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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재활의 길에서 나를 세우는 이

조윤경
영등포장애인복지관


다사다난했던 2011년을 뒤로 하고 또 다른 도전을 시작한 곳이 있습니다. 아직 6개월도 채 되지 않은 짧은 기간이지만 나의 삶과 열정을 묻어나게 만들어 주는 곳. 바로 서울시립영등포장애인복지관입니다.
이전에는 “참 깨끗하고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이 잘 되어 있는 곳이구나”라고 생각했던 복지관에 입사하여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어 설레임과 뿌듯함으로 하루하루를 즐기며 근무하고 있습니다.
저희 복지관은 올해로 개관 5주년을 앞두고 있으며, 해왔던 일들보다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더 많은 곳입니다. 다행스럽게 2012년부터 홍법문화복지법인(대표운영사찰 구룡사)에서 큰 도움을 주시어 장애인분들이 행복해 질 수 있는 복지관으로 거듭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습니다.
흔히들 말합니다. ‘장애인복지관’에 몸담고 있다고 하면 소외된 저소득 장애인을 위해 땀방울을 흘리며 고생한다고 말입니다. 그 어느 누구보다도 즐겁게 일하고 있는데 이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부끄러운 마음과 장애인복지관에 대한 대부분 사람들의 인식의 차이를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차이를 설명할 기회가 없었는데 구룡사와의 큰 인연으로 1996년도 강동구 명일동의 한 장애인복지관에서부터가 시작이었으니 꽤 긴 여정이기도 하다.
눈 오는 강동에서 시작하여 물 많은 영등포에 안착하기까지 십 수 년을 장애인복지 분야에서도 직업재활에만 빠져있던 내가 외골수로 보일수도 있겠다.
누군가 왜 이 일을 계속하냐고 물어올 때 노동현장과 거친 활동이 적성에 맞는다기보다는 ‘직업’이라는 매개로 변화되어 가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나를 되 서게 하고 제대로 일어나 걷게 하는 원동력이기에 한 길에 있었다고 둘러대고 있다. 
붓다지를 빌어 지금도 내 가슴을 울리는 장애인분들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조계종과 구룡사, 영등포장애인복지관이 인연이 되며 만난 이들, 이 작은 이야기가 여러분의   가슴에 공감으로 안착되기를 바래본다.
에피소드 1. 시끄러운 엄마와 말없는 아들, 외면할 수 없는 지적장애인 모자 이야기


원래 복지관의 상담실이란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한 첫 관문으로 직업재활팀에서는 구직욕구 상담과 직업능력평가, 사회성진단을 하고 있기에 통상 조용하고 진지한 분위기가 다반사이다.
그런데 이날은 아들을 제외한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가 각자 자기 이야기를 떠들어 대느라 정신이 없다. 아들은 모자를 푹 눌러 쓴 채 감은 척 하는 눈도 보이기 싫어한다.


‘이집안 … 뭔가 있다…. 재활계획수립이고 뭐고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듣자.’
듣자하니 50년의 이야기가 절절하다.
모자는 영등포 지역 지하방에 살고 노부모는 한 시간 거리에 따로 살고 있다.
시끄러운 엄마는 지적장애인이었다. 아들이 태어난 날 잠시 지방에 다녀오겠다며 영영 사라져 버린 남편대신 아들에 집착하며, 한시도 떨어져 있을 수가 없어 아들의 복지관 직업훈련도 반대하고 취업이라도 보낼라하면 눈물이 나 울고불고 떼쓰며 팔순 노모를 괴롭힌다.
취업평가를 위해 달랑 1주일 다녀보자는 것도 3일로 줄여달라며 ‘○○이 없으면 나 죽어, 우리 애기 낳고 우린, 우리밖에 없어, 한번만 봐줘….’ 아이처럼 우신다.
아들도 경증 지적장애인이다. 간혹 친구도 만나고 돈도 벌어 여자 친구도 만나고 싶지만 우는 엄마를 혼자 둘 수 없고, 늘 눈치가 보여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게 꿈꾸지 않는, 말수 없는 아이로 25년을 살았다. 엄마와 함께 새벽녘 잠들어 낮 두시나 되어야 일어나는 생활이다 보니 삶이 정상적일 수 없다.
팔십이 넘은 할아버지는 택시운전으로 근근이 생활비를 대 주지만 철없는 딸은 하루에 다써버리고, 그 누추한 집을 얻어주는 데 진 빚 걱정에 도깨비 집 같은 집 청소를 해주러 갈 때마다 억장이 무너지신다.


상담이라고 시작했는데…. 어찌할까.
상담을 했으면 지원계획을 세우고 대안을 제시해야하는 게 당연 직업재활사의 역할인데...참 많이도 얽혀있다.
이젠 죽을 날 받아놓고 기력이 없다는 할머니의 지친 얼굴이 딱 이 모자의 모습 같아 쉬 넘길 수 없었다.


직업재활팀 독수리 5형제(훈련, 취업, 평가 등 담당하는 직원이 5명이다)를 띄었다. 늦게 일어나는 습관이 평생 배어 있는 아들 김○○씨를 위해 오후에 출근하는 일자리를 구하고, 사람이 무서워 복지관 노래교실도 못 오겠다는 엄마를 간곡히 유혹해 집 밖으로 나오기로 했다. 주민자치센터, 구청과 연결해 대출금 및 생활자금지원을 협의하고 복지관 지역복지팀과 연결해 일단 쌀 등 생필품을 지원했다.
그제서야 엄마는 마음을 연다. 직업재활팀 독수리 5형제의 최종 목표는 세상 밑으로 피하기만 하는 엄마에게 직업을 갖게 하는 것이다. 아들과 거리두기, 세상으로의 첫발을 떼기가 퍽 두려운 그녀이나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은 이후 포기한 그녀의 삶을 찾는데 반드시 최선을 다하고 싶다.
그것이 집착하는 엄마를 보는 아들의 지친 눈과, 그 아들을 보는 엄마의 사랑이 어긋나지 않게  지켜주는 것임을 믿는다. 하여 오늘도 전화를 건다.


