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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어른들이 기심機心을 경계한 까닭

 


정성운
텃밭농부


지난 5월은 바빴다. 텃밭 일과 부처님오신날 축제를 준비하고 치르느라 분주했다. 나는 ‘불교기후행동’과 함께 제등행진을 했는데, 내리는 비에 신발이 흠뻑 젖어 발걸음이 무거웠다. 등燈이 젖지 않도록 우산을 앞으로 숙일 수밖에 없어 등짝으로 빗줄기가 흘렀다. 거센 빗줄기는 서로를 격려하게 했으니, 동료애가 더 진해지는 보너스를 얻은 것 같아 뿌듯했다.
행사를 준비하는 중에도 일주일에 두세 번 밭에 나갔다. 이 시기에 거의 모든 씨앗을 뿌리거나 모종을 심는다. 심은 작물의 이름을 불러보자면, 고추, 수박, 참외, 오이, 옥수수, 상추, 쑥갓, 잎당귀, 토마토, 고구마, 가지이다. 지난 3월에 심은 감자는 어느새 꽃을 피워 올렸다. 마늘은 하루가 다르다 할 정도로 대가 굵어지고 있다. 엊그제 마늘종을 뽑아주었다. 작년 봄에 심은 고사리와 아스파라거스는 조금씩 먹을 것을 내주고 있다.


5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절


뿌리고 심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고추와 토마토는 바람에 넘어지지 않도록 지주대를 세워 줄을 매주었다. 지금은 키가 두 뼘 정도이지만 이제부터는 쑥쑥 커진다. 열매를 내어주기 시작한다. 수박과 참외, 오이에는 줄기가 감아 오를 수 있도록 A자형 지주대를 설치했다.
풀도 매주어야 한다. 풀은 빠르게 자라 작물에 비추는 햇빛을 가린다. 이때의 풀은 뿌리를 깊고 넓게 내리기 전이어서 뽑아내기 수월하다. 이 시기를 놓치면 낭패다. 장마 전후로 한 번 더 풀을 매주어야 한다. 이 시기의 풀을 여름풀이라 하는데, 바랭이와 쇠비름이 대표적이다. 바랭이는 뿌리가 넓고 깊을뿐더러 넝쿨성이어서 마디마다 뿌리를 내린다. 가만히 놔두면 온 밭을 덮고 만다. 뽑아서 밭둑이나 고랑에 두면 또 뿌리를 내려 슬금슬금 기듯이 밭을 점령해간다. 나는 뽑아낸 바랭이를 비료 부대에 담아 밭 가운데에 만들어놓은 퇴비장에 쌓는다. 넓지 않은 면적이어서 손으로 하나하나 뽑아낸다. 힘든 일이다.
전업 농부들은 풀매는 일에서 벗어났다. 비닐을 씌우고, 제초 매트를 씌우거나 제초제를 뿌린다. 고역에서 벗어났고 생산량도 늘어났으니 비닐과 제초제는 농부들에게는 크게 고마운 존재이다. 그런 만큼 부작용이 적지 않다. 비닐은 석유를 원료로 만들어진다. 온난화 물질인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킬 수밖에 없다. 제초제도 화학의 결과물로 자연계에는 없는 물질이다. 물과 흙과 공기 중에 축적된다. 이런 부작용이 있어도 먹지 않고는 살 수 없으니 부득이한 일이다. 부작용을 줄이거나 없애는 농법이 유기농일 텐데 이는 품이 많이 드니 확산이 멈추었다.
텃밭에서 만나는 이웃들은 밭두렁에 서서 어떤 작물을 심었고, 어떻게 재배하는 것인지 등의 이야기를 나눈다. 빠질 수 없는 주제가 있는데, 바로 날씨다. 지난 5월 초중순의 아침은 쌀쌀했다. 10도 아래로 떨어진 날도 있었다. 고추에 냉해를 줄 수 있다.
서울, 인천, 경기 남부 지역에서는 대개 5월 5일을 전후해 고추 모종을 밭에 심는다. 이쯤이 되면 최저기온이 15도에 이른다. 고추는 고온 건조한 기후의 중앙아메리카 지역이 원산지여서 추운 것을 싫어한다. 나는 8일에 고추를 심었는데, 이후 최저기온이 9도에 머무른 날도 있었다. 냉해를 입었다. 방아다리 아래의 잎들이 저절로 떨어졌고, 남아 있는 잎들의 끝자락이 짙은 초록색을 띠었다. 수박은 잎 끝이 말리는 증상이 나타났다. 우리가 추우면 몸을 웅크리며 잔뜩 긴장하는데, 그런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수박의 원산지도 고온의 남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 주변 사바나 지역이다. 작물이 냉해를 입으면 초기 성장이 더디고 과실이 적다. 추위를 이겨내느라 에너지를 쏟은 까닭에 병충해의 침투에 약해질 수 있다.
작년의 고추 농사는 중간에 작파했다. 장마가 두 번이나 닥쳤는데, 이를 이겨내지 못했다. 고추는 과습을 견뎌내지 못한다. 집중호우도 빈발해 밭둑이 물에 잠기고 말았다. 어느 날 잎이 누렇게 뜨더니 축 늘어졌다. 뿌리썩음병에 걸린 것이다.


