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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 사성제(四聖諦)

법용화 한애경
조계종 포교사


사성제에서 제(諦)란 불변여실(不變如實)의 진실·사실·진리라는 뜻이다. 사성제는 신성한 진리인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라는 의미에서 사진제(四眞諦) 또는 사제(四諦)라고도 한다.
부처님께서 성도 후 수 주일 동안 선정에 잠기신 후 자신의 법을 듣고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 교진여 등 다섯 비구에게 녹야원에서 설한 불교의 기본 교리에 대한 최초의 설법으로 고집멸도(苦集滅道)를 말하는데, 현실과 이상세계의 원인과 결과를 설하고 있다는 점에서 연기설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다.
중생의 삶은 고통으로 가득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고통은 원인이 모여 일어나기 때문에 결국 모든 고통은 없앨 수 있다고 하겠다. 그 고통을 없앨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 불교의 위대한 실천적 가르침이 바로 사성제이다.


《잡아함경(雜阿含經)》 〈제15권 386경 현성경(賢聖經)〉에는 사성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해져 있다.


부처님께서 베나레스의 녹야원에 머무르시던 어느 날 제자들에게 설법하셨다.
네 가지의 성스럽고 참다운 진리가 있다. 무엇을 네 가지라고 하는가? 첫째는 모든 것은 괴롭다는 진리요〔苦聖諦〕, 둘째는 괴로움의 원인은 쌓임에 있다는 진리요〔苦集聖諦〕며, 셋째는 모든 괴로움이 소멸된 진리요〔苦滅聖諦〕, 넷째는 괴로움을 소멸시키는 방법의 진리〔苦滅道聖諦〕이다.
만약 수행자로서 이미 모든 것이 괴롭다는 진리를 알고 이해하며, 괴로움은 원인이 쌓임에 있음을 알고 끊으며, 괴로움이 소멸된 진리를 알고 증득하여 괴로움이 사라지는 방법의 진리를 알고 닦았다면 그런 사람은 빗장과 자물통이 없고 구덩이를 편편하게 고르고 모든 험하고 어렵고 얽매이는 것으로부터 벗어났다고 하리라.
그를 어질고 성스러운 사람이라 부를 것이며 거룩한 깃대를 세웠다고 하리라.


또 《디까니까야 》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에는 이렇게 설해져 있다.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하였기 때문에 나와 그대들은 이처럼 긴 세월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치달리고 윤회하였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하였기 때문에, 나와 그대들은 이처럼 긴 세월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치달리고 윤회하였다.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하였기 때문에, 나와 그대들은 이처럼 긴 세월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치달리고 윤회하였다.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하였기 때문에, 나와 그대들은 이처럼 긴 세월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치달리고 윤회하였다.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의 성스러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하였기 때문에, 나와 그대들은 이처럼 긴 세월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치달리고 윤회하였다.
비구들이여, 이제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를 깨닫고 꿰뚫었다.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를 깨닫고 꿰뚫었다.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를 깨닫고 꿰뚫었다.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의 진리를 깨닫고 꿰뚫었다. 그러므로 존재에 대한 갈애는 잘라졌고, 존재로 인도함은 부수어졌으며, 다시 태어남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뒤 다시 게송으로 설하셨다.


이러한 것이 계다. 이러한 것이 삼매다. 이러한 것이 통찰지다.
계를 철저히 닦아서 생긴 삼매는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삼매를 철저히 닦아서 생긴 통찰지는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통찰지를 철저히 닦아서 생긴 마음은 바르게 번뇌들로부터 해탈하나니, 바로 이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와 존재에 기인한 번뇌와 무명에 기인한 번뇌이다.


