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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오신날 우리들의 자세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구룡사 회주


오늘은 불기 2564년 부처님오신날입니다. 부처님오신날을 봉축하는 표현은 다양합니다. 아니 계신 곳 없으신 부처님, 천백억화신부처님, 삼백육십억일십일만구천오백 동명동호 부처님이십니다.
『만불명호경萬佛名號經』에 부처님 명호도 각기 다릅니다. 1년이 365일이니 1만 부처님 출현 또한 같은 날의 부처님도 많을 것입니다. 불자들의 축원을 보면 생일이 같은 불자도 있고 띠가 같은 불자들도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등 여러 불보살은 매달 정해진 재일이 있습니다. 어찌 보면 매일 부처님오신날이라 할 것입니다.


코로나19 신종바이러스로 지구촌 사람들이 어렵고 힘든 생활들을 하고 있습니다. 지구촌의 자연환경이 코로나19 이전에 비해 훨씬 좋아졌다고도 합니다.
자동차와 비행기의 이동이 줄어들어서 공기가 맑아지고 경제활동이 줄어들어 강물도 맑아졌다고도 합니다. 경제적으로는 국가 간 큰 타격을 입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정부에서는 경제 활성화를 위해 4인 가족 기준으로 1백만 원씩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5천만 명 전 국민에게 주는 긴급재난지원금을 보면서 일미칠근一米七斤이라는 시은施恩을 떠올려 봅니다.
구룡사에서 35년을 살면서 삼보정재三寶淨財의 소중함을 가슴에 담고 살아왔던 의미가 일미 칠근입니다. 이 말은 쌀 한 톨의 무게는 농부가 일곱 근의 땀을 흘린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긴급재난지원금의 무게를 표현하자면, 만 명이 만 원씩만 모아도 1억 원이요, 1억 원을 만 명에게 나누어 주면 1인당 만 원씩 돌아갑니다. 요즘 우리사회의 경제규모로는 1만 원은 적은 돈일지 모르지만, 일미 칠근에 비춰보면 소중한 돈입니다. 하루에 만원씩 1년을 모으면 365만 원이고 하루에 십만 원이면 3,650만원입니다. 5천만 명 국민이 만 원씩 모으면 5천억 원입니다.
그 5천억 원을 5천만 명에게 나누어주고자 하면 1인당 만 원이니, 이번에 전 국민을 대상으로 1인 가구에 40만 원, 2인 가구 60만 원, 3인 가구 80만 원, 4인 가구에 100만 원 긴급재난지원금은 엄청나게 큰 돈이 될 것입니다.
1960년대에는 1백만 원이면 서울 근교에서 집 한 채를 샀다고 합니다. 그 어린 시절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까지도 1백만 원은 큰 무게의 돈입니다.
이번에 십 몇 조원을 추경예산으로 긴급재난지원금으로 마련했다고 하는데, 그 100만 원은 4인 가족이 살아가는데 크게 어려움이 없다면 신청을 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기부가 된다고 하니, 그렇게 하는 동참도 국가경제발전을 위해서 값지고 소중한 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불과 몇 십 년 전, 가난했던 시절을 생각해보면 지금의 우리는 거부장자라 할 것입니다. 그 마음으로 돌아가 좀 더 아끼고 절약하면 국가재정이 축나지 않도록 하는 한 방법이라는 생각입니다.
십 수 년 전부터 구룡사와 여래사는 중학생들에게 매달 5만 원씩 개인통장에 송금해 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1년이면 1인당 60만 원이고 50여 명이면 3,000만 원입니다. 한번에 60만 원을 보내는 것보다 매달 절박한 상황을 피해갈 수 있도록 5만 원씩 통장에 입금시켜 주고 있습니다. 어려운 대학생은 매달 30만 원씩, 독거노인들은 월 10만 원을 보내드리기도 하고 추석과 명절에는 자비의 쌀 20kg들이 수백 포씩 구청을 통해 어려운 이웃과 나눔을 매년 하고 있습니다. 홍법문화재단에서 재난에 동참하고 있는 일들은 큰 보람입니다.
불과 4개월 전, 대구 경북에서 촉발된 우리나라의 코로나19 사태는 세계에서 중국 다음으로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를 가장 선진적으로 방역에 성공한 나라로 세계인들의 찬사와 부러움을 받고 있습니다. 이처럼 기적적인 일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훌륭한 국민성이 아닌가 싶습니다. 외신을 통해 보도되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혼란과 무질서, 사재기는 대한민국에서는 볼 수 없었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의료진들의 희생적인 노력과 헌신이 있었습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행정력과 적극적인 지원활동도 보태졌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국민 스스로가 방역의 주체가 되어주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러한 우리나라의 모습에 세계인들은 존경의 찬사를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위대한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자긍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들은 하나 더 자긍심을 가질 일이 있습니다. 부처님오신날 봉축마저 1개월 뒤로 미루고 봉축기간에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국난극복을 기원하는 기도 정진을 호국불교의 정신으로 발현하여, 만 명이 넘은 우리나라의 코로나 확진자 중에 사찰마다 확진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자긍심으로 긴급재난기금에도 대처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몇 년 전, 만65세가 되니까 주민센터에서 한 달에 얼마씩 준다고 연락이 왔었습니다. 지하철도 그냥 타고 다니라고 하였지만, 지하철을 탈 때는 표를 끊어서 타고 있습니다. 4인 가족을 기준으로 100만 원 신청을 하지 않는 것도, 신청을 해서 기부를 선택하는 것도 불자로서 행동 해볼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문을 걸어 잠그고 깊은 산속에 숨어 있는 것보다 대중 속에 함께 어울리되 물들지 않음이 더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깊은 산속에 있으면서도 그의 마음이 번잡하다면 그는 비록 산속에 있으나 장터에 있는 이와 다를 게 없습니다.


『열반경涅槃經』에도 이르시기를, ‘몸과 마음이 고요한 이가 있고 몸과 마음이 번다한 이가 있다’고 했습니다. ‘몸은 고요하나 마음이 번다한 이가 있는가 하면 마음은 고요하나 몸이 번다한 사람도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 서로 격려하고 서로 탁마하며 살아간다면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나 사방칠보四方七步 하시며 천상천하天上天下에 유아독존唯我獨尊이요, 삼계개고三界皆苦하니 아당안지我當安之하리라’ 하신 탄생게誕生偈의 참뜻을 보았으면 합니다.
‘하늘 위 하늘 아래 우리 모두는 존귀하다’고 하셨습니다.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의 삼계三界에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고통과 괴로움에 허덕이고 있으니 내가 마땅히 그들을 편안하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그렇게 이 세상에 출현하신 부처님처럼 우리도 부처님같이 닮아 갈 수 있는 그러한 삶을 살았으면 합니다.
불기 2564년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을 한 달 뒤 윤4월 초파일로 미루고 코로나19로 인한 국난극복을 위한 정진기도를 봉축하는 오늘, 부처님오신날 찬불가를 불러봅니다.


꽃 보라 흩날리는 룸비니 동산
한줄기 찬란한 빛이 우주를 덮고
거룩한 싣달 태자 탄생하실 때
유아독존 큰소리 온 누리에 퍼지네
사뿐히 자국마다 바치는 연잎
태양보다 밝은 등 높이 드시고
사생四生의 모든 고난 녹여 주시고
이 세상에 오신 날 사월 초파일
부처님오신날을 봉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