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행
여래사 불자
아침부터 봄비가 내린다.
쉬는 시간 회사 근처 카페에 걸터앉아
지난 시간의 책장을 넘긴다.
지난주 이유 없이 화가 나 있었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나
스트레스를 받고 살지만,
그것에 대해 최근 나답지 않게
예민하게 생각 했다.
화도 났다.
생각해 보면 화는 남에게 내는 게 아니라
나 자신에게 내는 거라 생각 한다.
회주스님의 말씀처럼 컵 안의 나만의 공간이고 삶이다.
생각에서 오는 아집이다.
그 컵을 들고 내려놓을 줄 모르면서
다른 한손으로 모든 일을 하려 한다.
컵 든 손은 보지 않고 바쁘다고 투덜거린다.
출근길에 회주스님 법문이 내게 죽비가 되어
뒤통수를 후려친다.
“무지함은 질투를 낳고
질투는 아집을 낳고
아집은 죄를 낳는다.
이 원인을 해결 하는 방법은 팔정도다.”
바른 견해를 가지고 바로 볼 수가 있다.
그제서야 몇 년 전 해인사 무관스님께서
직접 전화까지 주시면서 팔정도는 정견부터 차례대로
수행하여야 함을 강조하셨는지 알았다.
또 한 번 죽비가 내 뒤통수를 후려친다.
이를 깨달으니 한동안 내가 가지고 있는
좁은 마음이 많이 부끄러웠다.
며칠 전 쉬는 시간에 인터넷을 보다가
어느 분께서 지식인에게
‘가진 것은 없어도 주면 남는다네’란 말을
어느 분이 하셨는지 물어봤다.
답을 봤더니 회주스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아마도 회주스님께서 보시에 대한 법문을 하시면서
하신 말씀인 듯하다.
이 말씀은 나에게 또 다른 화두로 자리 잡는다.
물질적으로 가진 것은 없어도 다른 이들에게 줄 것은 많다.
재능기부라 하지 않던가.…
그리고 내가 조금 양보하자라는 마음과
가끔은 나 아니면 안 돼라는 마음도 필요하다 생각했다.
그리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다.
이는 내가 작은 것을 주고 크게 받는 것이다.
몇 년 전 사후 장기기증 서약을 했다.
이를 보고 큰아이도 동참 했고
작은 아이도 금년 초파일에 서약 예정이다.
이 또한 보시라 생각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서약 후에 그 두려움은
내 것이 아니고 환희심으로 넘쳤다.
아이들의 서약은 내가 강조한 게 아니다.
스스로 남에게 마음에 보시를 하고 싶어서이다.
회주스님께서 하신 가진 것은 없어도 남는 것은 있다는 말씀은
주고 나면 차고 넘치는 환희심을 두고 하신 듯하다.
나를 화나게 하는 사람들도 결국 나에게 주는 것이 있다.
난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 큰 거울을 준다.
모든 것은 마음에 있다.
경 읽기 좋고 기도하기 좋은 계절이다.
환희심 넘치는 마음으로 초파일을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