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탁(연세대 명예교수, 철학 전공)
1.
범망경에서는 대승 수행자가 지켜야 하는 가치 덕목을 크게 넷으로 10항목씩 묶어, <10발취심>, <10장양심>, <10금강심>, <10지>를 단계별로 제시하고 있다. 필자는 4월호부터는 <10지>를 시작했다. 한국불교계의 대부분 독자는 화엄경을 통해서 <십지>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을 것이다. 이번 달에는 화엄경이 세상에 등장한 연대와 기존에 유행하던 불교 문헌을 본떠서 만든 범망경이 세상에 유통된 저간의 사정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해 두기로 한다. 이런 역사적 사정을 알게 되면, 범망경의 본문 이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2.
대승경전이 석가모니 살아 계실 적에 설해진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는 독자들도 처음은 아니실 것이다. 이런 연구 보고는 영국의 문헌학자에 의해 먼저 세상에 알려졌다. 서유럽에 의한 ‘근대’가 시작된 이래, 그들에 의하여 주도된 ‘근대적 연구’는 철학 및 역사를 비롯하여 과학과 기술 등 각 방면에서 눈부신 성과를 내었다. 그 과정에서 주변 지역을 경제적으로 침략하는 과정에서 ‘식민지’라는 전대미문의 약탈 범죄를 저질렀다. 영국의 인도 지배도 그렇고, 일본의 조선 점령도 그렇다. 세상은 ‘근대의 유럽’과 ‘유럽 아닌 지역’으로 양분되었다.
서유럽에서 시작한 근대적 연구는 불교문헌 연구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고대 문헌을 연구하는 새로운 안목과 방법을 열어 나아갔다. 그 결과 우리는 많은 걸 새롭게 알게 되었다. 불경을 그저 석가모니불의 친설親說로만 여기던 ‘믿음’도 자연과학처럼 이제는 경험적 증거와 논증의 대상이 되었다. 문헌의 역사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화엄경만 하더라도 긴 세월에 걸쳐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된 것임이 밝혀졌다. 문헌의 형성 역사로 보면, 화엄경 속에 들어 있는 「십지품」은 대승불교가 발흥하던 초기인 서기 1세기에서 2세기 사이에 독립된 경전으로 유통되었음이 확인된다. 선재동자의 구법 이야기가 나오는 「입법계품」도 이즈음에 세상에 유통된다. 이런저런 작은 이야기들을 모아 서기 3~4세기 무렵 중앙아시아의 우전(Khotan, 호탄) 지역을 중심으로 지금과 같은 대경大經이 편집되게 된다.
한문으로의 번역은 크게 세 번 이루어졌다. 처음은 동진 시절인 418년에서 420년 사이에 불타발타라가 번역한 것으로 모두 60권 본이다. 다음은 당나라 시절인 695년에서 699년에 걸쳐 실차난타에 의해 번역된 것으로 모두 80권이다. 마지막은 역시 당나라 시절인 795년에서 798년 사이에 반야가 번역한 40권이 있는데 이 번역은 「입법계품」만 번역했다.
기왕에 대승경전의 출현에 대해서 말했으니, 그러면 반야부에 속한 경전들은 언제 만들어졌을까? 이 방면의 연구에 따르면 도행반야경이 제일 일찍 세상에 출현했다고 하는데, 그 시기는 대개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후 1세기 사이일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 많이 독송되는 금강경은 서기 2~4세기경에, 그리고 반야심경은 서기 4~5세기경에 성립되었다고 한다. 그러면 범망경은 언제 만들어졌을까? 중국 지역에서 5세기경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현재 한국에서 읽고 있는 범망경은 구마라집鳩摩羅什 삼장법사께서 406년 번역했다고 하는데, 이는 역사적 사실은 아니다.
3.
범망경이 중국에서 5세기경에 만들어졌다면, 누가? 왜? 그리고 어떻게 만들었을까? 그런데, 대승경전 모두가 그렇듯이 만든 사람은 밝혀지지 않는다. 초기불교의 경전처럼 시작은 모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로 시작하여, 석가모니 부처님이 설한 것을 아난을 필두로 결집한 것처럼 형식이 일관되어 있다. 결국은 현존하는 범망경 내용을 분석하고, 그 속에서 이 경전이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는지 궁리하는 수밖에 없다. 이 궁리 과정에서 연구자들은 ① 화엄경의 보살사상, ② 4세기경에 만들어진 유가사지론에 나오는 대승불교의 계율 사상, ③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사분율 등 초기불교의 계율 사상, ④ 서기 2~3세기경에 만들어진 열반경의 불성 사상 등이, 범망경 속에 들어 있음을 주목하게 되었다.
