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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마음의 ‘별’을 찾다

정대성
공주 심우정사


법당은 웅장한데 부처가 영험이 없다는 말이 있다.
껍데기 모양보다 내면의 주인공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겠다. 마차가 가지 않는데 소를 때려야 제격이 아니겠는가.
절 공부에 있어서도 교학이 끝나면 이를 버리고 선禪에 들어 직접 깨닫고자 한다.
세상살이 남보다 낫고자 기를 쓰고 이기면 기뻐하고 지면 우울해하니 이른바 생사生死의 소용돌이인성 싶다.
보다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집과 직장 그리고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인생이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바이겠으나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여물지 않은 것이 과연 참다운 인간의 존엄과 삶이라고 할 수 있으랴.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고 하는데 차츰 물질의 힘이 커져가는 오늘날 평생 인간의 양심을 지키고 깨끗하게 맑은 삶을 꾸려가는 우리 불자들의 몫이 초라해진다면 이는 잘못된 것일 것이다.
참마음을 지키는 것이 정진精進이라 하듯 우리의 본마음은 불성 그 자체로 불보살님과 조금도 다름이 있겠는가?
번뇌와 망상에 휩싸여 본고향을 잊어버리고 눈과 귀에 속아 깃든 악마의 입김에 놀아나고 마니 이것이 진정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극락세계를 꿈꾼다면 우리는 자기 자신을 극복해야만 한다.
절의 정신이 출가인데 이는 아닌 것은 버리고 진실로 맞는 것을 기꺼이 택하는 것이다.
아닌 것을 분명 알고서도 주위의 이목이나 분위기에 난감해하는 것은 부처님 법 만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 스스로 과감하게 선구자적 심성을 견지해야 한다.
금강경에도 삼천대천세계에 칠보로 가득 보시하는 것보다 사구게가 공덕이 더 크다 했다. 이는 부처님 말씀이니 그 진실한 뜻을 우리는 꼭 가슴에 싸안아야겠다.
반야경은 부처님 설법 중 21년이나 설說하신 것인데 가장 견고한 금강반야가 아니겠으랴.
색色과 소리로 그 진면목을 외면함은 혜안이 아닌 육안肉眼의 일차원적 경계에 사는 것일 따름이다.
공空도리를 깨닫는다면 그 얼마나 환희롭겠는가. 이는 참 장부가 아닐 수 없다.
내 마음속 전도몽상의 실체를 파악하고 크게 허허 웃고 만다면 우리는 격려를 해주어야 한다.
부처의 자안慈眼일진대 비록 차이는 있더라도 그 어찌 차별이 있을 수 있겠는가.
모든 것이 연기緣起의 소산이요 자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한다.
객진客塵의 번뇌마가 홀연히 그 본모습이 발각되어 문득 여의게 되었으니 외손뼉이 소리가 없듯 쾌재快哉의 새로운 날이 열린 것이다.
모든 상相이 허망한 것이니 괜시리 유위법에 떨어져 바보처럼 살지 말자.
철이 든 우리 불자들은 비록 가난해도 도道를 즐긴 우리 선인들처럼 결코 낙망해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생의 참 멋이 소중한 메아리임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추운 겨울 봄소식을 알리는 매화가 되듯이, 더러운 흙탕물에 물듦 없이 흰 연꽃이 되듯, 나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기지개를 펴 다시금 살아나고 싶다.
나는 햇빛보다 밝은 나의 자성自性을 믿는다. 비록 현실에 지더라도 나는 이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정토가 바로 내 가슴에 깃들어 있음이 아니겠는가.
세상의 군중심리에 노예가 되어 살아나기보다는 크게 죽어 다시 살아나는 사중득활死中得活의 부처님 제자의 길을 택하여 살아가고 싶다.
맹자에도 군자는 의義를 취하고 소인은 이利에 밝다고 되어 있다.
나의 근본을 지키는 것은 소탐대실小貪大失하지 않기 위함이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발원하며 여태껏 지켜온 불심佛心이다.
비록 내 몸은 무너져도 부처님께서는 나의 마음을 인정해주기를 소망하며 오늘도 묵묵히 살아가고 있다.
오음마五陰魔에 지지 않을 만큼 나의 수행이 무르익어야 할 터인데 막상 경계에 닥쳐 외도가 기뻐하고야 만다면 그 무슨 낯을 들고 다니겠는가.
부처의 미소는 이기기 힘들다 하는데 나도 불제자로서 이를 닮고자 한다.
누가 뭐래도 나는 미성년자가 아니요, 어엿한 성년의 인격으로 내 인생의 책임을 지고 스스로 길을 가는 숫타니파타의 인물이다.
다 남의 탓이 아니고 나에게 달렸으니 그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스스로 짓고 스스로 받는 것일지니 겸허하게 인연을 긍정하고 영원하지 못한 것을 버리고 가야할 길만을 고고하게 가야만 하겠다.
더 이상 희론.論에는 연연해하지 않고 주어진 모든 것을 웃으면서 수긍하고 보다 큰 대아大我를 위해 뛰겠다.
공명정대公明正大할지니 이 세상 그 무엇이 두렵겠는가.
옛분 말씀처럼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더 이상 뭐가 있단 말인가.
부처님 은혜가 부모 은혜보다 크다 하는데 누가 묻는다면, 난 내 마음의 부처님 즉심시불卽心是佛이다.
박장대소하며 보니 온 세상이 내 손 안에 있는 듯 나는 마음이 환해졌다. 절에서 공부하는 것은 먹고 자는 것도 잊어버리고 오직 일념一念으로 매진할 때가 많다.
지성이면 감천感天이라고 깨달음의 빛은 자기 자신을 구제해준다.
스스로가 일이 없으면 한 몸 세상에 바쳐 세상을 건지는 무위법의 등대가 되니 기특하기 한량이 없음이다.
향이 자신을 태워 주위를 그윽하게 하고 초가 세상을 밝히듯 우리네 불법도 참 사람으로 거듭나 대승大乘의 큰 깃발이 펄럭이길 바란다.
지족知足의 미륵 부처님 이 땅에 강림하사 온 누리가 아름답게 빛나기를 가슴깊이 소망한다.
다들 웃고 살만한 우리 절집이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