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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포교, 다함께 생각해봅시다

이준호
레드컴씨앤씨 기획팀장
이벤트 기획자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불교계 한쪽에서는 청소년포교에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부터 조계종을 비롯한 많은 종단에서는 청소년포교에 노력을 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필자가 생각 할 때는 아직도 갈 길이 먼 것 같습니다.

지난 5월 4일 종로에서는 장엄등의 행렬이 넘쳤습니다. 시민과 외국인, 불자들 할 것 없이 모두 함께 모여 축제의 장을 펼쳤습니다. 보는 사람은 장엄등이 신기해서, 행진하는 사람은 주인공이라는 자부심에서, 참 열심히 했습니다.
이렇듯 수많은 인원이 참여하는 행사에 왜 이렇게도 청소년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든지 모르겠습니다. 다시 말해서 수 만 명이 참여했지만 청소년들의 모습은 고작 1/10 정도 밖에 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청소년 포교와 문화에 대해서 몇 마디 적어 볼까 합니다.


청소년포교 20년을 노력해야 결실 볼 것
청소년 포교는 20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어릴 적에 불교를 인식하고 청소년 때에는 인생의 선생님으로 삼고, 아울러 성인이 되어서 자발적으로 불교를 찾도록 하는데 까지 20년이 걸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20년 동안 속된 말로 투자되는 돈은 한없이 많은데 그 효과는 별로 피부에 닿지를 않는다는 이유로 20년을 지속적으로 청소년포교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애쓰시는 스님 또는 종단관계자들을 찾기가 힘듭니다. 그나마 인식 있는 스님들에 의해 각종 어린이 불교교실이나 자연체험, 문화지킴이 등의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고, 학생들을 위한 댄스연습장, 학습방 등의 역할을 하는 사찰도 늘어나고 있지만, 이웃종교에 비해서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이 우리 불교의 현실입니다.
어린이와 청소년은 20년 뒤 우리의 사회를 주도해나갈 주인공입니다. 그래서 청소년 포교의 현실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걱정이 앞섭니다.


불교는 절대 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차츰 불교인구가 늘어날 것이다?
몇 몇 불자들을 만나보면 이런 말씀을 하곤 합니다. ‘불교는 절대 망하지 않아!’, ‘오히려 타종교에 회의를 느낀 사람들이 갈수록 불교로 찾아 올거야!’라고 말이죠. 그런데 왜 필자는 그런 말이 틀렸다는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를 들자면 이렇습니다. 필자의 나이는 36세인데 친구들 중 절반 이상이 타 종교인이며, 불교는 고작해야 1/3 수준입니다. 그런데 나이가 어릴수록 이 수치는 더 낮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오히려 불교에 다니면 친구들로부터 이상한 눈총을 받기까지 한답니다. 왜 그런가 하니 타 종교인들은 집근처에 재미있는 프로그램으로, 더 나아가 튼튼한 예산을 무기로 적극적인 선교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중학교, 고등학교 등 위로 올라갈수록 그 연대는 더욱 돈독해지고, 각종 여행과 자원봉사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무조건 종교적인 이유보다도 어린 친구들과 청소년들은 또래들과 즐기기 위해서라도 타 종교를 많이 찾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청소년포교 예산 겨우 현상유지에 급급!
불교의 대표적인 청소년단체로는 어떤 곳이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참 부끄러웠습니다.
전국에 수 백 곳에 대형사찰이 있고, 수 천 년을 이어온 전통사찰들이 즐비하지만, 이렇다 할 청소년 단체는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이 우리 불교의 현실입니다. 필자는 어릴 적에 이런 생각을 해보았었습니다. 불교는 왜 청년회와 청년법회인데도 아저씨들이 많을까? 지금도 불교청년회가 많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대학생불교연합회인 대불련을 제외하고, 모든 청년회는 소위 30대 이상, 40대까지도 활동하는 곳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청소년불교단체로는 어떤 곳이 있을까요?
딱 두 곳이 떠올랐습니다. 파라미타청소년협회와 비로자나청소년협회입니다. 그나마 인터넷이나 부처님오신날에 즈음해서 다양한 행사를 하기에 기억하는 것 같습니다. 나머지 단체는 솔직히 무슨 활동을 하는지, 인원은 어떻게 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대표적인 단체도 예산이 그렇게 넉넉하지가 못하다고 합니다. 특히 파라미타의 경우에는 현상유지에도 급급한 실정입니다. 참 뭐라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밀려오기까지 합니다.


청소년에 맞는 프로그램 운영과 예산확대가 해답입니다.
필자가 20년 전부터 들어오던 말이 있습니다. 바로 ‘불교에는 인재가 없다, 인재를 키워도 다른 곳으로 다 가버린다’는 말입니다.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1년, 1년, 해가 지날수록 그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예산문제인 것 같습니다.
청소년 포교에 뜻을 두고 애쓰는 일반 재가자들이 예산의 한계에 부딪혀 결국 자기의 생활을 위해 포기하는 사례를 수 십 차례 보아왔습니다. 게다가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혀 불교를 위해 일을 할 정도가 되면 예산문제를 이유로 지원을 중단하고, 심지어 어린이법회, 청소년법회를 아예 없애버리는 경우도 허다하게 보아왔습니다. 그 사례는 필자가 고등학교 재학시절 서울에서도 꽤 유명하고 불자들이 많았던 사찰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하루아침에 없애버리는 경우를 목격해야 했습니다. 어린 마음에 참 상처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옆 사찰에 다니며 마음을 잡았지만, 그 때 헤어진 50여명의 법우들 중 현재 연락되는 법우는 딱 1명뿐입니다. 이것이 현재 우리 불교의 청소년 현실입니다.

사찰법회의 98%가 50대 이상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30~40대를 찾아보기 힘든 사찰도 많습니다. 거기에 청소년과 어린이의 비율은 표현하지도 못할 지경입니다. 물론 어린이와 청소년 법회가 더욱 활성화되어가는 사찰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봅시다. 전국 수 천 곳의 사찰 중 과연 이러한 사찰이 얼마나 되는지를…. 그리고 어린이법회, 학생법회, 청년법회, 대학생법회 등 나이와 눈높이에 맞는 프로그램으로 운영되는 법회는 또한 얼마나 있는지를….

국민 전체로 보면 불교인구가 가장 많다지만, 이미 청치권이나 연예계, 스포츠계 등 특정 계층과 집단의 종교비율은 개신교가 월등히 앞서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이들 집단과 계층에서 자신이 불교신자라는 이유로 피해를 보거나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이제 우리도 생각을 바꿉시다. 그리고 조금만 더 노력합시다! 조금만 더 투자합시다! 자신의 복 보다는 우리 희망의 복을 위해!
현재의 불자관리도 중요하지만 미래의 불자들을 위해 조금만 더 생각을 바꿉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