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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길러 가꾸어야 할 마음 : 첫째 자애심

신규탁(연세대 철학과 교수)



1.
󰡔범망경󰡕의 <상권>에서는 사람이 도덕적 덕목을 지켜야 하는 ‘당위성’을 캐묻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도덕적 행위의 ‘당위성’에 근거하여 <하권>에서는 ‘구체적 덕목’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국내에 출판 유통되는 󰡔범망경󰡕 책들은 대부분 <하권>만인 관계로, 대승을 실천하는 보살이 갖추어야 할 ‘구체적 도덕 덕목’이 왜 그것이 도덕인가에 대해서는 별로 주목하지 않습니다. 이런 독서 환경 탓으로, 대승이 왜 대승인지에 대한 이해의 정도도 떨어집니다.
초기 불교의 율장에 등장하는 계戒와 율律의 조문條文은 구체적인 상황에서 당시 수행 공동체 속에서 논의하여 만들었으므로 현장의 경험적 요소가 있고, 게다가 석가모니 부처님 생전에 만들어졌으므로 권위도 보태졌습니다. 그런 관계로 상대적으로, 초기 불교 시절에는 율장 조문의 당위적 근거에 대해 본질적 질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왜 지켜야 하는지에 대해 ‘공감共感’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공감’은 공동체가 분열되어가면서, 또 시대가 달라지면서, 또 지역이 달라지면서, 그 감도가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가까운 사례로 “자식은 부모님께 효도해야 한다. 그런 효를 실천하는 첫 덕목이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제 몸을 훼손하지 않는 것이다.” 유교의 󰡔효경孝經󰡕에 나오는 첫 조문이다. 이것이 통용되는 유교 사회로 전파된 불교는, 출가 스님들의 삭발은 큰 죄라는 윤리 문제와 충돌합니다. 실제 역사적으로 그랬습니다. 그러면 과연 ‘죄罪란 무엇인가?’, 이런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필자가 말하려는 요점은, 윤리적 덕목만 운운하다 보면, 다양한 이유로 윤리적 충돌이 생길 때에 그것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점입니다. 하나의 공동체라면 함께 논의해서 결론을 내면 됩니다. 또 석가모니 부처님 살아생전이라면 협의하기 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교리 문제도 역시 그렇습니다. 이에 대해서 대승의 불교에서는 모든 것의 보편적 당위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필자가 말하려는 것은 󰡔범망경󰡕이야말로, 이런 윤리적 덕목의 당위적 근거에 대해 대승적 대답을 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2.
도덕적 덕목이 덕목일 수 있는 ‘보편적 근거’를 󰡔범망경󰡕에서는 사람들의 ‘마음[心]’에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런 제시 과정에서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일상의 비유를 들고 있습니다. 예나 제나 사람들은 땅 위에서 모든 식물이 자라고 살다가 사라지는 것을 체험합니다. 대승의 작가는 그런 체험을 살려서 우리들의 모든 지식도 ‘마음이라는 땅[心地]’ 위에서 생주이멸生住異滅한다고 주장합니다.
대승은 모든 논의를 존재存在에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대승은 관계에서 생기는 인식認識에서 논의를 출발합니다. 󰡔범망경󰡕도 이런 대승적 발상의 연장선에서 만들어진 책입니다. 󰡔범망경󰡕에서는 어떤 존재[法]라도 모두 가설假設된 것이라 여기는, 문사수聞思修 중에서 사혜思慧에 해당하는 굳건한 법인[堅法印]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사유에 기초하여 ‘10가지 마음을 기르고 키워감[十長養心]’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10가지 마음이란, ①자심慈心, ②비심悲心, ③희심喜心, ④사심捨心, ⑤시심施心, ⑥호어심好語心, ⑦익심益心, ⑧동심同心, ⑨정심定心, ⑩혜심慧心입니다. 이하에서 이것들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기로 하겠습니다.


3.
첫째로, ①자심慈心을 보기로 합니다. 󰡔범망경󰡕 본문에서는 대승을 실천하는 불자라면, 남에게 자애심慈愛心을 내라고 합니다. 이 마음을 내면 나 자신에게는 물론 남에게도 즐거움이라는 결과를 생기게 한다고 합니다. 자애심이 원인이 되어 즐거움이라는 결과가 생긴다는 불교의 근본적인 인과因果의 논리가 이 윤리 대목에서도 적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자애심을 실행하는 구체적인 양상은 어떠한가? 󰡔범망경󰡕 본문에서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먼저 본문을 소개하기로 한다.


