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탁(연세대 철학과 교수)
1.
당연하지만 ‘부처의 가르침’이라는 뜻인 ‘불교佛敎’의 시작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다. 그리고 ‘부처의 가르침’은 수행공동체인 승가(僧伽, saṃgha) 안에서 ‘구전’되어오다가, 기원전 1세기경에 비로소 문자로 ‘기록’되기 시작했다. 그와 때를 같이하여 대승을 자임하는 자들도 문자로 된 경전을 세상에 내놓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이 무렵의 인도 전역에서는 구전되던 여러 사상과 규칙들도 문자화되기 시기했다. 문자의 시대가 열렸다.
그렇더라도 대승 경전과 소승 경전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팔리어로 기록된 <초기 불교 경전>은 석가모니 입적 후 비구들의 구전 전통이 있지만, <대승 불교 경전>은 그런 전통이 없다. 대승 경전은 ‘경전 작가’가 편집한 것이다. 이 둘의 차이를 분명하게 갈라보아야 한다.
2.
우리가 보고 있는 화엄경은 그런 대승 경전 작가의 편집에 의해 세상에 나온 것이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을 비구 승단이 외워 후세에 전한 것은 아니다. 중국의 학승들은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교상판석’할 때 경전을 크게 둘로 구분했다. 하나는 ‘석가경’이고 둘은 ‘사나경’이다. ‘석가경’은 역사상의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이고, 반면에 ‘사나경’은 법신이신 비로자나 부처님을 설정하여, 그 부처님이 설하신 형식으로 ‘경전 작가’가 구성한 것이다.
대승의 ‘경전 작가’는 구전되던 ‘석가경’을 기본 재료로 삼고, 거기에 당시 브라만교와 인도인들의 종교사상을 ‘불교적으로 종합’하였다. ‘불교적 종합’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경전 작가’가 이해한 ‘불교’이지, 당시 비구 승단이 이해한 ‘불교’인 ‘아비달마 불교’는 아니다. 그렇다고 개인의 ‘사적私的’ 이해도 아니다. 왜냐하면 기원 전후로 출현하기 시작한 <반야부>, <법화부>, <열반부>, <화엄부> 등에 관통하는 공통의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독자 여러분들도 다 아시는 이야기이다. 등장인물의 핵심이 ‘비구’가 아닌 ‘보살’이다. 심지어 ‘비구’가 혼나는 장면도 비일비재하다. ‘사적으로 이해한 불교’가 아니라 ‘시대가 공감하는 불교’이다. 대승의 시대적 물결이다.
특정해서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화엄경을 예로 들면, 이 책은 기원후 4세기 무렵 중앙아시아에서 <편집>되었다. 그중 「십지품」은 기원후 1세기 무렵에 이미 존재했다. 화엄경의 구성 작가는 이런 기존의 대승 정신을 담은 이야기들을 모았다. 나아가 브라만교의 베다Veda도 불교적으로 각색하여 이야기 재료로 삼았다. 민간에 전하는 이야기들까지도 채록하여 방대한 이야기 꾸러미를 만들었다. 이렇게 화엄경 발생을 이해해야만, 우리가 ‘현재’, 그리고 ‘이 땅’에서, 화엄경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답이 나온다.
3.
전통적으로 화엄경을 독서했던 전문 학승들은 ‘구성 작가’의 의도를 ‘신-해-행-증’으로 파악했다. 많이들 오해하고 있는 것으로, ‘신-행-행-증’의 ‘신信’을 단순에 ‘믿음’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화엄경 ‘구성 작가’의 의도는 <믿음의 대상>을 소개하려는 것이지, 우리들의 <믿음 자체>가 아니다.
‘구성 작가’는 우리가 ‘믿어야 할 <대상>’을 화엄경 전반부 총 6품에 배치하고 있다. 그 <대상>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진리이신 부처님’이다. 말이 부처님이지 진리 그 자체이다. 다만 인간들이 이해하기 쉽게 부처님으로 표현한 것뿐이다. 시공을 관통하고 생주이멸이 없는 즉 무생無生의 진리이다. 그런 진리 자체가 몸인 부처님 즉 ‘법신法身’이 원인이 되어, 세상(세계)이라는 결과가 성취된다. 그럼, 그 ‘진리이신 부처님’이란 대체 누구인가? 대위광태자의 후신이다. 태자가 여러 생을 거듭하면서 수행한 결과 ‘진리이신 부처님’이 되었다. 그런 ‘진리이신 부처님’이 원인이 되어서 성취된 것이 화장세계이다.
‘구성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이렇다. “보세요 여러분! 무한하게 펼쳐지는 하늘을 보세요. 여러분이나 저도 우리가 매일 매일 보듯이 뒤에는 높은 히말라야산이 있습니다. 그런 산을 중심으로 하는 세상이 삼천대천세계에 포진해있습니다. 이 모두는 부처님의 수행이 원인이 되어 만들어진 결과입니다. 그런데, 그 부처님의 전생은 바로 왕자이셨습니다. 그 왕자께서 출가 수행해서 부처가 되셨고, 그 부처님의 원력 공덕으로 세상(세계)이 멋지게 건설되어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그런 부처님의 사업에 동참하여 좋은 세상 만들어갑시다.”
 
4.