그러면 기존에 이미 유행하는 경전들을 그냥 활용하면 되었지, 왜 범망경을 일부러 만들었을까? 이 점 역시 추측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필요했기 때문에 만들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 점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는 소위 성문승들의 율장, 즉 사분율에는 없고 범망경에만 있는 내용을 찾아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큰 것만 몇 가지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실제의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더라도 동기와 마음가짐을 중요하게 여기는 점, 둘째로 출가자와 재가자의 엄격한 구별보다는 좀 더 일반적 내지는 보편적 율법을 제시하는 점, 셋째로 유교적 효도 사상의 부각으로 중국의 전통 윤리와 친근성을 보여주는 점, 넷째는 율법을 지켜야 하는 당위적 근거를 공동체의 상호 약속에서 찾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인간 본성에서 왜 우리가 율법을 지켜야 하는지 그 이유를 밝히고 있는 점, 이런 점 등은 범망경의 율법 정신에만 있는 특별한 점이다. 이 중에서 필자는 넷째 점에 대해서 특별하게 관심을 보이면서 『월간 붓다』 독자님들에게 소개해 왔다.
4.
이중 특히 초기경전인 사분율에는 없고 범망경에만 있는 넷째 점에 주목하면서, 작금에 일고 있는 ‘미국-이란의 전쟁’ 상황을 보자. 사분율의 대부분은 승가 공동체 구성원들의 약속으로 율장의 각 조문이 상황 따라 만들어진다. 살생이나 도적질 등 인류 역사의 보편적 금기 사항 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불교라는 특수한 출가자 집단의 집단생활 내에서 지켜야 할 규칙들이다. 문제가 생기면, 갈등 상황이 생기면, 사후적으로 합의하여 규칙을 만들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인도 석가모니 당시의 공동체에서는 평등의 원칙에서 각종 규칙을 합의하여 제정해갔다.
그런데 현대에 들어 국제 사회의 약속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한 가지 사례로 질문을 던져보자. 어떤 국가는 핵무기를 제작하여 자국의 방위에 사용해도 되고, 어떤 국가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가? 먼저 만든 나라들이 핵무기의 위험성을 공감하고 더 이상의 확산은 막자는 것이 고작이다. 거기에 무슨 합리성이 있는가?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국가의 이익이고, 그 이익을 담보하는 것은 ‘힘’이 작용할 뿐이다. 그 힘에는 무력에 기반한 자원을 포함한 금융·기술·문화 등이 그 ‘힘’을 지탱하고 있다. 설사 약속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힘 가진 자들끼리의 합의이다. 시공을 초월하는 보편성은 턱없이 떨어진다.
초기불교의 율법도 그들끼리의 약속이다. 물론 위에서 필자도 언급했지만, 불교에서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평등과 전체 합의라는 원칙을 철저히 지켰다. 또 상대가 동의하지 않으면 강제하지도 않았다. 즉, ‘공동체 밖’의 행동 공간도 인정했고, 때로는 그 공간을 나누어 따로 사는 소위 ‘별주別住’의 예외도 인정되었다.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보편적 기준이랄지, 혹은 절대적 기준이랄지, 그런 기준이 필요했다. 필자는 감히 말한다. 범망경은 그런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고 말이다.
『월간 붓다』 4월호에서는 범망경에서 제시하는 총 십지 중에서, 제1지인 ① 평등지平等地와 관련하여 소개했다. 거기에서 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 경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첫째로 자신에게 원천적으로 갖추어진 불성佛性, 화엄의 용어로 말하면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을 체험하는 일이다.” 범망경의 <제1지, 평등지>에서는 누구나 사람이라면 ‘일체를 평등하게 보고 행동하는 지혜’를 간직하고 있는데, 그런 점에 있어서는 모든 사람이 부처님과 똑같다. 즉 모든 생명체는 불성佛性을 간직한 평등한 존재이다. 윤리 도덕의 시작은 바로 이점을 돈오頓悟하는 행위에서 시작한다. 불성에 대한 자기 체험에 바탕을 두고, 각종 어리석음을 부단히 제거하는 노력 과정에서 각종 윤리 덕목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나’의 영원성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자신과 타인은 물론 만물이 본질적으로 평등함을 체험하여 동체대비同體大悲의 마음을 가지게 한다.
물론 범망경에서 제시하는 대안이 보편적 기준인지에 대해서는 논의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행위의 정당성을 상호 약속에서 찾으려는 규약주의(Conventionalism)의 한계를 넘어서서 그 대안을 마련하려는 점이 필자에게는 보인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류 역사의 길고도 중요한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인생과 가치에 대한 원초적인 물음을 회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