“○○어머니, ○○씨 낼 모레 훈련평가 시작하는 거 아시죠?”
“ 응, 알지~, 근데 나두 가믄 안 돼? 우리 애기랑 조용히 앉아 있음 되잖아~ 하란대로 방청소도 했어~ ”


어찌 한숨에 해결 되겠는가. 긴 숨이 걸려도 이 귀여운 여인이 세상과 소통하는 걸 볼 때까지 오래도록 함께하고 싶다.


에피소드 2. 미싱의 날개를 달다, 보리공방


영등포장애인복지관에 공업용 재봉틀, 다시 말해 ‘미싱’ 10대가 들어왔다.
더불어 색색의 실타래며 현장용어로 오바로크, 인터로크, 아이롱기계, 기증받은 원단들까지 켜켜히 쌓아놓고 보니 제법 공방 모양이 난다. 모든 게 새것이고 기계향이 나던 공방은 이젠 한쪽엔 도시락이며 집에서 싸온 과일도 보이고 수다소리에 사람 냄새가 난다. 특히 재봉틀 위에 수북한 천 조각과 드르륵 드르륵 능숙하게 넘어가는 재봉 소리를 들을 때면 이 공방 문턱을 많이도 드나들었구나 상상하게 된다.
우리 듬직한 담당자, 다리가 짧으신 저신장 장애인을 위해 발판을 올려달고 전동휠체어를 탄 이를 위하여 책상 높이를 맞추고 장애인 수강생들 ‘미싱’의 길에 걸림돌 없기를 무던히도 노력했다. 기름 손으로 수리까지 할 줄 알게 된 지금, 이제는 가방과 소품을 만들어 NGO마켓인 기분좋은가게와 아름다운가게에도 당당히 판매 전시를 하게 되었다.


이렇게 문을 연 것이 작년 4월이니 고작 1년간 참 많이도 변했다.
사실 보리공방 대부분의 장애인분들은 지체 또는 뇌졸중으로 인한 편마비 뇌병변 장애인이시다. 5-60대 고연령에 한쪽팔의 신경만으로 작품을 만들다보니 초기엔 반신반의 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은 단연 ○○씨(42세. 뇌병변 3급)이다. 어눌한 말투에 동문서답이 다반사인 그는 잘나가는 회사의 엘리트였다. 30대 초반 갑작스레 쓰러진 후 꾸준히 재활치료를 받으며 이젠 보행과 운전도 가능하다. 보리공방 회원들 중 가장 젊으며 유일하게 우측마비이기에 이분만을 위한 왼손가위도 마련하며 유독 맘이 많이 쓰인 분이다. 그런데 왜인지 초반부터 자꾸만 마찰이 생겨났다. 대뜸 전화로 앞뒤 없이,


“실 좀 줘 봐요~.” “쫌 내려와 봐요” 라고 하거나, “복지관이 이런 건 해 줘야죠.” “ 아 ~ 민원 올려야겠다.” “직원들이 판매처를 개발해야지요, 발로 좀 뛰어 봐요~.”


이렇게 6개월 이상 실랑이를 즐기시니 여기저기 지원받으랴 뛰어다니는 담당자 속내를 너무 몰라주는 것만 같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 ○○씨는 보리공방에서 가장 속 깊은 중재자이며 성실한 제작자이자 편한 친구이다. 서로 이해하고 보니 무례하게 들렸던 말투는 제멋대로 발음되게 하는 뇌 전달력의 문제였으며 놀리는 말투는 그의 비장애 시절 위트였다. 오해가 풀려 신뢰가 쌓이고 나니 낭비하거나 복지관에만 의존하던 습관도 사라져 가고 있다.
복지관 문 열자마자 공방에 들어서서 저녁이 되어서야 나오는 그의 재봉틀에는 3일 걸려 완성했다는 가방과 곧 팔려나갈 소품들이 가득하다. 10년을 재활서비스의 수혜자였던 그가 처음으로 이 세상에 ‘땀의 가치’로써 내놓게 될 물건들이다. 새로운 샘플들을 보여주면 ‘가죽이건 뭐건 이까짓 거 대충 만들 수 있다.’는 호방한 자신감이 이제는 귀여우시다.


사실 직업재활팀에서는 장애인 고용지원 이전에 역량강화라는 사업이 있다.
이 딱딱한 ‘역량강화, 임파워먼트’라는 말속에 원래는 사람이 녹아져 있음을 다시 일깨워준 보리공방 분들에게 감사한다. 오늘도 자치회의를 하신다. 몇 년 뒤 만들 사회적기업 이야기, 제품 디자인 개발과 구룡사 홍보를 포함한 지역 판매 이야기며 늘 그렇듯 담당자 살 빼라는 말은 꼭 나올 것이다. 살은 쉽사리 빼기 어려우나 기꺼이 지역으로는 뛰어들겠다. 난 이들을 한손의 마법사라 부른다. 마법사들은 만들고 직업재활사들은 판매할 지역사회를 찾아나서는 하이에나이고 싶다.
만드는 즐거움, 세상에 인정받는 즐거움을 나누는 보리공방. 미싱에 달린 날개가 어디까지 날아갈 수 있을까. 그 상상만으로도 여름 바다 같은 웃음을 안겨주는 인연들이다. 오늘 자치회의에는 서울시에 공모한 풀뿌리마을 공동체사업을 들고 가야겠다. 또 한번 보리공방~ 미싱의 날개를 달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