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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산 붓다선원에서 펼쳐진 인생 문답

나로부터의 자유, 세상을 비추다


덕유산 붓다선원에서 펼쳐진 인생 문답


박경희
중도기획 디자인실장


『나로부터의 자유, 세상을 비추다』
진경스님 지음
384쪽 | 무선 제본
값 22,000원
불광출판사 펴냄



덕유산 자락 해발 720미터. 굽이진 산비탈 끝에 다다르면 마치 하늘 아래 숨겨진 별천지 같은 수행 도량, 붓다선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20여 명의 비구니 스님들을 중심으로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수행자들과 푸른 눈의 외국인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는 이곳의 풍경은 여느 사찰에서는 쉽게 보기 어려운 특별한 장면이다. 많게는 100여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함께 수행에 몰두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깊은 울림을 전한다.
언어와 피부색은 달라도 삶의 무게는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왜 이렇게 열심히 살아도 마음의 상처는 사라지지 않는가.” 이 절실한 물음이 국적과 문화를 넘어 수많은 이들을 붓다선원으로 이끌었다. 사마타와 위빳사나 수행의 정수를 전하는 이곳은 초기불교 수행에 뜻을 둔 이들 사이에서 ‘반드시 한 번은 찾아가야 할 수행처’로 알려지며, 한국불교 수행 문화 속에서 독보적인 수행 도량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붓다선원을 이끄는 진경 스님은 1985년 출가한 이후 국내에서 교학과 수행을 함께 닦다가, 1998년 미얀마로 수행길을 떠났다. 한국불교의 익숙한 환경을 뒤로한 채 부처님 수행의 원형을 찾아 나선 것이다. 지금처럼 해외 수행이 보편적이지 않던 시절, 더구나 비구니 승단에 대한 인식이 척박했던 남방 불교권에서 스님은 오직 ‘무아無我’의 진실을 깨닫고자 수행 정진을 이어갔다.
미얀마의 마하시, 쉐오민, 떼잉구 수행처와 인도의 고엔카, 영국 아마라바띠, 프랑스 플럼빌리지에 이르기까지. 20여 년간 국내외 수행처를 오가며 스님이 마주한 것은 결국 ‘나’라고 굳게 믿어왔던 견고한 집착이 허물어지는 순간들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미얀마 파욱 수행센터에서 선정과 지혜가 수레의 두 바퀴처럼 조화를 이루는 수행 체계를 깊이 체득하며 오랜 수행의 방황에 마침표를 찍게 된다.
귀국 후 스님은 2013년 경남 거창에 붓다선원을 개원해, 365일 수행의 불빛이 꺼지지 않는 수행 도량을 이끌고 있다. 『나로부터의 자유, 세상을 비추다』는 지난 10여 년 동안 삶의 고통을 안고 선원을 찾은 이들의 질문을 바탕으로, 반복되는 괴로움의 원인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하는 진경 스님의 통찰과 답변을 담아낸 책이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없이 많은 삶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 어린 시절의 상처와 트라우마, 영원할 것만 같았던 사랑과의 이별, 술과 담배 같은 중독의 문제, 관계 속 갈등과 외로움은 일상 속에서 반복적으로 우리를 흔든다. 여기에 세상의 불공평함에 대한 분노, 죽음에 대한 두려움, 절박한 마음으로 매달리는 기도까지 더해지면 삶은 어느새 커다란 바윗덩이를 짊어진 듯 무겁게 느껴진다.
붓다선원을 찾은 이들의 마음에도 이와 다르지 않은 질문이 놓여 있다. 더는 견디기 어려운 막막함과 괴로움에서 벗어나고자 찾아온 이들이기에, 저마다 가장 날것 그대로의 고민을 꺼내 놓는다. 그러나 진경 스님의 답변은 단순한 위로나 감정적인 공감에 머물지 않는다. 잠시 마음을 달래는 말보다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게 하는 냉철함이 먼저 다가온다.
“고통을 뿌리째 뽑을 수 있는 진짜 약이 있는데, 어찌 가벼운 통증만 덜어주는 아스피린 같은 처방에 머물 수 있겠습니까.”
이 말은 고통의 본질을 외면하지 말고 정면으로 바라보라는 붓다의 가르침과 맞닿아 있다. 우리가 반복해서 삶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이유는 삶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영원하기를 바라고, 세상이 내 뜻대로 되기를 바라며, 이 몸과 마음을 ‘나’라고 움켜쥐려는 집착이 결국 괴로움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우리가 ‘나’라고 믿고 있는 몸과 마음은 수많은 조건에 의해 잠시 일어났다 사라지는 하나의 흐름일 뿐이다. 여러 부품이 맞물려야 자동차가 움직일 수 있듯, 우리의 존재 또한 수많은 인연과 조건이 잠시 모여 이루어진 과정에 가깝다. 저자는 바로 그 실상을 분명히 통찰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나’라는 좁은 틀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게 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 자유는 오직 자신만을 위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홀로의 시간을 지나 더욱 단단해진 행복은 결국 함께 살아가는 따뜻한 행복으로 확장된다. 나와 갈등하던 상대 또한 조건 속에서 괴로워하는 존재임을 이해하게 될 때, 미움은 연민으로 바뀌고 나를 괴롭혔던 인연마저 삶을 일깨우는 스승처럼 다가오기 시작한다.
이처럼 전환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이전에는 원망과 냉소로 가득해 보였던 세상이 인과(因果)의 흐름 속에서 새롭게 읽히기 시작한다. 흔들리는 세상 한가운데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살아갈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결국 ‘나’라는 제한된 틀을 넘어 얻은 자유는 타인을 향한 이해와 자애로 이어져 세상을 밝히는 고요한 빛이 된다.
이 책에는 마흔여섯 가지의 질의응답이 담겨 있다. 삶의 고민은 제각기 달라 보이지만, 그 괴로움의 뿌리는 결국 하나에서 비롯된다. 그렇기에 해답 또한 하나의 방향을 가리킨다. 그 원리를 바르게 이해하게 될 때 우리는 어떤 문제를 마주하더라도 이전과는 다른 마음으로 삶을 감당해낼 힘을 얻게 된다.
각 장 사이에 배치된 〈진경 스님의 수행 여정〉은 먼저 길을 걸어간 수행자의 진솔한 경험담을 담고 있다. 독자들은 스님의 수행 여정을 따라가며 이 길이 결코 혼자만의 외로운 여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될 것이다. 또한 책 말미에 수록된 〈수행길잡이〉는 ‘아나빠나사띠(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 수행을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친절한 안내서가 되어준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유가 단지 삶이라는 고단한 바다에서 허우적거리기 위한 것일까. 저자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를 괴롭히는 번뇌조차도 결국은 진정한 자유와 기쁨으로 나아가기 위한 소중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마주한 고통을 단순히 피해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고,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계기로 바라보게 한다. 독자들 또한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삶을 새롭게 비추어 줄 한 줄기 맑은 지도를 마음속에 그려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