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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서운암 카페

 


꽃들의 처소에서 ‘찰나’라는 시간에 안부를 묻다


이서연
시인


연록에 제법 푸른 물이 오르고 있다. 시간도 푸르렀으면…. 은근히 별 생각을 다 해 본다. 시간은 늘 그 모습이다. 푸르고, 붉고, 노랗고 한 시간이 따로 있겠는가. 다 사용하는 사람의 모양처럼 시간은 각자의 모습으로 흐르는 것인데 가끔 사람들은 자기중심적으로 시간이 자기에게 유익하게 흐르길 바란다. ‘시간’은 모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추상적인 의미다. 여기에 작의적으로 유불리를 따지는 게 얼마나 황당하고 졸렬한 인간의 모습인가. 또한 쓸모없는 시간이란 없다. 어떻게 사용했느냐에 따라 용도와 가치가 달라지는 것이 ‘시간’이므로 ‘시간’을 탓할 수도 없고, ‘시간’의 문제가 아니기도 하다. 무엇이 중요한가. 시간을 사용하는 이의 솜씨다. 푸름의 물이 오르는 풍경 속에서 지금 이 순간 어떻게 시간을 요리하고 있는가에 따라 시간은 영혼에 영양제가 되기도 하고, 삶의 가치가 되기도 한다.


계절마다 시간이란 자체는 별다르게 흐르지 않는다. 다만 눈을 뜨고 아침을 맞이하면 발길이 시간을 걷고 있고, 손길이 시간을 사용하고 있다. 다


시 밤의 사랑처럼 뜨는 달을 보며 잠들어 꿈결로 하늘의 별의 수를 헤아릴 때 영혼은 꽃도 되고, 그 영혼이 꽃향이 되어 다른 영혼을 향기롭게도 한다. 그래서 이왕이면 내 영혼이 푸르고 싶다. 발길이 산사를 찾고 마음을 담그게 되는 것도 이런 염원의 줄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푸름이 오른 영축산에 몸을 맡겨보고자 했다. 무풍한송길을 산책하고 오른 통도사 서운암은 늘 같은 모습이 아니다. 꽃도 피는 순서가 있고, 나무도 자라는 순서가 있다. 서운암은 자연의 순서를 묵묵히 받아내면서도 담아내는 풍경이 시시각각 달라서 갈 때마다 새로운 매력을 느끼게 된다. 이번엔 작은 연못이 유난히 순도 높은 푸름으로 내게 안부를 묻는 듯하다. 안녕하리라 답할 준비가 여전히 미흡하기만 하다. 삼천불전에서 삼배를 마치고 잠시 명상에 잠겨 본다.


살아있음이 아름다움이다


지금
바람이 만져지는가
구름을 보았는가
꽃향기를 맡았는가


햇살 한 줌 입에 넣어 봤는가
속가슴으로 젖어드는 푸름이 느껴지는가


그럼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살아있음이 아름다움이다
- ‘야생화도 명상 드는 암자에서’ -


