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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열반의 의미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구룡사 회주



석가여래 부처님께서 사바세계에 80여 성상을 함께 계시다가 쿠시나가라에서 열반涅槃에 드신 열반재일입니다. 부처님께서 출생하셔서 열반에 드실 때의 80여년을 살펴봄으로써 열반재일의 의미를 되새겨보고자 합니다.
구담 고오타마 싯다르타 태자는 가비라국 룸비니동산에서 태어나 29세에 출가를 하시고 35세에 성도成道를 이루신 후 45년 동안 전법의 길에 계시다가 쿠시나가라 사라쌍수 나무 아래에서 세연世緣 80세로 열반에 드셨습니다.
올해가 부처님 열반일로 우리나라 불기는 2567년입니다. 부처님의 세연 80세를 더하여 2647년 전에 어머니 마야부인께서 해산을 위해 외가댁으로 가던 길에 룸비니동산에서 탄생하신 것입니다. 태어나자마자 사방칠보四方七步 하시며 ‘천상천하天上天下에 유아독존唯我獨尊이요, 삼계개고三界皆苦하니 아당안지我當安之하리라.’ ‘하늘 위 하늘 아래 우리 모두는 존귀 하도다, 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가 고통과 괴로움 속에 있으니, 내가 마땅히 그들에게 안심입명安心立命의 편안함을 얻게 하리라.’는 선언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어머니를 여의게 된 싯다르타 태자는 소년시절에 동서남북의 4대 성문으로 나아가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목격하시고 사색과 고뇌에 빠져 있다가 한 수행자의 편안하고 여유로운 모습을 보면서 출가를 결심하고 29세에 출가하여 35세에 부다가야 보리수 아래에서 성도成道를 이루기까지 각고刻苦의 수행과 정진을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훗날 그 일을 이렇게 술회하셨습니다.


“머리를 만지면 파뿌리 뽑히듯 하고, 얼굴을 쓰다듬으면 덜 익은 오이 쥐어뜯어서 그늘에 말려 놓은 것 같고, 배를 만지면 등살이 잡히는 것이 마치 배틀의 추를 보는 것과 같았다…. 과거에 어떤 수행자도 이런 고행은 할 수 없었고 미래의 어떤 수행자도 이런 고행을 원치 않는다.”


그리고 고행림에서 내려와 니련선하尼連禪河에서 소치는 소녀 수자타가 공양으로 올린 유미 죽을 얻어 드시고 다시 기운을 차려 부다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목숨을 건 수행정진을 한 끝에 납월(12월) 8일 샛별이 떠오르는 새벽 무렵 성도를 이루신 것입니다.
수자타에게 유미죽을 얻어 드시는 모습을 보고 타락했다고 떠나버렸던 교진여 등, 함께했던 다섯 고행자들이 머무르고 있는 녹야원鹿野苑으로 가셔서 그들에게 처음으로 법을 설하십니다. 그곳에서 사제四諦와 팔정도八正道, 십이연기법十二緣起法을 설하신 이후 45년 동안 전법의 길을 걸어가시다가 2월 15일 구시나가라 사라쌍수 나무 아래에서 열반涅槃에 드신 것입니다.
30여 년 전, 열반재일 무렵 인도 부다가야에 고려사 절을 세울 땅을 매입하기 위해 갔다가 보리수나무 잎들이 우수수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떨어진 보리수 잎을 가져와 불자들에게 나누어주어야겠다는 생각에 떨어지는 보리수 잎을 모았던 생각이 납니다. “부처님이 구시나가라 사라쌍수 나무 밑에서 열반에 드시자 무수한 나뭇잎들이 눈송이처럼 떨어졌다.”는 부처님 열반하실 때 모습을 설명한 경전 구절이 생각났기 때문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떨어진 보리수 잎을 책갈피에 하나씩 넣어서 숙소로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니 또 욕심이 생깁니다. 그래서 책갈피에 끼워두었던 보리수 잎들을 방에 쏟아놓고 돌아서는데, 조금 전에 쏟아두었던 보리수 잎들이 그 사이에 낙엽이 되어 말려버립니다. 다시 펴보려 했지만 펴지지 않습니다.
그때 문득 깨달았습니다.


복福은 지으며 덕德을 쌓으면서 살아야한다.
수행修行은 닦으면서 살아야 하겠구나.
복덕과 지혜가 아무리 많아도 소진해 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겠구나.
복은 짓는 것이며 덕은 나누는 것이고 수행은 닦는 것인데, 수명이 다한 나뭇잎으로 떨어진 보리수 잎도 그와 같아서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구나.
우리네 인생도 끊임없이 복과 덕과 지혜를 구족具足하는 노력을 해야겠구나.


