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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연기와 5온의 집(集)

이중표
전남대 철학과 교수


지난 시간에는 12연기와 4성제의 관계를 살펴보 았습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 드렸듯이, 12연기는 유전문과 환멸문을 통해 생로병사의 괴로움이 어떻게 나타나며, 어떻게 하면 사라지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로병사를 겪는 것은 태어나서 늙어 죽는‘나’가 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가 ‘나’의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을 다섯 가지로 분석하여 오온(五蘊)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나’의 존재라고 믿고 있는 오온은 어떤 것일까요? 『잡아함경』에서는 오온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눈(眼)으로 색(色)을 보면 보고 분별하는 의식(眼識)이 생긴다. 이렇게 보는 의식이 있을 때 무엇인가를 보게 되며(眼觸) 보면 그것에 대하여 느낌(受)이 생기고, 생각(想)이 생기고, 의도(思)가 생긴다. 이것이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이다. 보는 눈과 이 들 네 가지를 사람이라고 하면서 이들 오온에서 사람이라는 생각을 일으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눈으로 색을 보고, 귀로 소리를 듣고…. 마음으로 사물을 인식한다.”
그리고 이와 같이 말한다.
“이 존자는 이름이 이러하고, 성이 이러하고, 이와 같이 살다가 이와 같이 죽었다.”
비구들이여, 이 모든 것은 무상하며, 유위이며, 의도와 원을 인연으로 생긴 것이다. 그것이 괴로움이다.
우리는 어떤 사물을, 예를 들어 꽃을 보면‘내가 꽃을 본다’고 생각합니다. 이때의 나는 꽃을 보는 눈을 의미하며, 이것이 색온(色蘊)입니다. 꽃을 보면 아름답다는 느낌이 생깁니다. 그러면‘나는 아름다움을 느낀다’고 생각합니다. 이때의 나는 아름다움을 느끼는 감정을 의미하며, 이것이 수온(受蘊)입니다. 꽃을 보면 이 꽃이 다른 꽃보다 좋다는 생각도 일어나고, 이 꽃을 화단에 심어야겠다는 욕구도 생깁니다. 이렇게 어떤 사물을 보면 느낌과 생각과 의도가 발생하는 데, 이렇게 발생된 감정, 사유, 의지등이 삶을 통해 모인 것이 오온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모인 의식들을 자아라고 집착합니다. 그래서‘내가 눈으로 꽃을 보고, 감정으로 아름다움을 느끼고, 이성으로 생각하고, 의지로 행동하고, 의식으로 인식한다고 생각합니다.

오온이란 이렇게 우리가‘나’라고 생각하고 있는 우리의 다섯 가지 생각일 뿐 보고, 느끼고 인식하는 실체적‘자아’는 아닙니다. 즉 우리가 의도와 욕구를 가지고‘나’라고 집착하고 있는‘다섯 가지 망상 덩어리’입니다. 이 허망한 망상을 자아라고 집착하기 때문에 생로병사의 괴로움이 있다고 부처님께서는 깨달으신 것입니다. 따라서 생사의 괴로움을 없애기 위해서는 오온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알아서 그것을 소멸시켜야 합니다. 사성제의 집성제는 오온이 형성되는 과정에 대한 진리입니다. 그리고 집성제의 구체적인 내용, 즉 오온의 집(集)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12연기의 유전문인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이해를 바탕으로 12연기설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무명(無明)은 허망한 자아를 실재한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입니다.
이렇게 어리석은 생각으로 자아를 집착하기 때문에 자기중심적인 욕망을 일으켜 몸(身)과 입(口)과 생각(意)으로 세 가지 업을 짓게 됩니다. 이것이 행(行)입니다.

이러한 삶의 결과로 의식(意識)이 형성됩니다, 즉 자아를 집착하여 보고, 듣고, 생각하는 가운데 나와 남을 분별하고, 자아와 세계를 구별하는 분별심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행(行)을 연하여 생기는 식(識)입니다.
식(識)은 대상을 이름과 형태로 구별하여 식별합니다. 책상은 책상이라는 이름과 형태가 있고, 의자는 의자라는 이름과 의자의 형태가 있습니다. 이러한 이름과 형태가 없으면 우리는 사물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만약 의자와 책상이라는 이름이 없다면 우리는 나무로 만들어진 책상과 의자를 본다 할지라도 그것을 책상이나 의지로 인식하지 못하고 나무로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책상이나 의자와 같은 사물을 인식하는 것은 사물에 이름과 형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이름과 형태는 외부의 사물이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물의 이름과 형태는 우리의 의식 속에 있습니다. 의식 속에 책상이라는 이름과 형태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책상을 보아도 책상이라고 인식 할 수가 없습니다. 책상을 모르는 사람은 책상을 대상으로 인식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따라서 책상이라는 이름과 형태를 지닌 대상은 책상을 분별할 수
있는 의식을 연하여 생긴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의식을 인연으로 생긴 이름과 형태를 지닌 대상이 명색(名色)입니다.
이러한 명색이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보고, 듣고,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즉 우리는 항상 이름과 형태를 지닌 대상을 지각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명색을 대상으로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지고, 생각하는 우리의 지각을 육입(六入)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명색을 식별할 수 있는 의식과 명색을 지닌 대상과 그 대상에 대한 지각이 있을 때 사물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내가 책상을 본다는 것은 책상을 식별할 수 있는 의식과 식별의 대상으로서의 책상과 그것을 보는 눈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지요. 즉 명색을 분별 할 수 있는 의식을 가지고 눈으로 명색을 볼 때 대상을 접촉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촉(觸)입니다.

우리가 대상을 접촉하면 그 대상으로부터 고락 등의 느낌을 느끼게 됩니다. 어떤 책상을 보면 마음에 들기도 하고 마음에 들지 않기도 하는 것이지요. 우리의 느낌은 이렇게 대상을 접촉함으로써 생깁니다.
이것이 수(受)입니다.

그런데 12연기에는 빠져있지만 대상의 접촉을 통해 발생하는 것은 수(受) 이외에도 그 대상에 대한 생각(想)과 의도(行)도 생깁니다. 책상을 에로 들면, 책상이 크다거나 작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살 것인가 말 것인가 의도가 생기는 것입니다. 전술한『잡아함경』은 이것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이렇게 촉을 통해 발생한 수, 상, 행과 그 이전에 발생한 식과 색에 대하여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에 대하여, 즐거운 느낌을 주는 것에 대하여 애착 하게 됩니다. 이것이 수를 인연으로 발생하는 애(愛) 입니다.
우리는 애착하는 대상을 자아나 자기의 소유로 취하게 됩니다. 이것이 애를 인연으로 발생하는 취(取) 입니다.

우리가 자아의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는 오온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취해진 것들의 모임입니다. 이것이 유(有)입니다.

이러한 자기존재가 취해지고 있을 때 생로병사의 괴로움 생각이 끊이지 않고 나타납니다.
12연기는 이와 같이 자아라는 망상이 무명에서 어떻게 연기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