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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치유와 오감五感 자원

홍성범
숲해설가



산림치유는 노력의 결과라기보다 반응에 가깝다. 숲이 가진 다양한 자원이 먼저 작용하고, 우리 몸과 마음은 그에 조용히 응답한다. 눈과 귀, 코와 피부가 먼저 열리고, 그 다음으로 호흡과 심박, 감정과 생각이 천천히 변해간다. 산림치유는 숲과 인체가 서로 주고받는 대화에 가깝다.
산림치유란 단순히 숲을 걷는 행위를 넘어, 숲이 가진 무궁무진한 자원들이 우리의 오감과 세포 하나하나를 어루만지는 섬세한 과정이다. 숲이 차려놓은 이 풍성하고도 거대한 치유의 자원들을 음미해 보자.
​숲은 거대한 미술관이자 공연장이며, 동시에 세상에서 가장 안락한 휴식처다. 우리 몸의 감각기관은 숲에 들어서는 순간 본능적으로 깨어나 자연의 에너지를 받아들인다. 일상에서 무뎌졌던 감각들이 숲이라는 공간 안에서 다시금 예민하게 살아나는 과정 자체가 치유의 시작이다.
숲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활성화되는 것은 시각자원이다. 초록색이 주는 안정감은 단순한 기분 문제가 아니다. 숲의 색과 형태를 바라보는 동안 뇌의 긴장과 각성을 담당하는 영역은 활동을 낮추고, 휴식과 회복에 관여하는 영역이 활성화된다. 그래서 숲을 걷다 보면 이마의 주름이 펴지고, 눈의 피로가 줄어든다. 실제로 숲을 바라보고 난 뒤 “눈이 시원하다”거나 “머리가 맑아졌다”고 말하는 것은 몸이 이미 반응하고 있다는 신호다.
숲의 지배적인 색채인 녹색은 단순히 아름다운 것에 그치지 않는다. 녹색은 눈의 망막에 가해지는 부담이 가장 적은 색으로, 심리적으로 가장 깊은 안정감을 주는 색이다. 나뭇잎 사이로 부서지는 햇살, 이른바 ‘코모레비(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와 층층이 쌓인 초록의 계조는 뇌의 알파파를 활성화해 평온함을 유도한다. 특히 나뭇가지의 뻗어 나감이나 잎사귀의 맥, 눈 결정 등에서 발견되는 ‘프랙탈 구조’는 규칙적이면서도 자유로운 기하학적 형상을 띠는데, 우리 뇌는 이 구조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고 인지적 피로를 해소한다. 사계절에 따라 변하는 단풍의 붉은빛이나 겨울 숲의 은밀한 회색빛 역시 우리 정서에 다양한 자극을 주며 활력을 불어넣는다.
미국의 학자 울리히는 자연경관이 수술환자의 회복과정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였는데, 창밖으로 자연경관이 보이는 병실에 있는 환자들이 도시풍경이 내려다보이는 병실의 환자들에 비해 회복기간이 짧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리고 자연경관이 보이는 환자집단은 수술 후 통증 관리를 위해 사용한 진통제의 양도 적었다는 사실을 검증하면서 자연경관을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완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산림의 경관은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을 주며, 심신을 안정한 상태로 회복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도 증명되었다.
우리의 눈은 초록색을 볼 때 피로를 가장 적게 느낀다고 한다. 교실의 칠판이나 탁구대, 당구대의 바닥을 초록색으로 만드는 것도 눈의 피로를 최대한 줄이기 위한 것이다.
우리의 시야에 들어오는 초록색의 비율을 나타내는 녹시율이 높을수록 스트레스의 회복력이 좋다는 것은 검증된 연구결과이다. 숲을 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 등 부정적 반응이 빠르게 회복되는 이유다.
후각자원은 더욱 직접적으로 인체에 작용한다. 숲에서 나는 향, 특히 피톤치드가 섞인 공기를 들이마시면 코의 후각 신경을 통해 뇌의 변연계가 자극된다. 이 영역은 감정과 자율신경계를 조절하는 곳이다. 그 결과 교감신경의 과도한 긴장은 완화되고,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어 심박수와 혈압이 서서히 낮아진다. 그래서 숲에서는 숨이 깊어지고, 가슴이 편안해진다. 의식적으로 “쉬어야지”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몸이 먼저 휴식 상태로 들어간다. 숲이 건네는 가장 즉각적인 위로다.
