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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연기와 4성제의 관계

이중표
전남대 철학과 교수


지난달에는 『쌍윳따 니까야』를 통해 부처님께서 12연기를 깨닫는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그 경전에는 부처님께서 노사(老死)의 조건을 사유하는 과정에 무명(無明)과 행(行)이 빠져있습니다. 즉 노사의 조건을 사유하시다가 식(識)에 이르러 식이 명색(名色)에 의존하고 있음을 깨닫고 다음과 같이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식은 명색으로 되돌아가 그 이상 가지 못한다. 이제까지 늙게 되거나, 태어나게 되거나, 죽게 되거나, 쇠락하게 되거나,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명색에 의존하고 있는 이 식이다. 식을 의지하여 명색이 있고, 명색을 의지하여 육입(六入)이 있으며, 육입을 의지하여 촉(觸)이 있고 … 이와 같이 오로지 괴로움인 온(蘊)의 집(集)이 있다.”


이와 같이 부처님께서는 생로병사를 겪고 있는 것이 명색에 의존하고 있는 식(識)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처님께서는 12연기를 깨달은 것이 아니라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경 속에 12연기의 무명(無明)과 행(行)이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들어있습니다. 무명이란 무지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생로병사의 괴로움을 겪고 있는 실체적 자아가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생로병사를 겪고 있는 실체적 자아는 존재하지 않고 명색에 의존하고 있는 식(識)에 의지하여 생로병사의 괴로움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무명은 이러한 사실에 대한 무지를 의미합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은 것은 생사의 괴로움을 겪고 있는 자아는 존재하지 않고, 명색에 의지하고 있는 식(識), 즉 허망한 분별심에 의해 생로병사의 괴로움이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無明] 허망한 식을 자아로 집착하고 살아가면[行] 그 식(識)을 조건으로 생사의 괴로움은 끝없이 이어질 것입니다. 이것이 무명에서 시작되는 12연기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알아서 바르게 살아가면 열반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 정견(正見)에서 시작되는 8정도입니다.

이와 같이 12연기설은 4성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4성제는 12연기설로 되어있습니다. 12연기설은 단순히 12개의 지분으로 구성된 이론이 아닙니다. 12연기는 우리도 부처님처럼 생사의 근원을 바르게 알아 그것을 소멸하도록 하기 위해 설해진 것입니다.

즉 12연기에 대한 역관(逆觀)과 순관(順觀)을 통해 생사의 괴로움 속을 유전하는 삶과 생사의 괴로움에서 벗어나 열반에 이르는 삶을 여실하게 깨닫게 하기 위한 부처님이 가르침입니다.
따라서 12연기설은 유전문과 환멸문이라는 두 측면에서 관찰해야 하며, 윤전문과 환멸문을 관찰하는 방법에는 노사(老死)에서 출발하여 무명(無明)에 도달하는 역순의 관찰법인 역관과 순서대로 무명(無明)에서 시작하여 노사(老死)에 도달하는 관찰법인 순관이 있습니다. 4성제는 이러한 12연기의 유전문과 환멸문에 대한 역관과 순관이라는 두 가지 관찰법을 통해 깨닫게 되는 진리입니다. 이들의 관계를 간단히 요약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고성제
 - 12연기의 유전문(流轉門)에 대한 역관(逆觀)
집성제
 - 12연기의 유전문(流轉門)에 대한 순관(順觀)
멸성제
 - 12연기의 환멸문(還滅門)에 대한 역관(逆觀)
도성제
 - 12연기의 환멸문(還滅門)에 대한 순관(順觀)
 - 8정도(正道)


12연기의 유전문은 무명(無明)을 조건으로 행(行)이 있고 내지 노사(老死)가 있다는 것이고, 환멸문은 무명(無明)이 멸하면 행(行)이 멸하고 내지 노사(老死)가 멸한다는 것입니다. 즉 무명에서 노사가 연기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유전문이고, 무명이 사라지면 노사의 괴로움도 사라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환멸문입니다.
유전문의 역관은 우리의 현실에서 출발합니다. 우리는 늙어 죽습니다. 이것은 괴로움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이러한 괴로움에 처해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왜 이러한 괴로움이 있게 되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노사의 괴로움은 왜 있게 되었을까? 이렇게 물음으로써 우리는 노사의 조건이 생(生)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태어남이 노사의 조건이라면 태어남도 괴로움입니다.

이러한 태어남은 왜 있게 되었을까? 이렇게 괴로움의 조건이 되는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 유전문의 역관입니다. 이러한 역관을 통해서 우리는 노사의 괴로움이 나타나는 과정 속에 있는 모든 조건들, 즉 무명에서 노사에 이르는 12연기의 모든 요소들이 괴로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괴로움의 실상을 아는 것이 고성제입니다.

유전문의 순관은 역관을 통해 괴로움의 근원이 드러난 후에 그 근원, 즉 무명에서 순서대로 노사의 괴로움이 연기하는 과정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노사의 괴로움이 명색(名色)을 의존하고 있는 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無明], 우리는 식(識)을 자아로 집착하는 삶[行]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삶이 조건이 되어 식(識)이 있게 되고, 식이 조건이 되어 명색(名色)이 있게 되고, 결국 노사의 괴로움이 나타나게 된다는 사실을 유전문의 순관을 통해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앞에 인용한 경전에서는 ‘노사(老死)가 있다’고 하지 않고 ‘온(蘊)의 집(集)이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온(蘊)의 집(集)’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온(蘊)은 빠알리어로는 ‘khandha’로서 ‘덩어리’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집(集)은 ‘samudaya’를 번역한 말로서 ‘모여서 나타난다’는 의미로서 집기(集起)라고도 합니다. 그러니까 온(蘊)은 무엇인가가 모여서 나타난 덩어리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온(蘊)에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 이렇게 다섯 가지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반야심경에서 이야기하는 오온(五蘊)이 바로 괴로움인 온(蘊)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 경에서 이야기하는 온(蘊)의 집(集)이란 오온(五蘊)의 집기(集起)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12연기설은 오온(五蘊)이 모여 나타나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12연기의 과정을 통해 오온(五蘊)이 집기(集起)하는 것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