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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생요집

김명환
불광출판사 제작부장


염리예토 흔구정토厭離穢土 欣求浄土
더러운 세상을 멀리하고 기꺼이 정토를 찾는다


『왕생요집往生要集』은 일본 승려 겐신(942~1017)이 마흔셋 되던 해인 984년(혹은 985년) 저술한 책이다.
저자는 스스로 “지혜가 뛰어나고 정진하는 사람이라면 어려움이 없겠지만, 나처럼 완고하고 둔한 사람이라면 어찌 엄두가 나겠는가”라며 “염불의 법문 한 가지에 의지하여 경론의 요체를 설하는 문장을 모은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저자의 이런 ‘겸손’과 달리 이 책 『왕생요집』은 세상에 나온 후 일본 사회는 물론 당시 송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에 사상사에 엄청난 변화를 불러온다.
일본 불교계는 이 책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호넨(法然, 1133~1212) 스님에 의해 정토종淨土宗이 열렸다. 이후 호넨 스님의 제자인 신란(親鸞, 1173~1262)은 정토진종을 창종했고, 정토진종은 현재까지도 영향력은 물론 규모 면에서도 일본 불교 최대 종파로 자리 잡고 있다.
사상은 물론 문학이나 미술에 미친 영향도 막대하다. 2017년 일본 나라국립박물관에서 열렸던 ‘겐신전’에는 『왕생요집』의 영향을 받은 그림과 불상을 모아 전시회를 열었는데 헤이안시대(794년~1185년)와 가마쿠라시대(1185년~1333년)의 지옥도, 아미타내영도 등 일본에 산재한 수많은 국보가 쏟아져 나왔다. 일본 문학의 최고 걸작이라는 11세기 『겐지이야기』 역시 『왕생요집』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 평가된다.
정치·경제에 끼친 영향도 대단했다. 심지어 도쿠가와 이에야스(1543~1616)는 자신이 이끄는 군대의 우마지루시(신분 및 무위를 과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한 깃발)에 이 책의 첫 번째 장과 두 번째 장의 대문大文인 “염리예토厭離穢土 흔구정토欣求.土”를 새겨 넣고 다녔다.
일본뿐 아니라 중국에 미친 영향도 크다. 찬술한 이듬해, 이 책이 송나라 천태산 국청사에 수장된 것만 봐도 이 책의 영향력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왕생요집』은 어떤 책인가?
이 책은 순수한 창작이라기보다는 불교 경전과 중국, 한국, 일본의 논서 등에서 정토와 관련된 문헌을 취합한 것이다. 여기에 저자 스스로 묻고 답하며 염불 신앙의 당위성은 물론 수행의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 인용한 불경이나 논서는 모두 112부 617문文이다. 경전이 제일 많이 인용되어 있고 중국의 도작道綽·선도善導·회감懷感 스님의 주석서, 그리고 원효, 의적, 경흥 스님 등 신라 출신 스님들의 논서도 인용되어 있다.


책은
①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인 등 육도六道를 설명한 염리예토厭離穢土
② 극락정토의 십락十樂을 설명한 흔구정토欣求淨土
③ 극락왕생의 증거를 설명한 극락증거極樂證據
④ 정토왕생의 길을 밝힌 정수염불正修念佛
⑤ 염불수행의 방법을 설명한 조념방법助念方法
⑥ 임종시 염불을 설명한 별시염불別時念佛
⑦ 염불의 공덕을 설명한 염불이익念佛利益
⑧ 염불의 선업을 설명한 염불증거念佛證據
⑨ 염불의 포용성을 설명한 왕생제업往生諸業
⑩ 의심나는 부분을 문답 형식으로 다시 설명한 문답요간問答料簡


의 열 개의 대문大文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중 ①∼③은 수행의 방편을 밝힌 것이고, ④∼⑨는 왕생의 업인業因을 설명한 부분으로 이 책의 중심을 이룬다. ⑩은 의심을 풀어주기 위해 대개 문답으로 진행한다.
염불 수행이 흥했던 대부분의 시기가 그랬지만 당시 일본은 사회적으로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부처님이 경전에서 말한 말세도 곧 가까워 왔다고 믿었다. 저자 겐신은 이런 상황에서는 극락에 왕생하기 위해 누구나 염불을 해야 한다고 이 책에서 강조했다.


국내 최초 완역


『왕생요집』은 동아시아 정토신앙의 원점原點이다. 일본 정토교의 기초가 이 책으로 완성되었다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그 지대한 영향에도 불구하고 국내에는 한 번도 완역된 적이 없다. 초기불교나 선禪의 입장에서 보자면 정토 신앙 그리고 염불 수행은 하열한 것으로 취급되는 일이 종종 있다. 하지만 사회가 혼란스럽고 불교가 현학적으로 흐를 때마다 어김없이 정토신앙이 전면에 등장했다. 부처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귀의하여 한 마음으로 염불하는 사람은 누구든 극락왕생할 수 있다는 어려운 시절의 범부들에게 그리고 불교가 현학적으로만 흘러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라고 여길 때, 세상을 사는 방편 그리고 불교를 지키는 기둥이었다.
특히나 이 책 『왕생요집』은 현대에까지 사상사 그리고 미술사 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역작이라는 점에서 반드시 번역되었어야 하고 또 읽혀져야 할 명저이다.


책속으로
극락왕생을 위한 가르침과 수행이라는 것은, 탁세·말법 시대의 사람들을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는 눈과 발이다. 출가자와 재가자, 귀하고 천한 자, 뉘라서 귀의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현밀顯密의 교설이 같지 않으니, 사관事觀과 이관理觀의 실천도 여러 가지로 다양하다.
지혜가 뛰어나고 정진하는 사람이라면 어려움이 없겠지만, 나처럼 완고하고 둔한 사람이라면 어찌 엄두가 나겠는가. 이 때문에 염불의 법문 한 가지에 의지하여 그 경론의 요체를 설하는 문장을 모은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염불 수행하면 이해하기 쉽고, 실천하기도 쉬울 것이다.
- 천태天台 수릉엄원首楞嚴院 사문沙門 겐신(源信)


묻는다
만약 그렇다면, 단지 선근을 보리에 회향하면 되는데, 무슨 까닭에 다시 왕생극락을 지향하는가?


답한다
보리는 과실(果報)이고, 극락은 꽃(華報)이다. 과실을 구하는 이가 어찌 그 꽃을 기대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구품九品의 정토 수행에서 모두 이르기를, “회향 발원하여 극락국에 태어나기를 구한다.”고 하는 것이다.
- 206쪽 「대문大文 제4 정수염불正修念佛」


모든 행위는 원願에 의해서 전개된다. 그러므로 발원에 따라 왕생하는 것이다. 총괄해서 말하자면, 삼업을 지키는 것은 악을 제어하는 지선止善이며, 칭명염불하는 것은 선을 행하는 행선行善이다. 보리심과 발원은 이 두 가지 선을 돕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수행법들이 왕생의 요체가 되는 것이다
- 285쪽 「대문大文 제5 조념방법助念方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