1. 고제(苦諦)
고성제라고 하며 사성제의 첫 번째 괴로움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다.
삶의 괴로움은 4고, 8고로 분류하며 생로병사(生老病死)라는 삶의 모든 과정에 대한 4가지 괴로움에 따른 4가지 괴로움 즉 애별리고(愛別離苦), 원증회고(怨憎會苦), 구부득고(求不得苦), 오음성고(五陰盛苦)를 합해서 8고라 한다.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미운 것과 만나고, 사랑하는 것과 헤어지고, 구하는 바를 얻지 못하는 것은 괴로움이다. 또한 오온은 나와 나의 것으로 집착하는 데서 오는 괴로움이며 이와 같은 인식이 사성제의 첫 번째 진리이다.
우리는 괴로움의 실체를 바로 보고 또한 현실 속의 고의 실상을 바로 보는 순간 고통을 여의고 안락함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현실적 괴로움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회피하지 않고 그 괴로움을 알아차리고 그 실체를 보다 더 정확하게 인식하여 원인과 방법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이다.


2. 집제
집성제라고 하며 사성제의 두 번째 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다.
집(集)이란 함께 모여 일어난다는 뜻이다. 즉 인간의 미혹으로 인한 욕망과 애착이 모여 괴로운 번뇌가 일어나며 괴로움의 원인으로서 갈애를 들고 있으며 이 갈애가 바로 괴로움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최초의 진리가 괴로움의 인식이고 괴로움의 원인을 여실히 관찰하고 인식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이미 괴로움에서 벗어난 사람이다”라고 설하셨다.
괴로움에 대한 바른 인식과 괴로움의 원인을 알아차려 우리의 삶을 진지하고 바르고 성실하게 살아가야 한다. 이런 사람은 사성제의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진리를 올바르게 실천하고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3. 멸제
멸성제는 사성제의 세 번째로, 괴로움의 소멸된 상태를 말한다. 괴로움의 원인과 갈애 또는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모두 사라진 평온의 경지를 나타낸다.
괴로움의 원인이 소멸된 상태, 곧 삼법인의 열반적정의 상태이며 해탈의 경지를 말한다.
‘모든 존재현상은 끊임없이 생멸하고 변화하는 현상들은 갈등과 갈애의 상태를 면하지 못한다. 이런 생멸하는 갈등과 갈애의 현상에는 어떤 고정불변의 실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진리를 바로 알아차리면 그 상태가 열반적정인 것이다.
따라서 괴로운 존재 현상을 떠나 열반적정의 세계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습을 정확하고 바르게 알아차리면 열반적정이고 해탈이다. 그러나 잘못 보면 괴로움이고 번뇌이고 무명이다.


4. 도제
도성제는 사성제 가운데 네 번째로, 괴로움을 소멸하는 길 또는 8가지 수행방법을 말한다.
이 여덟 가지 바른 길, 즉 팔정도는 바른 견해〔正見〕, 바른 사유〔正思惟〕, 바른말〔正語〕, 바른 행위〔正業〕, 바른 생활〔正命〕, 바른 노력〔正精進〕, 바른 마음 챙김〔正念〕, 바른 선정〔正定〕이 그것이다.
이 팔정도는 열반에 도달하는 수행방법이며 수행의 핵심사항들이 종합적으로 집대성되어 있다.
고와 집제는 미망의 세계의 결과와 원인, 즉 인생 현실의 인과관을 밝히고 있다. 또 멸과 도제는 깨달음의 세계의 결과와 원인, 즉 이상의 경지에 이르는 인과관을 가르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고제는 알아야 할 일이요, 집제는 마땅히 끊어야 할 것이며, 멸제는 마땅히 증득해야 할 것이요, 도제는 마땅히 닦아야 할 것이다.
팔정도 수행의 완성은 괴로움의 소멸이며, 모든 것은 연기적으로 존재해 있음을 정확히 체득한 것이며, 지혜의 완성이다.
이 사성제는 부처님 가르침의 골격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사성제를 수승한 법이라 하여 최승법설(最勝法設)이라 한다.
불자라면 마땅히 이 사성제의 성스러운 가르침을 잘 닦아서 미혹과 고통이 없는 세계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