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길 김경호
한국사경연구회 회장
수보리여, 어떤 선남자·선녀인이 아침에 항하수의 모래알처럼 많은 몸으로 보시하고, 낮에도 역시 항하수의 모래알처럼 많은 몸으로 보시하고, 저녁에도 역시 항하수의 모래알처럼 많은 몸을 보시한다고 하자. 이같이 한량없는 백천만억 겁 동안 보시할지라도, 어떤 사람 이 경전을 보고 믿는 마음으로 거스르지 않으면, 이 복덕이 앞서 말한 사람의 복덕보다 나을 것이니라. 하물며 이 경을 사경하고, 수지·독송하고, 다른 사람에게 설해주는 사람에게 있어서이랴.
須菩提 若有 善男子善女人 初日分 以恒河沙等身
수보리 약유 선남자선녀인 초일분 이항하사등신
布施 中日分 復以恒河沙等身 布施 如是無量百千
보시 중일분 부이항하사등신 보시 여시무량백천
萬億劫 以身布施 若復有人 聞此經典 信心不逆
만억겁 이신보시 약부유인 문차경전 신심불역
其福 勝彼 何況書寫受持讀誦 爲人解說
기복 승피 하황서사수지독송 위인해설
<금강경>의 한 구절입니다. 수많은 대승경전에서는 이와 같이 사경의 공덕과 공능, 중요성과 가치에 대해 무수히 설하고 있습니다.
사경은 불교의 전법과 그 맥을 같이 합니다. 이는 부처님 진리의 광선유포(廣宣流布)에 다름 아닙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무리 위대하다고 해도 널리 전파되어 많은 중생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면 그 빛이 바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사경의 중요성이 대두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분명히 알고 이를 이웃에 널리 전하는 일이야말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으로 옮기는 가장 중차대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경의 공덕은 다른 그 어떤 보시보다도 수승한 공덕이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공덕은 부처님께 나아가는 지름길입니다. 즉 빛이 반사되어 자신을 비추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광선유포의 공덕을 쌓는 사경의 과정은 개인적인 수행의 과정입니다.
부처님께서 최상의 진리를 깨달으신 후 보여주신 구체적인 실천은 바로 육바라밀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시 되는 내용이 보시입니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후 행하신 45년간의 설법이 다름 아닌 보시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항목들은 부처님 개인에 국한되는 성격을 지니지만 보시는 그렇지 않습니다.
부처님이 부처님인 이유는 평생 보시를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보시는 재보시와, 법보시, 무외보시로 나뉘는데 사경수행은 이 세 가지 방법을 모두 포함합니다. 경전을 보시하는 일은 재보시요, 경전의 내용을 널리 전하는 일은 법보시며 경전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행하는 일은 무외보시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사경수행을 통해 부처님의 말씀을 깊이 수용함에 근본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한 점에서 사경수행은 간경수행을 보다 심화시킨 수행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경수행은 느림의 미학을 기저에 두고 부처님께서 설하신 진리의 말씀을 내면에 가장 깊이 되비춰 깨달음으로 연결시킴으로써 부처님의 지혜를 얻고 실천하는 수행법이기 때문입니다.
즉 사경수행의 과정은 자신의 마음자리를 맑히고 자신의 내면에 늘 함께 하는 부처님의 혜명을 밝히며 우주 법계를 몸과 마음으로 체득하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요와 평안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경수행의 과정은 곧 선정이며, 사경수행을 통한 선정의 지속은 부처님의 길로 나아가는 인욕과 정진의 과정입니다. 그 결과 지혜의 등불이 마음속에 밝혀지게 됩니다. 이러한 사경수행의 전 과정은 몸과 마음의 청정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그 효과를 얻을 수 없는데 이는 다름 아닌 지계입니다.
이와 같이 사경수행은 육바라밀을 생활 속에서 구현하는 수행법입니다.
『사경(寫經)을 하는 법은, 닥나무 뿌리에 향수를 뿌려 생장(生長)시키며 닥나무가 다 자란 연후에는 닥 껍질을 벗기는 자나 연마하는 자나 종이를 만드는 자나 사경을 하는 자나 표지와 변상도(變相圖)를 그리는 자, 표구(表具)를 하는 자, 심부름을 하는 자 모두 보살계(菩薩戒)를 받아야 하며 재식(齋食, 음식을 청결히 가려 먹음)해야 하며 위의 사람들이 만약 대소변을 보거나 누워 자거나 음식을 먹거나 했을 때에는 향수로 목욕을 한 연후라야 사경하는 곳에 나아간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사경, 신라 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754-755년) 사성기에 나오는 글입니다. 이 글은 우리 선조들이 어떠한 몸가짐과 마음가짐으로 사경수행에 임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경에 참여하는 심부름 하는 자까지도 보살계를 받아야만 했고, 심지어는 닥나무를 향수로 재배하였음을 통해 사경의 전 과정에서 얼마만한 청정과 정성을 추구하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정성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겠다는 굳은 서원에 다름 아닙니다. 이러한 마음이 바로 가장 순수한 초발심의 마음이자 가장 청정한 본래면목입니다.
즉 사경수행을 시작하고자 하는 그 자리가 이미 모든 부처님의 마음자리인 것입니다. 이 마음자리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이를 생활화하는 것이 사경수행입니다.
흔히 불교를 깨달음의 종교라 합니다. 그러면 깨달음의 내용은 무엇이며 깨달음을 얻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먼저 살펴보아야 합니다. 즉 목적을 분명하게 알면 그에 따른 목표가 설정이 되고 그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노력을 하게 됩니다.
본래 수행이라는 것은 그리 대단한 것도 신비로운 것도 아닌 우리의 일상생활 그 자체입니다. 이것이 모든 수행의 현재성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은 바로 이것입니다. 즉 ‘현재에 충실하라. 현재 그 자체가 되어라.’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처님의 진의를 제대로 얻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먼 세계의 이야기입니다.
어떠한 경계에서도 흔들림이 없는 부동심의 고요하고 청정하면서 평등한 본래면목을 바로 보고〔修〕, 이를 토대로 행동하는 것〔行〕이 바로 수행입니다. 이러한 수행의 요체는 부처님 말씀 속에 오롯이 드러나 있습니다.
따라서 사경수행을 통해 피아(彼我)의 차별이 없는 본래면목을 바로 보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 사경수행의 핵심입니다. 매일 아침, 하루를 시작하면서 짧은 시간이나마 사경수행을 통해 삶의 참된 의미를 바로 보고 행복한 순간들을 영원 속에 갈무리 하여 진리의 품 안에서 만유가 함께 노닐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