누구도, 어디도 피해갈 수 없는 기후변화


기후변화는 특정한 지역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영향권이 지구적이다. 히말라야를 예를 들면, 히말라야 만년설은 봄과 여름에 서서히 녹으면서 아래 지역으로 물을 공급하며, 다시 겨울이 오면 눈이 쌓이는 것을 반복하는 수원지이다. 온난화로 히말라야의 만년설이 녹으면 히말라야를 발원지로 하는 동남아시아의 9개 강의 수위를 높이며, 범람하는 경우도 생긴다. 빙하가 녹은 이후에는 가뭄이 든다. 농업에 막대한 지장을 미친다. 수많은 나라의 수억의 사람들이 고통을 겪는다. 히말라야의 만년설만 녹는 게 아니다. 남극과 북극, 킬리만자로, 북유럽 동토도 지금과 같지 않게 된다. 한 지역의 식량 생산이 차질을 빚으면 곡물 가격이 오른다. 가난한 나라는 식량 부족을 피할 수 없다. 때론 정변과 전쟁의 원인으로 비화한다. 지구 전체가 재앙에 휩싸이게 된다.
우리 밭도 기후변화의 영향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나는 고추를 통해 체감하지만, 내가 미처 몰랐던 영향이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기후변화가 농업에 미치는 영향은 네 가지다. 첫째, 폭우로 인한 농지 유실과 표토 유실, 가뭄으로 인한 사막화. 농업의 기반인 농지가 황폐해지는 것이다. 둘째는 기온상승으로 주작물 선택의 어려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표적으로 사과를 들 수 있다. 사과 주산지 지역에서는 작물 교체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새로운 작물을 토착화하는 데는 수년의 시간이 걸리고 큰 비용이 든다. 셋째는 새로운 해충의 등장과 병해다. 예전에는 없었던 벌레가 기승을 부리고 알지 못하는 병이 발생한다. 이에 대응하는 농법과 약제의 개발도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다. 넷째는 출하량의 변화로 식량난 또는 농산물 물가의 급격한 변동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기후변화는 살아가는 데 가장 밑바탕인 밥상을 위태롭게 한다.


온난화는 인간 활동의 산물, 그러니 바꿀 수 있다


기후 영향을 줄이는 방안의 하나로 비닐하우스나 유리온실을 설치하는 시설재배가 늘고 있다. 해당 작물에 적합한 환경을 통제할 수 있다. 과학과 기술이 이뤄낸 쾌거이다. 작물의 생리를 알아내는 과학과 이에 맞춤한 시설을 짓고 통제하는 기술은 분명 인간 지혜의 소산이다. 농사에서도 자연 의존도를 크게 줄였다. 과학과 기술이 자연을 이겨냈다고 할만하다. 삽자루 들고 온종일 하던 일을 굴착기를 부르면 한 시간 만에 끝내니 기계의 효용성을 찬탄할 만하다. 그러나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가 더 짙다. 옛 어른들은 기심機心이라 하여 과학과 기술의 부작용을 경계했다. 교만심을 키우고, 편리를 좇게 되고, 어머니와 같은 자연을 함부로 대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올해의 여름과 가을 날씨는 어떨까. 어떤 기상현상이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다만, 때에 맞춰 비를 뿌려 대지를 촉촉하게 적셔주시고, 덥겠지만 너무 덥지 않게, 태풍이 와도 먼 바다로 지나가기를, 우리가 감당하기에 적당한 날씨를 주십사고, 할머니와 어머니가 이른 아침 장독대에 정안수 올려놓고 두 손 싹싹 빌었던 마음으로 하늘님에게 애원한다. 인간의 힘으로 쏟아지는 폭우를 막을 수 없고, 오르는 기온을 내리게 할 수도 없다. 아니다. 할 수 있다. 해야 한다. 현재의 온난화와 극한 기후 현상은 인간 활동의 산물이다. 특히 이산화탄소의 발생이 급증한 결과이다. 그러니 애원하는 마음으로 인간의 활동을 바꾸면 날씨도 변화시킬 수 있다. 석유와 석탄에 의존하는 현재의 산업체계를 태양광, 바람, 조수차, 지열 등 재생에너지 체계로 바꿔나가는 것이다. RE100(Renewable Electricity 100%의 약자)이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기업들이 100% 재생 가능 에너지를 사용하겠다는 목표를 선언하자는 것이다. 방향은 옳게 정해졌다. 우리나라의 유수한 기업들도 이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다만 너무 더디다. 서두르지 않으면 재앙을 피할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