바람까지 푸른 영축산에서 몸을 적셔 보자는 생각을 한 것은 순전히 꽃 때문이다. 해마다 전국의 시인들이 이맘때면 영축산에서 꽃시로 축제를 연다. 꽃시가 영축산 서운암 주변에서 휘날리니 꽃향을 시로 전하는 축제가 그야말로 야단법석에 법향이다.
이팝나무가 흐드러진 자리 아래엔 금낭화 군락지가 있다. 작약과 유채도 초록 숲 한편에서 군락을 이루고 황매화 오솔길 속 숲에는 군데군데 핀 붓꽃이 청초한 자태로 보는 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탐스럽고 복스러운 하얀 불두화는 또 어떤가. 공작거사까지 불두화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여여한 풍경 앞에 그만 녹는다.
이렇듯 꽃복이 많은 서운암은 고려 후기 1326년(충목왕 2) 충현대사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통도사 19암자 중에서 특별한 문화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발길을 가장 많이 부르는 곳이다. 서운암은 성파 큰스님의 원력으로 십육만도자대장경을 모신 장경각이 세워지면서 더 유명해졌지만 전통 천연염색과 꽃시화전으로 예술문화 불사가 이어져 종교와 상관없이 모든 대중들과 친숙한 도량이 되었다.
한편 수많은 야생화로 장엄된 이 도량에서 가장 자랑하는 것이 있다. 우리의 전통 맛을 지키고 있는 된장이다. 이 도량엔 300년이 넘은 1,500여 개의 장독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재배된 햇콩을 무쇠솥에서 장작불로 삶아 황토와 짚으로 지은 집에서 발효 시킨 후 3년간 간수를 뺀 천일염과 영축산 약수에 오미자, 구기자, 산수유, 감초 등 한방 생약재를 넣어 숙성 시킨다.
알맞은 일조량과 푸른 바람으로 숙성된 만큼 색깔이 탁하지 않고 맑은 노란 빛에 된장 특유의 역한 냄새가 없는 게 특징이다. 된장맛을 아는 사람이라면 깊은 향에 깔끔한 맛을 지닌 서운암 된장을 그냥 된장이라 부르지 않고 약이라고 부른다. 라일락 피는 계절에 된장을 사 갖고 갔을 땐 된장에서 라일락 향을 맛보았다. 불두화 피는 계절에 된장을 샀으니 이제는 부처님
향기를 먹는 기분 맛을 보리라 기대하게 된다.
도량을 돌다보면 습관처럼 차를 마시고 싶어진다. 문득 서산 대사의 시가 생각난다.


“낮에는 차 한 잔 / 밤에는 잠 한 잔 / 푸른 산 흰구름 / 함께 무생사를 말하네 // 흰구름은 옛 벗 / 밝은 달은 나의 삶 / 첩첩 산속에서 / 사람을 만나면 차를 드리지.”


서운암 입구엔 종무소와 된장 파는 곳, 천연염색 작품들을 전시한 곳, 찻집이 있지만 찻집과 작품 전시장은 코로나19로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몇 가지 불교기념품을 전시한 종무소에서만 봉향각 겸 여러 가지 차를 판다.
포행하던 스님께서 차를 한 잔 보살님께 주문하길래 나도 따라 주문했다. 청포도 에이드. 수행자는 나이가 없다. 앳된 모습의 수행자에게서도 깊은 눈빛을 보게 되고, 노스님에게서도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기운을 느낄 때가 있다. 어떤 화두를 들고 수행중인지는 알 수 없으나 천천히 차를 마시는 모습이 제법 진지하다. 그 수행자 곁에서 사진을 찍는 내 자신이 매우 수선스럽게 느껴질만큼. 주문한 차를 받아 들고 앉은 자리를 찾는데 창가 테이블 책꽂이에 제11회 전국문학인 꽃축제 시집 『웃음꽃 피는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마시려고 주문한 청포도 에이드와 비슷한 색의 책 표지를 넘기니 229쪽에 낯익은 시가 펼쳐졌다. 새삼 반갑다. 이렇듯 산사 찻집에 꽂힌 시집에서 내 작품을 만나면 작가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독자의 입장이 되어 쑥스러우면서도 묘하게 짜릿함이 있다.


“맑아서 시린 햇살 잘 섞인 자리마다 / 목숨 같은 꽃잎 꽃잎 번져가는 이 순간 / 설레임 그 끝을 붙들고 한 점 사랑 마신다 // 정다워 열린 잎새 반가운 자리마다 / 흔들면 날아갈까 조심스레 키운 향기 / 일렁임 그 가슴 따라 푸른 영혼 태운다”
- 이서연 <산꽃 필 때> -


마음자리가 여여할 때는 일부러 시어를 추출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마음에서 시어를 추출하는 순간엔 사실 그 무엇인가에 일렁이고 있기 때문이다.
소재를 찾고 그 소재에서 진한 성찰의 과정이 있어야 그 과정 속에서 영혼을 뚫고 들어갈 시어를 찾게 된다. 작가에게 작품은 목숨의 또 다른 이름이며, 자존심이다. 마찬가지로 누구나 존재되는 순간이 건강해야 하고 있는 일에 보람을 거두게 된다. 그러므로 찰나 찰나에 안녕해야 한다. ‘찰나’가 결코 만만치 않은 긴 시간임을 느낄 때 숨을 쉬고 살아있음의 아름다움을 체크할 수 있다. 지금 차를 마시는 이 찰나, 내 안부를 스스로에게 묻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