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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적佛敎的 무아관無我觀

정안 김의식
직장불교 지도법사


일반적으로 무아無我의 반의어反意語는 유아有我이다. 유아有我는 자신의 욕구에 의한 정체성正體性을 이루는 것으로, 재색식명수財色食命壽의 욕망에 의한 가치관價値觀의 결정체이다. 그러므로 필경畢竟 오감적五感的 삶의 주체이다.
반면에 무아無我란 무념무상無念無想의 자아自我로써 욕심도 생각도 없이 주어진 대로 편안한 삶을 영위하는 주체를 말한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무아無我란 무위행위無爲行爲의 주체로써 집착 없이 자유로운 삶을 구가歐歌하는 당체當體를 말하는데, 그 주체는 실체성實體性이 없다는 것으로 공사상空思想을 바탕에 두고 있다.


초기불교初期佛敎의 무아관無我觀은 인간일생人間一生의 키워드를 무상無常, 무아無我, 고苦, 공空으로 보는 해석인데 여기에는 자아自我가 없다는 것과 아트만(실체성)도 없는 것을 말한다. 이는 달리 말해, 중생의 관점에서는 무아無我이므로 괴로움이 있다는 사고思考와 불교의 입장에서는 무아無我이므로 공空이다 라는 것인데 진정 공空이란 본질적 법리法理이지만 진공眞空을 바탕으로 묘유妙有의 세계가 드러난다는 연기법緣起法의 핵심核心이다.


대승불교大乘佛敎 특히 금강경金剛經에서의 무아관無我觀은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에서 말하듯이 18계界에 머물지 않고 청정심淸淨心을 일으키라는 점에서 무아無我를 체험하기 어려운 것인 바, 무위無爲로써 무아無我라는 근본에 접근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무위는 행동철학으로 무위사상無爲思想을 말하는데, 그 의미는 함이 없이 행하는 것을 이른다. 즉 함이 없는 행위의 근본에는 이미 무아無我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금강경金剛經에서는 이무위법이유차별以無爲法而有差別이라 했듯이 무위無爲에서는 무아, 유아의 차별을 지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불교체계佛敎體系를 이해하는 안목眼目은 삼대三大라는 근본적인 해석이 중요한 바, 이를 체대體大/상대相大/용대用大라 한다. 따라서 무아無我가 체體라면 무위無爲는 상相이 되고, 상 이후의 용用은 무득無得이 된다. 특히, 무득無得은 반야심경般若心經에서 반야般若의 궁극점窮極点이 무지역무득無知亦無得이란 게송偈頌에서 빌려올 수 있다.


금강경金剛經에서의 4상相(아/인/중생/수자)의 관점에서 무아관無我觀은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 중의 아상我相이 사라진 것을 무아無我라 하지만, 그보다는 무아無我가 되면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자상壽者相이 사라지는 것으로 해석됨이 옳다는 생각이다. 즉 유아有我라는 개아個我 혹은 자아自我가 사라져 무아無我가 된다면, 무아無我의 관점에서 아상我相은 무아상無我想인 청정심淸淨心으로, 인상人相은 무인상無人相인 자비심慈悲心으로, 중생상衆生相은 무중생상無衆生相인 광명심光明心으로, 수자상壽者相은 무수자상無壽者相인 평정심平定心으로 변환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달리 해석하면 아상(탐심貪心), 인상(진심嗔心), 중생상(치심痴心), 수자상(만심慢心)이 소멸하여 자유, 평화, 평등의 행복이 드러난다고 본다. 어쨌든지 무아無我로서 4상相이 소멸되어 무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無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이 된다는 깊은 법리法理가 있다.


불교정법佛敎正法에서 본 무아관無我觀은 삼법인三法印의 제행무상諸行無常 열반적정涅槃寂靜에서 찾아볼 수 있겠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은 생멸법生滅法이라 하고, 제법무아諸法無我는 생멸멸이법生滅滅已法이라 하며, 열반적정涅槃寂靜은 적멸위락寂滅爲樂을 지칭한다. 여기의 제법무아諸法無我에서 무아無我는 자아의 실체성實體性을 부정하는데 의의가 있으나, 넓게는 우주의 근본 주체라는 아트만사상에 대한 부정도 포함된다.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한 연기적緣起的 소생소멸所生消滅이므로 정해진 법도 없고, 그 법이라는 당체當體도 없다는 말씀이다. 다시 말해 무명無明에서 생生과 노사老死가 펼쳐지는 순관順觀이 있다지만, 역으로 생사生死의 실체가 없으므로 무명의 실체도 없다는 역관적逆觀的 사유思惟가 꼭 필요하다는 점이다. 즉 중생은 순관자順觀者이지만 현자賢者는 무아로서 역관逆觀으로 보아 반야심경般若心經의 전도몽상顚倒夢想을 떠난 역관자逆觀者로 볼 수 있다.


수행문修行門의 관점에서 무아관無我觀은, 무위無爲로써 무아의 근본을 확인하고, 또한 무위無爲로써 무득無得을 확증하는 수행의 문을 열어가는 것이 요구된다. 무위는 함이 없는 밝은 생각이며, 무아는 혼탁함이 없는 맑은 마음이며, 무득은 얻을 것이 없는 화려장엄華麗莊嚴한 아름다운 세계의 연출이다.
우리가 삶에서 무위無爲의 행이 된다면, 이미 무아는 이루어졌고 무위無爲의 결과를 바라본다면 무득의 경지가 나타난다. 따라서 무아無我와 무득無得의 진면목眞面目을 공적空的인 무위無爲에서 바로 세워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