흙이 머금은 습한 기운과 야생화의 은은한 향기, 그리고 숲 전체를 감싸는 나무들의 체취, 그 자체로 천연 아로마테라피다. 비 온 뒤 숲에서 느껴지는 진한 흙 내음은 ‘게오스민’이라는 물질 덕분인데, 이는 인간에게 태고의 안정감을 선사한다. 이러한 향기 입자들은 인위적인 향수로는 결코 흉내 낼 수 없다. 숲의 향기는 지친 정신을 맑게 깨우는 천연 향료다.
청각자원 역시 인체 반응과 깊이 연결된다. 청각의 반응속도는 0.1초로 인체 중 가장 먼저 반응하는 감각기관이다.
청각은 듣는 기능 외에도 아주 정교하고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데, 소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얼마나 떨어진 곳에서 왔는지도 판단하고 그 소리들을 분석하여 구별하는 역할도 한다. 이러한 기능 때문에 사람들은 청각을 통해 즐거움과 감흥, 그리고 만족감을 느낀다.
그러나 현대인은 각종 소음에 노출되어 스트레스뿐만 아니라 예민한 청각 기능이 저하되고 있다. 숲에서는 자연스럽게 외부의 소음이 차단되어 심신이 안정화된다. 숲이 전해주는 일정하지 않은 자연의 소리는 뇌를 경계 상태로 몰아가지 않는다. 바람 소리와 새소리를 듣는 동안 뇌파는 각성 상태에서 이완 상태로 이동하고, 생각의 속도는 자연스럽게 느려진다. 숲에서 ‘생각이 줄어든다’거나 ‘잡념이 사라진다’고 느끼는 이유는 뇌가 자연의 소리를 위협으로 인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청각자원은 숲이 들려주는 가장 고귀한 음악이다. 도심의 자동차 경적이나 기계음과는 차원이 다르다. 바람이 댓잎을 스치는 소리, 이름 모를 산새들의 지저귐, 바위 사이를 거칠게 혹은 부드럽게 흐르는 계곡물 소리는 인위적인 리듬이 없는 자연의 ‘백색소음(White Noise)’이다. 이 소리들은 일상의 소음으로 날카로워진 신경을 부드럽게 이완시킨다. 특히 물소리와 새소리는 인간의 뇌파를 명상 상태와 유사하게 만들어 준다. 가만히 눈을 감고 숲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마음속 깊은 곳에 쌓였던 불안감과 잡념이 맑은 계곡물에 씻겨 내려가는 해방감을 맛보게 된다.
촉각은 피부에 접촉하여 느껴지는 감각으로 압각, 통각, 온도감각 등을 말하는데, 다른 감각에 의해 이미 먼저 수집된 정보 뒤에 늦게 반응하는 특성상 숲에서 촉각자원을 오롯이 느끼기 위해서는 눈을 감는 등 다른 감각 기능을 차단하는 게 좋다.
촉각자원은 우리를 대지와 직접 연결하여 몸의 존재감을 회복시킨다. 흙길을 밟고, 나무를 만지는 동안 피부와 발바닥의 감각 수용체가 활성화된다. 수많은 신경을 자극해 혈액순환을 돕고 몸의 긴장을 풀어준다. 이끼의 부드러움이나 나무껍질의 거친 질감을 손끝으로 느껴보는 것은 단절되었던 자연과의 유대감을 회복하는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실제로 숲에서 맨발 걷기나 나무 만지기 활동 후 참가자들은 “몸이 여기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표현한다. 이는 몸과 마음이 분리된 상태에서 다시 하나로 연결되고 있다는 신호다.
숲속에서 느끼는 촉감 활동은 아이들의 오감 발달의 가장 좋은 활동이다.
미각은 주로 혀에 있는 맛봉오리(taste bud)가 침에 녹은 화학 물질에 반응하여 일어난다. 단맛, 짠맛, 신맛, 쓴맛의 네 가지 기본 미각이 있다.
숲의 미각자원 또한 인체 반응과 무관하지 않다. 자연의 담백한 맛을 천천히 음미하는 행위는 저작과 소화를 담당하는 부교감신경을 자극한다. 급하게 먹던 습관이 느려지고, 식사 자체가 안정의 경험이 된다. 숲에서의 ‘맛’은 몸의 속도를 낮추는 장치다.
숲이 내어주는 맑은 샘물 한 모금, 제철에 난 산나물이나 향긋한 꽃차 한 잔은 몸 안의 독소를 씻어내고 자연의 생명력을 전해주는 치유로 완성된다.
지금 숲으로 가 보자. 그 어느 계절보다 오감을 맘껏 즐길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