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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업력을 심는 지금이 되길

달라이라마, 미국 산타바바라 대학 주최 비대면 온라인 대담


‘불교도에게 희망이란 무엇인가’ 혜안을 묻는 자리가 열렸다.


미국 산타바바라 대학은 예술과 문학의 교감을 주제로 5월 19일 인도 다람살라에서 달라이라마(뗀진갸초, 86)와 수필가 피코 아이어의 비대면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피코 아이어는 2008년, The open road: The global journey of the fourteenth Dalai Lama를 집필했다. 책에서 저자는, 달라이라마 스스로 ‘명료한 불교 승려’라고 소개한 점에 주안을 두고 달라이라마의 망명지에서의 33년의 삶에 담긴 사상을 주제로 담았다. 1시간 여 동안 진행된 이들의 대담은 인터넷 온라인을 통해 전 세계로 생중계되었다.


인생에서 탄생을 기점으로 희망은 비롯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태중의 태아 시절부터 부모의 염원과 보살핌을 통해 희망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분노 없는 일상을 사는 것이 얼마나 태아의 자아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가는 이미 과학적으로 검증이 되기도 했습니다. 희망은 어찌 보면 다가올 미래에 대한 바람이자 서원입니다. 이는 다시 말해 현재의 삶이 지닌 중요성을 의미합니다. 지금의 내가 지닌 생각과 행동에 기인하여 곧 다가올 희망이 실현되기 때문입니다.
70억 인류는 하나의 예외도 없이 엄마의 몸을 빌려 태어났습니다. 따라서 아이에게 어머니의 부재는 정신적으로 적지 않은 결핍을 초래합니다. 정신적으로 어머니의 부재는 아이에게 사랑과 자비의 왜곡된 심성을 일으킵니다. 이것을 극복하고 바른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조직과 사회의 자애와 관심이 필요하게 됩니다. 그것이 교육의 역할이고 크게는 국가의 책임이 됩니다. 때문에 우리는 근본적으로 부모의 역할에 희망의 책임을 부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기에 아이들에게 희망을 전해야 하는 인류애적 책임과 의무를 지고 있습니다. 희망을 잃지 않았기에 험난한 고난을 극복하고 마침내 우리는 인류의 역사를 지금까지 이끌어올 수 있었으며 인류의 미래는 가히 희망적이라는데 그 방향을 두는 것도 그러한 측면입니다.


인도철학의 선지식 샨티데바께서는, 정직함을 동반한 진실만으로 상대를 대하라 하셨습니다. 이는 불교도의 측면에서 수행이라는 이름의 실천이 있어야 합니다. 내 마음의 정직과 대상을 향한 배려를 통해 발현되는 시너지는 희망을 보편화하는 데 이바지하게 됩니다. 이러한 훈련은 나 홀로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세대를 넘어 꾸준히 진행되어야 합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신념의 문제를 거론하게 됩니다.
우리는 현재 극단적인 종교 편향의 문제와도 직면해 있습니다. 신을 믿거나 신을 믿지 않거나 인간은 존중되어야 하는 소중한 생명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더불어 마음은 항시 평안해야 하며 이러한 현상과 작용을 우리의 아이들이 지켜보고 있으며 따라 배우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우리 인간의 신념은 정직함에 근간을 두어야 합니다. 그 무엇보다 종교와 무관하게 명료히 우리가 사회적 동물로서 어우러져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조화를 허물거나 이기주의적 집단 성향을 일으켜 분란을 조장하는 바를 지양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달라이라마 본인은 어디서 누구를 만나건 나와 같은 인간 형제자매임을 상기시킵니다. 그리고 나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에 귀를 기울이고 기꺼이 동참하고자 최선을 다합니다.


전쟁과 폭력의 시대는 어서 빨리 종식되어야 합니다. 내 나라 나의 종교로 인해 자행되는 모든 분열과 충돌은 대화로 마무리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보다 행복하게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며 진실하게 어울릴 수 있는가를 토론해야 합니다.
행복이란 생명 지닌 존재의 공통된 희망 사항임을 유념하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지구 온난화와 기후 이변이 가시화되는 지금 우리는 보다 진실하게 각성해야 합니다. 인간은 이 푸른 지구별에서 살아가는 인간 공동체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합니다. 행복의 관점에서 물질적인 만족과 추구에 이끌리기보다 인간 본연의 가치를 회복하고 더 나은 우리의 내일을 위해 대화하는 데 지금을 활용해야 할 것입니다.


