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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아픔의 총량 줄이기

박상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네팔의 지진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 앓고 있는 사람도 많다. 안타깝고 안타까운 일이다. 어려움에 처한 이들과 아픔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물적 심적으로 도움을 주어야하고 작은 정성들이 전달되고 있다. 아픈 사람을 안 아프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정작 아픈 사람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 유마경의 <문수사리문질품>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文殊師利言 居士 문수사리언 거사
有疾菩薩 云何調伏其心 유질보살 운하조복기심
維摩詰言 유마힐언
有疾菩薩 應作是念 유질보살 응작시념
今我此病 皆從前世妄想顚倒諸煩惱生 금아차병 개종전세망상전도제번뇌생
無有實法 誰受病者 무유실법 유수병자


문수사리보살이 말하였다.
거사시여.
병을 앓고 있는 보살은 어떻게 그 마음을 조복 받아야 하는 것입니까.


유마힐이 말하였다.
병을 앓고 있는 보살은 마땅히
다음과 같이 생각을 해야 합니다.
‘지금 내가 앓고 있는 이 병은
모두 전세에 전도망상으로 일으킨
모든 번뇌에서 생겨난 것이니
실재 알맹이가 있지 않다.
누가 병에 걸리는 자이겠는가.’


내가 왜 아플까 하고 극심한 통증이 밀려오는 상황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다. 길가다가 넘어져서 손톱이 탁 깨져서 피가 줄줄 흐르는데 이건 내 전세의 전도망상이 지은 업 때문이로구나 하고 알아차릴 수 있다면 벌써 아픈 사람이 아닐 것이다. 지하철 계단에서 술 취한 사람이 내 어깨를 툭 치면서 험한 표정을 지을 때 내가 아마 몇백 생 전에 저 사람에게 툭 치는 일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떠오르기도 쉽지 않다.
병에서 나으면 그 병의 실체가 없는 것이었구나 하고 알아지지만 화장실을 두 자리 넘게 다니는 상황에서는 이 병이 실체가 없는 것이로구나 하고 알아차림 하기가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20년은 조금 안 되는 저편의 세월에 필자의 다리가 부러져서 누워 지내던 기억이 있다. 끙끙 앓고 있는데 대학동기 한 사람이 찾아왔다. 후에 인도까지 가서 공부를 많이 하고 왔다. 유마거사가 아파있는 필자에게 파견했던 특별 특파원이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 건 한참 세월이 지난 후였다. 동기가 말했다. “이 몸은 실체가 없는 것이니 그렇게 관해 보세요.”
깁스는 풀어냈지만 아직 목발 두 개를 의지해서 겨우 걸어 다니면서 뼈가 아삭거리는 듯한 통증이 수시로 덮치고 있는 상황에서 이 말을 들으니 머리로는 수긍이 가면서도 아직 아물지 않은 뼈들은 으드득 으드득 아프다고 여전히 소리를 질러댔다. 아픈 사람이 있으면 가끔 이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선배님 한 분은 군대 가서 근무하다가 다리뼈를 크게 다친 적이 있었다. 그 선배님께서 저 대학동기가 찾아왔던 비슷한 시기에 병문안을 와서 말하였다. 자신이 다쳐서 겪은 군대 병원생활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 놓으시더니 한마디 툭 던지듯이 말하였다. “한 번 누운 자는 반드시 일어난다.”
아직도 그 말을 떠올리면 가슴속이 싸해진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학동기도 한없이 고맙고 선배님의 말씀도 감사하다.


유마거사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본다.
所以者何 소이자하
四大合故 假名爲身 사대합고 가면위신
四大無主 身亦無我 사대무주 신역무아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사대가 화합해 있는 것을
임시로 이름 붙여 몸이라고 한 것이니
사대도 주인이 없고 몸도 무아인 것입니다.
사대에 주인이 없다는 구절을 읽은 위진남북조 시대의 승조법사는 다음과 같은 임종게를 남기고 있다.


四大元無主 사대원무주
五蘊本來空 오온본래공
將頭臨白刃 장두임백인
猶如斬春風 유여참춘풍
사대는 원래 주인이 없고
오온도 본래 공한 것인지라
내목을 하얀 칼날에 들이대지만
마치 봄바람을 베는 것과 같도다


칼춤을 추는 망나니의 칼날이 달빛에 번쩍거렸을지도 모른다. 목을 쑤욱 내밀고 봄바람을 베는 것 같다고 시를 읊은 승조법사는 만원 시내버스 안에서 발을 밟히는 찰나에 이것이 전세의 업이로구나 하고 바로 알아차릴 것이다.
한문 강의 시간에 어느 거사님에게 이 게송을 소개하고는 물었다. “거사님, 혹시 게송을 들으면서 스치는 전생의 추억 비슷한 거 없으십니까. 목이 툭 떨어진 기억이나 아니면 칼을 들고 춤을 추는 기억이나 이 광경을 약간 떨어져서 지켜본 그런 기억 같은 거 혹시 안 떠오르십니까.” “아이고 그 얘기만 들어도 몸이 으스스해지는데요.” 하고 웃으시기만 한다.
유마경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又此病起  皆由着我 우차병기  개유착아
是故於我  不應生着 시고어아  불응생착
또 이 병이 생겨난 것은
모두 아에 집착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에 대해서도
집착을 일으켜서는 안 됩니다.


강의를 듣는 가정의학과 의사선생님에게 병원에 찾아오는 환자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까 하고 물었더니 역시 의사선생님답게 현명한 대답을 하신다.
“아, 예. 근기를 봐서 말해야지요.”


旣知病本 卽際我想及衆生想 기지병본 즉제아상급중생상
當起法想 應作是念 당기법상 응작시념
但以衆法 合成此身 단이중법 합성차신
起唯法起 滅唯法滅 기유법기 멸유법멸
이 병의 근본뿌리를 알았다면
곧바로 아상과 중생상을 없애고
마땅히 법상을 일으켜
다음과 같이 생각해야 합니다.
단지 여러 가지 존재요소들이
합성되어 이 몸이 된 것이니
생긴다 해도 존재요소가 생기는 것이요
사라져도 존재요소가 사라질 뿐이로구나.


아픔은 나누면 반으로 줄어든다고 했다. 아픔에 정말 실체가 있다면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늘어나지도 않을 것이다.
지구촌 전체 아픔의 총량을 줄이는 노력을 중단해서는 안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새삼 모든 분들의 건강을 축원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