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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으로서 발견하는 행복

 


올해 초 3월에 예정되었던 달라이라마(뗀진갸초, 85)의 티베트력 신년 보름 법회가 취소된 이후 첫 랜선 법회 소식이 전해졌다. 코로나19 전염병 사태로 인한 인도 정부의 전국 봉쇄령이 5월 31일까지 지난 석 달간 내려진 가운데, 달라이라마의 관저에서 진행된 이번 법회는 용수보살의 보만론을 주제로 5월 16~17일 이틀간 이어졌다. 전 세계의 다양한 불자의 권청으로 성사된 이번 법회는 5월 29~30일 양일간 관세음보살 관정 의식으로 온라인에 생중계되었다.
달라이라마는 부처님오신 날(Vesak)을 기념하여 봉축 메시지를 전했다. 붓다의 가르침은 가장 보편적인 가치로서 진리를 일깨운다는 점을 골자로 했다. 더불어 일체가 서로 의존한다는 연기 사상을 다시금 일깨우는 비폭력과 자비행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불교가 제언하는 마음 수행이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고 서로가 협력하는데 그 역할이 크다는 점을 밝혔다.


바야흐로 물질을 통해 평안을 추구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명성과 권력은 우리 내면을 만족할 만큼 충족시켜주지 않습니다. 결국은 마음을 변화시키는 문제에 봉착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지식인들이 달라이라마에게 비슷한 질문을 합니다. 본인 달라이라마 또한 그들과 특별한 차별이 없이 행복을 구하는 불교 수행자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저는 현실을 바르게 알도록 하는 지혜를 일깨울 필요성을 항시 강조해 왔습니다. 이러한 구법은 다음 생이나 특정한 신을 따로 찾을 필요 없이 나 자체로서의 내면을 면밀히 살피는 것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저는 그러한 답을 찾는데 안내를 하는 스승의 역할에 임할 뿐입니다.
오늘날 70억 인구수만큼 다양한 각각의 성품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종교 역시 인간의 역사에 기반을 두어 다양한 사상을 꽃 피워 왔습니다. 더불어 티베트의 역사와 문화는 종교를 넘어선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7세기 당시 송첸캄보 왕은 인도의 산스크리트어를 기반으로 티베트어를 창제하여 붓다의 경전을 편찬하였습니다. 산스크리트어는 나란다 승원의 지식인이 사용한 언어입니다. 점차 붓다의 법어는 분석하고 연구되어 논리화되었습니다. 이를 근거로 논제가 추론되고 최종 입증되도록 하였습니다.
현대 과학 역시 불교에 큰 흥미를 보입니다. 이는 역으로 티베트어와 문화가 보존될 가치성을 회자하고 있습니다. 붓다의 경을 비롯하여 인도 선지식의 논서는 이미 300여 권의 티베트어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를 보존할 의무는 달라이라마 본인의 생애를 건 사명이기도 합니다. 그 논서에 담긴 핵심이란 무엇일까요. 생명 지닌 존재가 간절히 원하는 진정한 행복의 해답일 것입니다.


욕망 지닌 모든 이는 애착심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와 관련한 예로 임산부의 심리 상태가 태아에게 미치는 직간접적인 영향력에 관한 흥미로운 연구가 있습니다. 임산부가 임신한 당시 불안과 걱정의 시기를 보냈을 때 태어난 아이의 두뇌 활동과 정서에 그 심리 상태가 반영된다는 것입니다. 실질적으로 사회 공동체 또한 그와 같은 영향력을 주고받습니다. 이미 냉전의 시대는 가고 국가 간의 경계 역시 허물어져 협력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공존의 의미와 실천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변화합니다. 인도에 망명하여 다람살라에 난민의 보금자리를 마련한 때가 지난 1959년도입니다. 그때는 겨울이면 폭설로 인해 크고 작은 고충 거리가 많았다면 60년이 흐른 지금은 오히려 눈이 오지 않아 다른 문제가 야기되고 있습니다.
나와 나의 것에 대한 집착만큼 미련한 것이 없습니다. 집착하는 마음은 언제나 불편함을 일으킵니다. 우리가 얼마나 밀접하게 상호 의존하며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는 만큼 인류의 미래가 판가름이 날 것입니다. 배려를 통해 내면은 비로소 편안해집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비로소 행복을 봅니다.
그렇다면 나에게 보이는 것이 실제로 하는가. 나의 애착은 실재한다 여기는 순간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 대상을 정작 자세히 살펴보면 고정되어 변하지 않는 고유한 본성이 없습니다. 용수보살은, “업과 번뇌를 끊은 자리가 해탈이다.”라고 논하셨습니다. 타당한 근거 없이 왜곡된 분별과 망상이 그려내는 것이 우리 인간의 세상사입니다. 때문에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논제는 불교와 과학의 접점이 되고 있습니다.
인도 망명을 통해 본인 달라이라마는 세상 속으로 합류했습니다. 저명한 지식인과 과학자를 만나 토론의 장을 벌이는 계기가 마련이 되었습니다. 만약 티베트 설산의 뽀딸라 궁에 고립되어 머물고만 있었다면 세상의 역동적인 흐름에서 소외되어 마치 나를 세상의 중심이라 착각하며 지내고 있었을 것입니다. 인류에게 명확한 것은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하며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더욱 인류애적인 노선에 관심을 가지고 협력해야 합니다.


지금 600만 명의 티베트인의 중심에 고령의 달라이라마가 있습니다. 정치적인 역할의 책임은 이미 내려놓았습니다. 수천 년간 티베트인의 역사와 함께 흘러온 달라이라마의 책임은 보다 민주적이고 과학적인 방향으로 이해시키겠다는 책임감을 지니고 있습니다. 석가모니 붓다께서는 모든 상황을 논리적으로 분석해 취할 것을 언제나 강조하셨습니다.
붓다의 법문 또한 그렇게 받아들여야 할진대 세간법을 대하는 자세는 어찌해야겠습니까. 8세기경 나란다 승원에서 오신 샨트락시타는 산스크리트어로 경장과 율장을 빠알리어로 논장을 가르쳤고 많은 논사들이 티베트어로 번역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3장을 수학하는 수행자는 마치 금을 다듬어 정수만을 추려내듯이 면밀해야 할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그 가운데 용수보살의 제자 아리아데바 논사는 처음에 16가지 불선업인 복덕이 아닌 것을 끊어야 한다고 명제를 두었습니다. 나와 나의 것이라는 생각을 끊고, 마지막으로 모든 견해를 끊은 이가 진정 지혜로운 자라고 하셨습니다. 몸과 말 그리고 마음으로 이루어진 나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요. 자성이 없는 그 자리를 봅니다.
“아 오 마 옴 쌈바와 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