인생은 초대하지 않아도 저 세상으로부터 찾아왔고 인생은 허락하지 않아도 이 세상으로부터 떠나갑니다. 인생은 찾아온 것처럼 그렇게 떠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네 인생은 내 마음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어느 방송에서 봤던 환생과 빅뱅이라는 프로그램, 모 방송국에서 방영했던 티베트불교와 과학, BBC의 다큐멘터리 생명의 기원 등의 프로그램을 보면서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이들이 불교를 조금만이라도 알았다면,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 수상행식受想行識 역부여시亦復如是의 오온五蘊이 공空함을 비추어 볼 수 있었다면 색과 공이 다르지 아니함을, 색은 있는 현상이요 공은 있는 그대로인 것을 알았으면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텐데 하는 마음을 가져보기도 합니다.
『열반경涅槃經』에서 사자후보살이 부처님께 여쭤봅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무슨 연고로 2월달에 열반에 드시려 하십니까?”
“2월은 봄이다. 봄에는 만물이 자라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강물이 많아지고 온갖 동물들이 새끼를 낳는다. 그래서 중생들은 흔히 세상이 항상恒常하다는 생각을 내고 있느니라.”


봄에는 날씨가 따뜻해져서 히말라야 설산의 빙하가 녹아내려 강물이 많아집니다. 만물은 새싹이 돋고 꽃을 피웁니다.
동물들은 새끼를 낳습니다. 우리들이 봄의 계절을 보며 항상 하다고 느끼는 것을 염려하여 모든 법은 무상無常하다는 것을 일깨워주기 위하여 2월 보름날 열반에 드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인생은 무상하지만 허망하고 허탈하고 허전한 인생이 되어서는 안 될 것 입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신지 20년쯤 되었을 때, 대중들에게 묻습니다.


“누가 나를 좌우에서 보좌 보필하면서도 그러고도 이익을 잃지 않겠느냐?”


그러자 부처님보다 세속의 나이가 많은 상수제자들이 부처님을 보필하겠다고 합니다. 이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시자의 도움을 받아야 할 나이들인데, 어찌 나를 보필하겠다고 하는가?”


그때 사리불舍利佛 존자가 선정삼매禪定三昧에 들어 부처님의 의중을 살펴보니, 부처님께서는 아난阿難을 마음에 두고 계신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아난에게 부처님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러나 아난은 일언지하 거절을 합니다.
“부처님과 사촌지간의 혈육이라 모시기 어렵고, 힘든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승가공동체에서 마치 부처님을 모시는 것이 맛있는 음식이나 공양 받고 좋은 옷이나 얻어 입으려고 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에 시봉할 수 없다.”고 설명합니다.
부처님은 아난의 걱정을 듣고 아난이 원하는 일들을 모두 들어 주겠다고 하십니다. 그 중 하나가 언제든지 부처님 처소에 출입할 수 있도록 허락받은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아난이 부처님을 시봉하게 되었는데,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기 전 아난존자를 여덟 가지의 칭찬을 하시는 중에 “아난은 때 아닌 때 내 처소에 한 번도 들어온 적이 없었다.”고 하십니다.
아난존자는 항상 부처님을 가까이에서 보필하였기 때문에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 다문제일多聞第一로 불립니다. 그런 아난에게 말하십니다.


“아난다야, 나는 이제까지 모든 법을 가르쳤다. 법을 가르치는데 인색해본 적이 없다. 이제 나는 늙고 기운도 쇠했다. 내 나이 여든이다. 낡아빠진 수레가 근근이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내 몸도 겨우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흩어져 있던 제자들을 모이게 한 뒤 3개월 후 열반에 들겠다 하시고 하루하루 걸어서 쿠시나가라에 이르러 사라쌍수 나무 밑에 자리를 펴시게 하십니다.


“나는 오늘 저녁에 여기에서 열반에 들리라.”


이 말을 들은 아난존자가 슬픔을 참지 못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아난을 불러 다시 말씀하십니다.


“아난다야, 울지 말아라. 가까운 사람과 언젠가 한 번은 헤어지게 되어 있는 것이 이 세상의 인연이다. 태어난 이는 반드시 죽게 마련이다. 죽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너는 그동안 나를 위해서 수고가 많았다.
내가 떠나간 뒤에도 더욱 정진해서 성인聖人의 도道에 오르도록 하여라.”


