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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을 알면 모두가 사랑

달라이라마
티베트 승왕


오늘의 티베트를 떠올리면 연상되는 단어들이 있다. 인간. 치유. 회복. 균형이 그것이다. 달라이라마(뗀진갸초, 80)의 오랜 벗 데즈먼드 투투(83). 시대의 정의를 위해 앞장서온 두 위인이 만나 참된 화해가 무엇인가를 일깨우는 자리를 가졌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성공회 대주교이자 달라이라마보다 앞서 1984년 남아공의 인종차별 반대 운동의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투투 대주교가 4월 18일 다람살라를 찾았다. 같은 달 14일 일본법회를 마무리한 달라이라마는 15일에 인도 다람살라로 긴급히 복귀하여 벗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남아공 정부의 비자 발급 거부로 달라이라마가 더 이상 투투 대주교의 나라에 방문할 수 없는 상황이 된지 오래다. 때문에 2012년도 3월 티베트 민중봉기 기념식에 맞춰 투투 대주교가 직접 다람살라를 찾기도 했다. 2011년도 투투 대주교의 80세 생일에 달라이라마를 남아공에 초청했으나 입국이 불허되었고 결국 생일 당사자인 투투 대주교가 직접 다람살라에 온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고 넬슨만델라(1918~2013)가 그의 삶에서 보였던 이념을 추모하며 지난 해 남아공에서 열릴 예정이던 노벨평화상 정기총회가 남아공 정부의 달라이라마 비자 거부 사태로 인해 이탈리아로 변경 개최되었을 때도 투투 대주교는 남아공 정부를 강력히 비난하며 달라이라마 편에 섰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의 벗 달라이라마의 80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다시 한 번 다람살라를 방문했다.
다람살라 티베트 망명정부에서 그들의 만남은 고작 일주일에 불과했다. 투투 대주교의 건강 악화 설 속에 많은 이들이 다음의 만남은 기약하기 힘들 것을 시사했다. 시대를 대표하는 이번 두 종교 지도자의 만남은 <기쁨의 저서(BOOK of JOY)>를 주제로 그들이 나눈 대담 영상과 함께 사진집으로 완성될 계획이다.  
그리고 다음 날 25일.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 인근에서 규모 7.8의 강진이 발생한데 이어 5월 12일에 2차 지진이 발생했다. 티베트 망명정부(CTA)의 공지에 따르면 이 두 번의 강진으로 사망한 티베트인이 네팔에서만 11명으로 집계되었으나 정작 티베트 본토의 피해 상황은 확인이 어렵다고 밝혔다.
달라이라마는 즉각적인 전문을 통해, “역사적으로 티베트와 네팔은 이웃과 같은 나라이며 많은 티베트인이 정착해 있습니다. 가족과 동료를 잃은 이번의 참담한 사태에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라고 위로했다. 다람살라에 본부를 둔 ‘달라이라마재단’은 티베트 망명정부를 통해 이번 재난의 구조 및 구호 활동을 위하여 한화 2억 원의 성금을 기부했다.
달라이라마와 투투 대주교의 만남의 공식적인 하루의 일정으로 4월 23일 티베트어린이마을(TCV)에서 진행되었을 때 일이다. 티베트 본토에서 의지할 곳 없이 외로운 홀몸으로 망명한 한 학생이 달라이라마에게 질문을 올렸다. 불안한 티베트의 국제적 정세, 난민의 신분으로 부모와 떨어져 성장해야 하는 교육 환경이 이겨내기에 벅차고 내일을 떠올리면 막막하다면서 오랫동안 꾹 눌러온 심정을 터트린 듯 급기야 오열했다.
달라이라마는 답했다. “척박한 티베트에서 현대화된 교육을 받겠다는 목적만으로 이곳에 오겠다고 결심하기까지 얼마나 굳게 스스로 다짐과 각오를 했는가를 상기해 보세요.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 민족의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며 누리고 있습니다. 나란다승원의 전통을 여실히 보존하고 있는 숭고한 티베트의 불교문화는 우리의 자랑이며 동시에 자부심입니다. 때문에 나는 당신이 티베트를 재건하는 훌륭한 인재로 성장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나는 항시 여러분에게 선한 법을 받아들임에 있어 의심을 들어 보일 것을 당부합니다. 