이렇게 ‘신信’을 말해놓고, 이어서 ‘해-행-증’ 순으로 작가는 화엄경을 편집해간다. ‘이론’ 부분은 다음과 같이 조직해간다. 첫째 부처님의 신·구·의 3업業에 갖추어진 능력을 소개하여, 그 능력에 의지해서 수행할 것을 분명히 했다. 이렇게 의지처를 분명히 밝힌 다음, 둘째는 수행 관련 이론을 ①믿음 관련 이론, ②이론 관련 이론, ③실천 관련 이론, ④원력 관련 이론, ⑤체험 관련 이론, ⑥체험의 완성 관련 이론, 이렇게 순차로 설명했다. 셋째는 이렇게 수행한 결과 얻는 과보果報를 배치했다.
필자는 이번 5월호에서 <‘신해행증’으로 읽는 화엄경> 제⑰을 독자님들께 소개하고 있다. 지난 제⑦(2021년 7월호)부터 제⑬(2022년 1월호)까지, 총 7회에 걸쳐 이상의 , , 중에서 는 생략하고 , 를 소개했다.
2022년 2월호부터 즉 ⑭에서부터 ‘신-해-행-증’의 ‘행行’을 소개하고 있다. ‘행行’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실천’이 되기 때문에, 이런 의미를 전달하고자 제목에 <실천(3/6)>이라 했다. 그러면 <3/6>은 무슨 뜻인가? <실천>을 주제로 한 문답이 펼쳐지는 대목이 「이세간품」에 펼쳐지는데, 세부 문단을 나누면 여섯이 된다. 총 6문단 중에서 세 번째 문단이라는 뜻으로 <3/6>이라 표시했다. <3/6>의 핵심 주제는 ‘10행行’이다.
그럼 ‘10행行’이란 무엇인가? 저기 「십행품 제21」과 이곳 「이세간품 제38」에서 명칭이 약간 다른데, 여기서는 「이세간품」을 소개한다. 첫째는 중생을 기쁘게 하는 실천이다. 둘째는 중생을 이롭게 하는 실천이다. 셋째는 10종의 불가사의한 실천이다. 넷째는 구부러지거나 휘어짐이 없는 실천이다. 다섯째는 수행자 스스로 즐겨야 할 실천과 세상을 위해 해야 할 실천이다. 여섯째는 부동심과 절대 포기 없는 실천이다. 일곱째는 지혜를 관찰하고 설법하는 실천이다. 여덟째는 청정하고 진실한 실천이다. 아홉째는 지혜로운 실천이다. 열째는 진실한 실천이다.
제목만 보아서는 내용이 짐작이 안 간다. 아래에 지면이 허락하는 데까지만이라도 내용을 소개해보기로 한다. <넷째는 구부러지거나 휘어짐이 없는 실천>을 보면, 한문의 이름은 <무굴요행無屈撓行>이다. 「십행품 제21」에서는 <무진행無盡行>으로 표기되어 있다. 필자는 <구부러지거나 휘어짐이 없는 실천>이라 번역했는데, 여기에는 구체적으로 열 가지 실천이 소개되어 있다. ①교묘하고 비밀스러운 말, ②교묘하게 분별하는 지혜, ③삼매에 들어감, ④두루 들어감[遍入], ⑤해탈하는 문, ⑥신통, ⑦밝음, ⑧해탈, ⑨숲동산, ⑩궁전. 이렇게 열 가지 실천이다. 그 각각에도 다시 열 가지 실천이 있다. 이 역시 제목만으로는 내용 짐작이 어렵다. 지면이 얼마 남지 않았다. 부득이 필자가 좋아하는 <④두루 들어감[遍入]>에 한정해서 소개해보기로 한다. 운허 스님의 한글대장경 번역을 그대로 인용한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두루 들어감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①이른바 중생에 두루 들어가고 ②국토에 두루 들어가고 ③세간의 가지가지 모양에 두루 들어가고 ④화재에 두루 들어가고 ⑤수재에 두루 들어가고 ⑥부처에 두루 들어가고 ⑦장엄에 두루 들어가고 ⑧여래의 그지없는 공덕의 몸에 두루 들어가고 ⑨모든 가지가지 법을 말하는 데 두루 들어가고 ⑩모든 여래를 가지가지로 공양하는 데 두루 들어가나니, 이것이 열입니다.”
5.
「이세간품」은 보혜보살의 질문에 보현보살이 대답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화엄경 ‘구성 작가’는 대승 이념을 실천하는 대표 보살로 <보현>을 특화했다. 보현보살은 이렇게 외치고 있다. 대승의 보살 운동에 동참하려는 사람이라면, 열 곳으로 두루 들어가시오[遍入]! ①중생 속으로 들어가시오! ②세상 속으로 들어가시오! ③세상살이 속으로 들어가시오! ④화재 구하러 불 속으로 들어가시오! ⑤수재 구하러 물속으로 들어가시오! ⑥깨치려고 부처 속으로 들어가시오! ⑦저마다 사는 그 자리를 멋지게 건설하러 들어가시오! ⑧여래의 공덕 속으로 들어가 몸소 익히시오! ⑨누군가가 진실을 말하면 그것 배우러 그 속으로 들어가시오! ⑩부처님 계시는 곳곳마다 그 속으로 들어가 공양하시오!
소승불교의 ‘10변처遍處’를 대승의 작가는 이렇게 훌쩍 뒤집은 것이다. 소승을 알아야 이렇게 뒤집는 대승 운동 정신을 알 수 있다. 아비달마 소승의 ‘10변처’를 읽어보면, 저들이 왜 소승이라 천대받는지를 누구나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