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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잘되는 꼴은 못 봐

성운(星雲)스님
대만 불광산사 개산조


두 다리의 관절염으로 몸이 편찮았던 어느 노스님은 아파서 견디기 힘들 때 종종 큰 제자에게는 왼쪽 다리를, 어린 제자에게는 오른쪽 다리를 안마하도록 부탁했습니다. 이 노스님은 큰 제자가 안마할 때면, “어린 제자가 오른쪽 다리를 안마할 때는 어찌나 잘하던지!” 하며 칭찬을 하셨는데, 큰 제자는 당연히 마음속으로 기쁘지 않았습니다. 어린 제자가 안마할 때 이 노스님은 “너의 사형이 왼쪽 다리를 안마할 때는 정말 좋더라!”라고 말했습니다. 어린 제자 역시 그 말을 듣고 기쁘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어린 제자가 집에 없자 큰 제자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사제가 안마하는 오른 다리를 없애 더 이상 안마할 다리가 없도록 해야겠다,’
어린 제자가 돌아와서 자기가 안마하던 다리가 없어진 것을 보고, 틀림없이 사형의 짓일 거라 짐작하고는 사형이 안마하던 왼쪽 다리마저 절단해 버렸습니다.
남이 잘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던 제자들 때문에 결국 스님만 화를 입게 되었습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것은 바로 ‘남이 잘 되는 꼴은 못 본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버릇입니다.
누군가 넘어지는 것을 보고 즐겁게 하하 웃는 것은 ‘남의 불행이 곧 바로 나의 기쁨’이라는 심리적 표현이고, 남이 출세하고 부자가 되는 것을 보고 속이 쓰라린 것은 타인이 잘 되는 것을 두고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남이 잘 되는 것을 두고 보지 못하면 질투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습니다. 질투는 양날의 칼과 같아서 상처를 입힐 수 있습니다.
왜 남이 잘 되는 것을 두고 보지 못할까요?
다른 사람에게 지기 싫어하기 때문이며, 내 마음이 넓지 못한 까닭이며, 다른 사람이 잘 되면 나도 그 덕을 볼 수 있다는 걸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백화점이 생기면 물건을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운 날씨에 시원한 에어컨 바람도 쐴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텔레비전이 있으면 나는 한쪽에서 프로그램을 시청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출세하면, 일이 생겼을 때 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큰 부자가 되어 공장을 지으면, 나는 그 공장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위대한 사람이 되면 “나는 그 사람과 한 고향이고, 같은 학교 동창생이고, 우리는 같은 나라 사람이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영광이 내게 좋지 않을게 뭐 있나요?
평소 친구를 사귈 때도 남이 잘 되는 걸 못 보는 사람은 친구가 되기 힘듭니다. 일단 당신이 영화를 얻게 되면 당신을 질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상사가 속이 좁은 사람이라면, 그의 면전에서 영광을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안 그러면 그가 당신을 싫어하게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어야 남의 영광을 좋아해 줄 줄 알고, 아량이 있는 사람이어야 타인의 성과를 함께 기뻐해줄 수 있습니다. 가령, 부모는 자녀를 질투하지 않고 온 마음으로 자녀를 훌륭히 길러내며, 선생님은 학생을 질투하지 않고 성심껏 학생을 지도 육성하여 출중한 청년으로 길러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좋은 것을 보면 함께 기뻐하고 유능함을 보면 칭찬해 주며, 아름다운 것을 보면 좋다고 말하고 선(善)을 보면 널리 선양하는 미덕을 길러야 할 것입니다. 타인의 성취를 곧 우리의 성과로 여기고, 남의 영광을 우리의 영광으로 여겨야 합니다. 마음을 넓게 가지고 ‘남이 잘 되는 것’을 인내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어찌 멋지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