이는 스승의 가르침을 비난하는 의도로서의 의심이 아닙니다. 스승에 대한 곤경을 바탕으로 한 상태에서 이치에 맞는 부분을 논리적으로 헤아리는 지혜를 증장시킬 것을 강조합니다. 총카빠 대사께서도 스승에 의지하는 공덕을 강조하셨습니다. 어리석게 의지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점검함에 경율론 삼장의 이치에 맞춰 계정혜의 삼학으로서 삶을 갈무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불교를 신앙하는 이들은 인간의 몸을 받음이 얼마나 귀한가를 떠올리고 이로서 죽음의 무상을 절실히 깨우칩니다. 불교는 궁극적으로 나 스스로를 가치 있는 삶으로 이끌기 위한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가르침입니다.
이웃 종교 이슬람교인들의 신앙 활동을 예로 들어 봅시다. 그들이 보이는 타인을 위한 희생은 한계가 없는 무경계로 비춰지기조차 합니다. 이슬람의 수행법으로서 ‘자신의 육신으로 말미암아 종교에 희생한다.’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하시겠습니까? 이 말의 참 뜻은 ‘나를 다스리기 위하여 종교로서 헌신한다.’는 의미입니다.
스스로를 잘 섬세히 살피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동시에 인간의 몸을 얻은 것은 성취의 한 과임을 유념하고 소중히 염두 해야 합니다. 그러한 살핌에 계율이 옳고 그름을 판단케 하는 잣대가 됩니다. 마치 풍성한 곡식을 수확하기 위하여 모종을 잘 가꾸고 돌봐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입보리행론>에서는, ‘모든 중생이 원하는 바를 충족하기 위하여 보리심에 귀의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다시 말해 삶이 바라밀 자체여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외도 수행자와의 만남이 떠오릅니다. 그는 나병 환자를 치료하는데 앞장서고 있었습니다. 다른 예로 수행자가 화장터에 머물러 수행의 주석처로 삼거나 동물의 뼈로 염주를 만들어 두르는 것은 모두 삶의 무상을 일깨워 진정한 삶의 가치를 일깨우기 위한 방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단지 묵상과 형태에만 그쳐서는 무엇도 성취할 수가 없습니다. 나병 환자와 함께 하는 한 외도 수행자의 삶은 바라밀이 무엇인가를 다시금 새롭게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과연 인류의 분쟁은 언제 즈음에야 종식이 될까요. 오늘의 인류는 지구 온난화의 위협 속에 급수 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반면 일부 국가에서는 인구가 줄고 있어 국가에서 산아 부흥 정책을 내놓기도 합니다. 우리는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함에도 불구하고 저마다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생명을 무차별로 위협하고 있습니다. 누구를 위한 인류이며 무엇을 위한 삶인가 그 당위성이 왜곡되고 불분명한 상황에 처한 오늘의 인류를 우리는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요.
인간의 몸을 귀하게 사유하세요. 무아의 지혜로서 방패와 창을 삼도록 하세요. 마음의 저변에 번뇌와 아집을 깔고서 수행을 한다면 결국 죽음 앞에 도달 했을 때 후회뿐입니다. 수행을 함에 있어서도 세간의 유행에 현혹되어 형식적 수행에 휩쓸리지 않도록 점검해야 합니다. 더불어 무아의 지혜가 바탕이 되는 수행을 하고 있는가도 알아차려야 합니다. 죽음에 임박했을 때는 이미 늦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무의미한 눈물만 흘릴 뿐입니다. 금생에 지금까지 연연해왔던 부분들을 다시 한 번 신중히 헤아려 바로 잡는 기회로 삼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출리심을 낸 보살은 간절히 서원합니다.
“내가 태어날 곳은 어디인가.
나약하고 힘없는 중생들이 고통 받는 곳.
오직 그 곳이어야 하리.”


인도 다람살라에서 가연숙
omflower@gmail.com / www.gagyo.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