“보살이라면 무아의 지혜를 갖추어, 중생에게는 실로 중생을 ‘괴롭힐 대상[苦境]’이 없다고 관찰하게 하라. 모든 법, 즉 색·수·상·행·식 등의 법 중에 (그 어느 것도) 생·주·이·멸함이 없어서 환상 같고 요술로 만들어진 것으로, 이런 모든 법은 진여와 다르지도 않다.”


필자는 이 문장을 접했을 때, 두 가지가 어려웠습니다. 첫째는 한문의 원문을 우리말로 해석하는 어려움이고, 둘째는 해석의 문제를 해결한 다음은 그 내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의 어려움이었습니다. 이제 그 둘을 소개하겠습니다.


4.
첫째의 어려움을 소개하겠습니다. 한자 원문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於無我智中, 樂相應觀入法, 受想行識色等大法中, 無生無住無滅, 如幻如化, 如如無二故.”


위의 인용문에서 쉼표[,]와 마침표[.]는 필자가 찍었는데, 중국이나 대만이나 일본의 학자들도 이렇게 구두점句讀點을 찍습니다. 한편, 우리나라 일제시대 백용성 스님의 현토(懸吐)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於無我智中에  樂相應觀入法하니 受想行識色等大法中에 無生無住無滅如幻如化하나 如如無二故일새라.”


이렇게 보면 대체로 표점標點 또는 현토懸吐는 일치합니다. 유독 동국대학교에서 간행된 <한국불교전서>에서는 “樂相應觀入法”이라는 구문을 “樂相應觀”과 “入法”으로 둘로 나누어 놓습니다. 그리고 그 대본에 따라 번역한 <한글본 한국불교전서>에서는 “무아지 가운데 즐거움과 상응하여 관찰한다. (곧) 법에 들어가 수·상·행·식 등의 대법大法 가운데 생겨나는 것도 없고 머무는 것도 없고 소멸하는 것도 없으며, 허깨비와 같고 변화한 것과 같으며, 여여하여 둘이 없음을 관찰하기 때문에 일체를 수행하고 법륜을 성취한다”로 번역합니다.
문제는 “낙상응관樂相應觀”입니다. 관법觀法이긴 관법인데, 즐거움과 상응하는 관법이다. 이게 대체 무슨 관법인가? 이 문장을 잘 읽어내기 위해서는, 이 문장 바로 앞에 나오는 “若佛子야 慈心者는 常行慈心하여 生樂因已이니라”와 연관해서 풀어야 합니다. 보살은 항상 자애심을 내야 하는데, 이 자애심이야말로 ‘괴로움의 원인’이 아니고, ‘즐거움의 원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중생에게 어떻게 대해주는 게 자애심이란 말인가요?
그 대답은, “보살이라면 중생들에게 모든 게 무아無我임을 알게 하라. 그리고 그런 무아가 바로 진여이다. 대승에서 말하는 진여가 다른 게 아니고, 무아가 바로 진여이다”라는 것입니다. 아我도 무아이고, 아소我所도 무아라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은 생겼다가는 일정 기간 머물렀다가는 사라지는 무상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환상같은 것이며 요술로 만들어진 실체가 없다는 것입니다.


5.
둘째의 어려움을 소개하겠습니다. 자비심 하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자애로우신 어머니가 생각날 겁니다. 남의 어머니를 높여 부를 때 ‘자당慈堂’이라고 합니다. 관세음보살의 속성으로 자애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사랑해주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범망경󰡕에서는 뭐라고 합니까? 중생들에게 모든 게 공한 줄을 알게 하라고 합니다. 이게 무슨 자애심입니까? 나라는 존재도 공하고, 나를 이루고 있는 요소들도 공하다고 알게 하는 게 무게 무슨 자애심입니까? 그런데 󰡔범망경󰡕은 그렇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중생들이 그렇게 알고,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중생들 자신에게 고苦가 아닌 낙樂의 결과를 낳게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 점이 이해하기 힘듭니다. 그랬습니다.
 굶주린 아들에게 밥 한술 주는 게 어머니의 자애이고, 추워서 떠는 딸에게 장갑 벗어주는 게 어머니의 자애라고 저는 생각해왔습니다. 외로울 때 옆에서 지켜주시고, 실패했을 때도 위로해 주시는 게 어머니의 자애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범망경󰡕에서는 ‘공 도리’를 깨치라고 합니다. 너무나 고원高遠하고, 심지어는 실속 없는 말로 들립니다. 불교는 허무적멸虛無寂滅을 논하는 무리라고 욕하는 유가의 입장이 오히려 설득력이 있습니다. 여러 독자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