, 아주 불심이 깊었을 뿐 아니라 절의 대소사를 맡아 할 정도였습니다.
그 때부터 일불심 보살님을 따라 열심히 기도를 한 결과 둘 다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이때도 내면의 갈등은 있었습니다. 부처님의 은덕보다는 내 정성과 공부를 열심히 한 딸의 공이라고 생각했지, 합격하지 못한 사람들이 어떤 마음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내 기분에 취해 속으로 약간은 얕잡아 보는 마음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제 마음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알게 되기까지 몇 년의 시간이 흘러야 했습니다. 제가 지금 그 처지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에는 아들을 위해 수능 백일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런데 딸아이 수능 백일기도 올릴 때 생각이 나서인지,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올리고 있는 불자님들을 보면, ‘그렇게 한다고 부처님이 다 들어 주시나?’ 하는 생각에 오히려 제 자신이 우쭐해지기까지 했습니다.
어떤 보살님은 하루에 삼백배, 오백배, 천배, 이렇게 나눠서 하시는 분도 있었고, 하루에 다하는 보살님, 점심 먹고 늦게까지 매진하는 보살님도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저는 큰 애 기도할 때의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제 자신을 합리화하는데만 급급했습니다. 심지어 저의 정성이 아니고 사주나 운이 먼저라고 믿기까지 했습니다. 이렇게 부처님 앞에서 기도를 올리면서도 제 마음은 하루에도 수십 번 변덕을 부렸습니다.
그런데 아~~, 이게 웬일입니까? 당연히 합격하리라고 생각했던 제 아들이 고배를 마시고 말았습니다. 많이도 울었습니다. 시댁에 일이 생긴 것도 원망으로 다가왔고, 초콜릿을 챙겨 주지 않은 사람에게도 원망했고, 평소 생각나지 않은 일들까지 곰곰이 돌이켜 원망의 대상으로 삼기까지 했습니다.
‘남들 기도 할 때 자만하지 말고 열심히 할 걸….’ 그 원망이 이제는 제 자신을 향해 요동을 쳤습니다.
그리고 2월이 되었을 때, 아들은 기숙학원에 들어갔습니다. 전화 통화도 할 수 없고, 모든 것은 단절되었습니다. 얼굴을 볼 수 있는 것은 겨우 3주에 3박 4일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만나게 되더라도 아들은 친구들 만나기 바쁘고 가족과는 밥 한끼 함께 먹는 정도가 고작이었습니다.
그 아들이 얼마 전 두 번째 휴가를 마치고 돌아갔습니다. 얼굴은 밝아 있었고, 공부에 대한 포부와 앞으로의 계획도 스스로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아들이 그곳에서 의식이 많이 바뀌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보다 더 의젓해지고 주관도 뚜렷해졌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 그리고 아들이 떠난 후부터는 매일 아침 부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부처님께 기도를 올리면서 한결 같지 않았음을 참회도 하고 있습니다.
부처님! 다시 아들을 위해 기도 할 수 있도록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개 들어 부처님을 뵈오니 부처님께서 손들어 미소로 화답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