월하 노스님이 열반하셨을 때,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노스님의 보살핌, 그 자비심과 연민심으로 우리가 성장했다고 생각하니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 전 성운대사님 열반하셨을 때, 불광산사에서 또 하염없는 눈물을 쏟았습니다. 스님께서 돌아가신 게 슬퍼서 흘린 눈물이 아니라 환희법열歡喜法悅에서 속환사바速還娑婆 하시라는 염원을 담은 눈물이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위로를 하신 가르침처럼, 우리도 스스럼없이 세상을 떠날 수 있도록 승가 공동체의 삶을 여한 없이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아난존자가 슬픔을 참으면서 부처님께 열반에 드신 다음 장례 절차에 대해 여쭙니다.


“아난다야, 너희 출가자들은 나의 장례 절차에 상관하지 말아라. 너희는 오로지 진리를 위해서 부지런히 정진하여라. 여래如來의 장례는 신도信徒들이 알아서 치러줄 것이니라.”


열반에 드신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수없이 많은 대중이 몰려들었습니다.
쿠시나가라에 살고 있던 나이 많은 수행자 수바드라도 그 소식을 전해 듣고 부처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평소 가지고 있던 의문을 묻기 위해 달려왔습니다. 아난존자가 이들을 차단하려하자 부처님께서 아난을 만류하십니다.


“진리를 알고자 찾아온 사람들을 막지 말아라. 그들은 나를 괴롭히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내 설법을 듣고자 온 것이다. 내 말을 들으면 곧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설법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수바드라가 부처님의 생전에 마지막 제자가 된 것 입니다.
그런 뒤에도 계속해서 찾아오는 이들에게 어려워하지 말고 물으라 하셨지만, 아난존자는 더이상 의문을 지닌 사람이 없다고 대답하자 대중들을 향해 마지막 법문을 설하십니다.


“너희들은 저마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를 의지하여라. 진리를 등불로삼고 진리를 의지하여라. 이밖에 다른 것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너희들은 내 가르침을 중심으로 화합할 것이요, 물 위에 기름처럼 살지 말아라.
나의 교법敎法을 지키고 함께 배우며 함께 수행하고 부지런히 힘써 도道의 기쁨을 함께 누려라. 나는 몸소 진리를 깨닫고 너희들을 위해 진리를 말하였다. 너희는 이 진리를 지켜 무슨 일에나 진리대로 행동하여라. 이 가르침대로 행동한다면 설사 내게서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그는 항상 내 곁에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죽음이란 육신의 죽음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라. 육신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므로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여래는 육신이 아니라 깨달음의 지혜다. 육신은 여기에서 죽더라도 깨달음의 지혜는 영원히 진리와 깨달음의 길에 살아 있을 것이다. 내가 떠난 후에는 내가 말한 이 가르침이 곧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
모든 것은 무상無常하나니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여라.”


얼마 전 열반하신 성운대사님도 제자들에게 상당히 긴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열반경』처럼 한 권의 책으로 이루어진 건 아니지만,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남기신 유언 한 부분을 우리들의 경책으로 삼고자 합니다.


“도량의 어느 한 곳도 국유지가 아니고 임차한 것도 아니며 모두 다 사중에서 삼보정재로 점차적으로 사들인 것들이다. 일체 모든 것이 다 불광산 사중 소유로, 함께 투자한 누구도 없고 연루한 이도 없으며 빌리고 빌려준 것도 없다. 사중에서는 개산 이래 외부와 돈을 빌리거나 빌려준 적이 없다.”


불광산 불타기념관 등 불광 산사의 토지 및 모든 분원과 포교당은 3백 곳이 넘고 종합대학도 여섯 나라에 세우셨습니다. 그 학교를 제대로 운영할 수 없는 재정 상태가 되거든 팔지 말고 운영할 수 있는 이에게 기증하라고 하셨습니다. 가슴이 뭉클합니다. 출가자는 사유재산이 있으면 안 됩니다. 출가자는 사유재산을 최소한의 것 외에는 가지고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을 성운대사님은 이렇게 몸소 보이시고 열반하셨습니다. 이런 모습이 나에게는 40년 전에 좋은 선지식의 만남이 참 좋은 인연이었고 복된 인연이었구나 하는 마음을 가지게 합니다.


이처럼 부처님은 인간적인 분이셨습니다. 참으로 따뜻하신 분이셨습니다.
부처님은 이렇게 2567년 전 제자들에게 마지막 법문을 하시고 열반에 드셨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안심입명安心立命을 얻을 수 있게 하시니, 부처님 법을 믿고 따르는 우리들은 참으로 복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