1959년 3월 17일 제가 티베트의 라싸를 뒤로하고 인도로 망명길에 올랐던 그때를 기억합니다. 그때 저는 달라이라마의 여름궁전 노블링카에서 긴박한 상황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당시 중공군은 달라이라마를 호위한다는
명분으로 저의 거처를 찾고 있었습니다. 신탁승 오라클이 명한 날과 시, 노블링카에서 말을 타고 정예의 호위부대와 함께 유일한 탈출구 인도로 향했습니다. 얼마만큼 갔을까요. 말 고삐를 쥔 호위병이 저에게 정중히 말을 건넸습니다.


“성하. 지금 라싸의 뽀딸라 궁을 보십시오. 언제 다시 보시게 될지 기약할 수 없을 수 있습니다.”
저는 그 말에 오던 길을 되돌아보며 나의 오랜 거처였던 뽀딸라 궁을 마지막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6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인도는 문명사뿐만 아니라 철학적으로 난란다 승원의 수승한 선지식을 지닌 보고의 땅입니다. 나가르주나의 중관사상은 티베트불교에서 정수 꽃을 피웠노라 자부합니다. 저는 그러한 가르침의 전승에서 신념은 논리적으로 완성된다는 것을 체득하였습니다.
실존하는 모든 관계는 논리적으로 인식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려 합니다. 21세기 현대 과학자들과의 대담에서도 불교가 지닌 논리적 사유는 과학의 가설을 정립하는 데 크게 이바지하고 있습니다. 불교의 사마타와 위빠사나는 3천 년이 넘는 불교의 논리적 수행법입니다. 이는 우리가 비폭력주의 사상으로 인류의 내일을 설계하는 데 또한 활용되고 있습니다.
한때 테라와다불교를 따르는 미얀마 태국 스리랑카 불교 승려와 대담을 할 때 저는 진지한 농담 삼아 티베트불교는 강한 치아를 지닌 것과 같음을 비유하기도 합니다. 치아 없이 잇몸만으로 불교뿐만 아니라 세상의 다양한 이치의 정수를 모두 헤아리기란 역부족입니다. 강한 치아를 가지고 거침없이 세상의 모든 사상을 분석할 때 가장 합리적인 불교도의 사자후라는 입장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명상의 힘은 분석력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명상을 마치 트렌드처럼 받아들이는 요즘 많은 이들이 명상의 본질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행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에서 의료진의 노고에 가장 큰 감사를 전하고자 합니다. 불교도에게 전하고픈 메시지는 평안한 마음을 항시 유지하도록 하는 역량을 키우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질병을 통해 고통을 받는 일이 발생했을 때 불교도적 관점에서는 업력에 기인한 것으로 사유합니다. 지금의 고난을 선한 업력으로 전환시키는 것의 기회 역시 지금의 내가 처한 상황에 기반한다는 것이 업력의 올바른 해석입니다.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선한 영향력의 씨앗을 심으세요.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제언하는 선지식으로 달라이라마 본인이 존경받는 바에 대한 책임을 엄중히 인정하고 마음 훈련의 중요성을 여생 동안 진실하게 나눔으로써 일깨우고자 합니다. 감정을 다스리는 것 또한 교육의 과정에 넣어야 한다고 제언하는 것도 이러한 측면입니다. 일상에서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기 위하여 교육의 체제를 확립하는데 교육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미래가 보다 희망적이고 이를 실현하는데 진취적일 수 있도록 철학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인류를 위한 교육의 근저에 마음과 감정을 다스리는 교과목을 필요로 한다는데 동참해 주기를 바랍니다.
과거의 시간에 비해 인류의 미래는 과연 희망적인가. 그 부분에 대해 기후 이변은 인류에게 비할 바 없이 크나큰 비관적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현재의 코로나19 상황을 극복하고자 우리가 연대하는 것에서 희망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